한파에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 위로 간밤 또 눈이 내렸습니다. 얼마 전 호수의 물결을 보이던 폭설 내린 날과는 또 다른 풍경입니다.
저수지를 거닐 때 마다 이 나뭇가지가 늘 아픈 손입니다. 차마 떠나지 못하는 마음과 놓을 수 없는 마음 ,찢어진 가지들이 자꾸 아파집니다.
눈 내린 날의 풍경은 모든 것을 달리 보이게 합니다. 늘 심심하게 바라보던 건물과 풍경들이 어떻게 보아도 그림이 됩니다.
우리 나이의 어른들에게 명암방죽은 여름은 수영을 하던 곳이고 겨울엔 썰매를 타던 추억의 장소입니다.
오늘은 추억의 그림을 힘차게 그려보고싶은 거대한 캔버스가 되었습니다.
명암 저수지를 상징하는 특별한 모양의 건축물이 오늘 같은 날엔 더욱 도드라져 그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땅과 풀숲과 저수지가 경계가 없이 하나가 되는 풍경은, 이렇게 추운 날, 눈이 내려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겠지요?
언젠가 나뭇잎들을 큰 띠로 얼음의 경계를 보이던 사진을 찍었던 그 나무, 그 장소입니다. 여전히 어우러지는 멋이 있어요.
언젠가는 이 처연하고 고요한 풍경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 풍경들에 대하여, 아름다움에 대하여.
오리배가 꽁꽁 얼었습니다. 그 정적마저도 평안하고 아름답습니다. 겨울이 주는 고적함이 여기 그대로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늘 쉬어가는 벤치도 눈을 소복히 앉혔습니다. 오늘 벤치의 주인은 흰눈입니다.
오리들은 어디로 갔을까. 걱정했더랬는데, 걱정도 잠시 오리들의 외출이 시작되었습니다.
저 작고 앙증맞은 발자국들이 저수지 위로 길을 냅니다. 걷다가 웅크리고, 아마 저들도 많이 추운게지요.
먼저 걷는 오리가 있고, 앞서 가는 오리가 있고,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가는 오리들이 있습니다. 저들의 발자국 낙서도 예술입니다.
여유로운 헤엄을 즐기는 청둥 오리들, 미끄러질까 타박타박 눈길을 걸어 온 내 모습도 저처럼 여유로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뿌려준 먹이를 먹는 비둘기들 사이에 작은 참새 한 마리가 비둘기인 척 함께 합니다. 조 귀여운 것 같으니라고.
*
겨울 날의 산책이 좋은 건 추위가 곧 따뜻함이 되기 때문이지요.
눈이 쌓인 날의 산책이 좋은 건 늘 같은 그곳이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고요.
이러다 저는 아마도 언젠가는 명암 저수지의 사계를 다 담아낼 듯도 합니다.
제겐 아주 매우 애정하는 장소이니 변화하는 계절들 더 많이 함께 해보렵니다.
지난 해 변화하는 계절과 더불어 성숙했고 깊어졌고 고요해졌고 평안해졌습니다.
혼자여도 꺼려지지않고 편안한 곳, 어찌보면 혼자일 수 있어 오히려 평안한 곳,
오늘은 친구와 함께여서 좋았던 곳, 함께 걸을 수 있어 외롭지 않았던 시간,
눈이 쌓인 오늘의 저수지는 또, 더 많은 말과 의미들을 제게 선물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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