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끌림 - 풍경

청주 다연, 오늘은 사람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다연바람숲 2018. 1. 10. 22:44

 

 

 

 

 

 

 

 

눈이 내린 다음날의 한낮,

지난 밤 내린 눈이 한뼘을 넘는데

그 눈을 밟으며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눈길을 앞서간 사람들이 길을 낸 발자국을 따라 걸어도

발목까지 눈이 차올라 신발이 금세 눈에 젖어버리는 길,

길보다 길 아닌 길이 더 넓어진 눈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산책보다 폭설에 가까운 눈이 내린 풍경이 보고싶어서 저수지를 찾아가다보니 이 사람은, 산책엔 어울리지않는 신발이 흠뻑 눈길에 젖어버려서 종일 발이 시린 하루를 보냈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들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카메라에 담다가, 앞서 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그 걸음을 오래 따라 걸었습니다.

폭설 후에 내려진 한파 예보에 모자며 장갑이며 추위에 단단히 여민 모습이지만 모자 아래로 보이는 백발의 얼굴이 부부처럼 보이는 두 어르신의 지긋한 연세를 가늠하게 합니다.

 

워낙에 많은 눈이 내린 다음날이다보니 이미 앞서간 사람들이 만든 길을 따라걸어도 걸음이 쉽고 빠르고 편안하지만은 않습니다. 조심스러워 자꾸 느려지는 아내의 걸음을 앞서가다 기다려주고 돌아와 손을 잡아주고 행여 눈길에 미끄러질까 걱정스럽게 살펴주시는 어르신의 마음이 한걸음 멀리에서도 느껴집니다. 그 모습이 참 따뜻했습니다. 날씨는 춥고 눈은 쌓이고 결코 산책하기 좋은 날이 아님에도 함께이기 때문에 나설 수 있는 길이었겠지요. 어쩌면 저 눈길같은 삶을 서로 살피고 지켜주고 손을 잡아주며 나란히 함께 살아오셨을테지요. 이런 날은 위험하다 외출조차 꺼릴 수 있는 기후에도 한낮 눈길의 산책을 나오신 건 함께 걸어온 길들이 결코 힘겹지만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앞서가는 두 사람의 느리고 편안한 걸음을 느리게 천천히 따라 걷는 동안 마음이 뭉클 저려옵니다.

 

동행이라는 말,

해로라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서로 건강하게 노년의 인생을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

삶의 굽이굽이 함께 건너온 사람과 오래 손잡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동행인지 오래오래 생각합니다.

 

눈 내린 풍경도 눈이 시리게 아름다웠지만

그 풍경보다 아름다운 사람의 풍경을 만나 더 아름답던 시간,

오늘이 지나기 전에 그 기억의 기록을 남겨둡니다.

 

어쩌면 먼 훗날 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사람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