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응용 - How?

제주도에 집 지었어요

다연바람숲 2017. 9. 6. 14:14

 

 

1.2 좌측의 부부를 위한 본채와 우측의 손님을 위한 별채 앞에 선 신성선, 김진경 부부. 본채와 별채가 연결되는 야외 테라스에는 아웃도어용 테이블과 의자를 두었다.

 

독립 영화 <모차르트 타운>과 <화가>, KBS W 토크쇼 <뷰티바이블 2015> 등의 촬영감독인 남편 김진경, SBS 드라마 <상속자들>, tvN 토크쇼 <인생술집> 등의 공간 스타일링을 맡은 ‘엘리스데코’의 아내 신성선. “저희 부부 모두 영화와 드라마 쪽 일을 하느라 참 바쁘게 살았어요. 갑자기 어느 순간 아!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남편도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고 했고요. 그러다 그간 자주 들렀던 제주도가 생각났어요. 이곳에 오면 왠지 모르게 평온하고 좋았어요.” 치열하게 살았던 지난 삶이 제주행의 쐐기를 박고 그간 남편이 농담 삼아 한 말이 집을 짓는 데 불을 지폈다. “처음 결혼했을 때 남편이 ‘우리 집은 내가 지어줄게!’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었어요(웃음). 왜 TV나 잡지, 인터넷을 보면 직접 자기 손으로 자기가 살 집을 짓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걸 보고 용기를 얻었는지 제주도에 들어가면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맞춰 집을 완공하겠다는 거예요. 진짜 지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실은 저 모르게 집을 지어봤대요. 어디에서 지었냐고 물었죠. 세상에! 군대에서 안 해본 게 없다는 거 있죠(웃음). 도시를 떠날 두려움은 온데 간데 없고 한바탕 신나게 웃었죠. 저희의 집 짓기는 이렇게 시작됐어요.”

 

1 집을 짓기 위해 남편 김진경이 참고한 건축 서적들. 리노베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일본의 유명 건축사무소 블루 스튜디오의 총 33개 프로젝트를 소개한 《내 집, 내 취향대로》(디자인하우스), 목조주택의 설계와 시공의 전반적인 가이드를 자세한 3D 도해와 함께 설명한 《목조주택설계&시공디테일》(주택문화사) 등이다. 2 층고가 최대 6m로 높은 박공지붕의 마주 보는 벽끼리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이자 인테리어 포인트로 구조목을 설치한 거실.

 

저 푸른 초원의 땅을 찾아 헤매다


삶의 터전을 제주도로 옮겨야겠다고 결심하고서는 매달 열흘씩 제주도에 머무르며 부지를 알아보려 다녔다. “일부러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숙소를 잡았어요. 어디에 살면 좋을지 직접 겪어보려고요. 겨울에 갔던 동쪽의 하도리는 풍경은 멋지지만 바람이 너무 세더라고요. 안 되겠다, 남쪽으로 가자 해서 온 곳이 서귀포시 남원읍의 ‘위미리’라는 마을이에요. 관광객들 왕래가 덜하고 조용한 마을이에요. 이곳에서 숨도 쉬고, 잠도 자고, 걸어도 보는 동안 심신이 너무 편안해지고 무언가 확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위미리는 매물이 거의 없어 거래가 드물었어요. 왜 그러냐면 옛날에는 위미리가 제주도에서 가장 부자 동네였대요. 그 당시엔 귤이 비쌌잖아요. 이곳이 귤 농사가 잘돼 귤 농장이 엄청 많았대요. 제주 동쪽에 위치한 월정리만 가더라도 집이 작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하지만 위미리는 집이 다 커요. 그 시절 귤 부자들이 아직도 이곳에서 살고 있어서 집을 잘 안 내놓는다고 해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위미리는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할 즈음, 남편이 3일간 연달아 찾아간 부동산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잡았다. “제주도는 귤 밭 농사를 겸한 투잡이 많아요. 부동산 사장님도 그랬어요. 매일 찾아갔는데 매번 귤 밭에 농약을 치느라 부재 중이었어요. 그러다 어렵사리 통화가 됐고, 사장님의 후배를 소개받게 됐어요. 그분을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다, 가까운 데 집이 한 채 있으니 한 번 보라는 말에 온 곳이 이곳이에요.” 총 311평의 부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귤나무들과 한쪽에 있던 창고 그리고 자그마한 돌집 하나. “집을 짓게 되면 게스트하우스도 하자고 했었거든요. 저희도 살고, 게스트하우스도 두고, 손님이 오면 묵을 수 있는 별채까지 마련하려면 넉넉히 300평 정도의 부지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귤 밭과 제주도식 돌집이 있는 곳을 찾고 있었죠. 마침 이곳의 귤 밭과 돌집 각각의 필지가 바로 맞붙어 있어 망설임 없이 구매를 했어요.”

 

 

1,2 다락방이 보이는 통로 전경과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곳곳에 아내 신성선이 모은 가구와 소품이 놓여 있다. 계단 입구에 놓아둔 미싱은 대전의 앤티크 숍에서 구매한 것.

 

 

둘이라 가능했던 무모한 도전


“집을 짓는 1년 동안 저희 부부가 가장 많이 한 말인데요.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요(웃음). 집 짓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면 좀 조심스럽게 움직일 텐데요. 저는 카메라를 들고 일하던 사람이고, 아내는 카메라 앵글에 맞춰 예쁜 공간을 꾸미던 사람이에요. 땅을 다지고 집을 올리는 것에 대해선 무지한 상태였죠. 그래서 오히려 불나방처럼 막 뛰어들어 몸으로 때웠던 거 같아요(웃음). 공사를 하는 내내 비를 쫄딱 맞기는 일쑤였고요. 끼니는 라면이라도 먹으면 행복했어요. 손이 성한 날이 없었어요.” 오랜 시간 함께 대화를 나누고 원하는 집을 그려봤다. 그리고 늘 촬영장의 세트를 만들었던 아내 신성선이 본격적으로 꿈의 집을 도면과 평면으로 옮겼고, 전문 설계사의 도움을 받아 초안을 다지게 됐다. 남편은 《목조주택설계&시공디테일》 등의 서적을 정독하면서 집 짓기에 대해 공부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인근에 1년 치 임대료인 ‘연세’를 내고 집을 빌린 뒤 매일 공사장으로 출퇴근하면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1,2 이른 아침 김진경•신성선 부부의 아침식사. 찐 햇감자와 바삭하게 구운 빵을 올린다. 속 든든하게 귀리와 오트밀을 우유에 말아 먹는다. 냉동 블루베리, 딸기, 바나나를 한데 넣고 간 주스도 빠질 수 없다. 3 10년 전 신혼살림으로 장만한 자개 수납장. 이후 옻칠과 자개 장인에게 수선을 받고 리폼을 해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거실에서 본 주방 전경. 테이블은 아내 신성선이 골동품점에서 산 옛 문짝에 월넛 테두리와 철제 다리를 붙였다. 제작 후 OLIVE TV <마스터셰프코리아> 시즌 1의 심사위원 테이블로 사용되기도 했다. 조명은 조명마니아.

 

부부가 사는 집, 본채


부부가 사는 본채는 29평 규모로 두 명이 살기에 적당한 공간으로 꾸몄다. 거실, 주방, 침실, 화장실 그리고 층고를 높게 해 다락방도 마련했다. 벽에는 도배나 페인팅이 아닌 규조토를 발랐다. 습기가 많은 제주도 날씨를 고려해 습도 조절에 탁월하고 항균, 탈취, 단열성 또한 높은 친환경 재료인 규조토를 선택한 것. 페인트 못지않게 발림성이 뛰어나고 웜 톤의 흰색이 깔끔한 분위기를 낸다. 바닥재는 구정마루의 프라하 티크 제품을 선택해 헤링본 스타일로 깔았다. 그리고 천장의 대들보로 나무를 쓰고, 나무 문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 ‘리드도어’에 디자인을 보내고 제작 주문한 초록 문도 다는 등 원목 소재를 적절히 활용해 따스하고 아늑한 집을 연출했다. 그리고 이곳에 TV와 드라마의 세트 제작 및 스타일링을 하는 아내가 15년간 모은 소품과 그간의 살림살이를 들여놓았다. “별채와 게스트하우스 말고 본채 가구는 새로 구매한 게 없어요. 그동안 썼던 걸 가지고 왔죠.” 촬영을 다니면서 전국 각지의 고가구점에서 구매한 가구, 신혼살림으로 장만한 가전제품 등을 그대로 들였다. “제주도에는 탑차가 없다고 해요. 쓸 일이 없어서요. 이사 당일 1톤 트럭 6대가 왔어요. 20분 거리를 이사하는데 말이 포장 이사지 담요나 이불, 일명 뽁뽁이라 부르는 에어캡으로 감싸기는커녕 포장 하나 없이 다 때려 넣더라고요. 이 또한 이곳의 이사 풍경이다 싶어서 마음을 내려놓았어요. 그 덕분에 힘들게 모은 고가구와 소품들이 다수 파손은 됐지만요(웃음).”

 

1 흰색 타일로 마감한 침실 화장실. 파티션과 욕조에는 모자이크 타일을 이용해 ‘헥사곤(육각형)’ 스타일로 시공,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분위기를 탈피했다. 2 계단 입구 빈 벽은 아내 신성선이 소장한 앤티크 조명으로 장식했다. 3 채도를 낮춘 올리브그린 페인트로 칠한 문과 그린 계열 타일로 꾸민 1층 거실 화장실.

 

비싸도 너무 비싼 인력과 자재


집의 골격을 잡는 ‘기초 타설’, 나무 뼈대인 ‘목골조’, 바닥에 시멘트를 붓는 ‘방통’, 벽체의 충전재와 단열재를 채우고 지붕의 방수 시트를 설치하는 작업까지. 모든 게 처음인 현장에서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설레었다. 막상 이 부부를 힘들 게 한 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자재 가격. “제주도는 생수만 빼고는 서울보다 물가가 비싸요. 특히 건축 자재의 경우 체감하는 격차가 서울에 비해 40%는 더 비싼 거 같아요. 타일, 마루, 철근, 시멘트 등이 모두 육지에서 건너오니까요. 물류비만 해도 어마어마하죠.” 

심지어 돌담을 쌓으려고 보니, 그 많다는 제주 돌마저 금값이었다. 5톤 트럭에 실은 돌 값만 100만원. 제주도에 건축 붐이 불면서 인건비도 올랐다. 멀리 육지에서 온 젊은 부부에게 텃세를 부리는 건 다반사고, 전날 분명히 약속했음에도 당일 현장에 오지 않는 인부도 흔했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타일을 시공할 때였어요. 집 안팎에 두루 타일을 시공하고 싶어서 서울에서 엄청난 타일을 공수해왔어요. 타일을 시공해줄 전문가를 섭외했는데 날림 공사를 하다 도중에 도망을 갔어요. 물이 닿는 욕실에 시멘트가 아닌 본드로 타일을 붙여놓고 사라졌더라고요. 건축하는 사람들 사이에 터부 같은 게 있었는데, 타일 작업은 누가 하던 걸 다른 사람이 와서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시공 자체가 어려울뿐더러 하자가 생길 경우 책임 소재를 따지기도 애매해서겠죠. 정말 주저앉아 울고 싶었어요. 그러다 40여 년 제주 도민으로 살며 프라이팬에 콩 볶듯 초스피드로 타일을 붙이는 고수를 만나게 돼 타일 시공을 마무리할 수 있었죠.” 

이렇게 타일공, 설비공, 전기공, 미장공 등 어렵사리 만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집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래도 늘 먼저 움직여야 했던 건 김진경·신성선 부부다. “하루는 동네 할머니가 오시더니 저 양반 일 참 잘한다고, 어떻게 저런 사람을 구했냐고 칭찬을 하더라고요. 제 남편을 가리키면서요(웃음). 직접 집을 지으려면 ‘나는 건축주’인데 하는 허례허식을 버려야 해요. 비, 바람, 눈은 자연현상이니 잠시 피했다 움직이면 되는데요. 무슨 일이든 그렇듯이 역시나 사람과 사람 간의 일이 힘들더라고요. 속에 천불이 나고 화가 들끓어도 수십 번씩 찬물을 끼얹어 진정시켜야 하고요. 누구보다도 먼저 움직여야 하더라고요.”

 

1 화장실과 다르게 옅은 회색 문을 단 침실 입구. 2 햇빛이 스며들도록 창을 낸 박공지붕 아래의 2층 다락방.

 

위미리의 새 식구가 밝힌 불빛


“이 일대가 다 과수원이에요. 실거주민이 적으니까 해만 떨어지면 거리가 금방 어두워졌어요. 저희가 1년 넘게 쿵쾅쿵쾅 시끄럽게 공사를 하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하나 하고 보셨던 이웃 어르신들이 지금은 동네가 밝아졌다고 되게 좋아하세요.” 지난 4월 말은 결혼 10주년 기념일이었다. 예측하지 못한 우여곡절을 겪느라 완공은 못한 상태였지만 두 사람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마당 앞에서 셀프 기념 촬영을 했다. “제주도에 와서 집 지으며 싸운 게 지금껏 싸운 횟수보다 열 배는 많았던 거 같아요. 늘 각개전투로 일을 하다 이렇게 하루 종일 붙어 있어 그런지 틈만 나면 티격태격했어요. 제가 ‘디테일을 살려달라’고 계속 요구하니까 남편이 화가 나서 ‘난 목수가 아니야’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억수같이 비가 퍼붓더니 쨍쨍하게 맑고 푸르른 하늘이 펼쳐지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습기는 높아도, 지천이 천혜 자연으로 둘러싸인 제주도. 환절기면 늘 시달리던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고 알레르기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가수 이효리가 말한 것처럼 가끔 서울이 그립기도 해요(웃음). 하지만 서울 살면 막 꼭꼭 숨기고 살잖아요. 대문도 꽉 잠그고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대문을 안 달고, 저기 삼나무 정낭 하나 달았어요. 나중에 불편하면 그때 대문을 달아도 되니까요. 이런 삶을 살게 되어 행복해요.” 꿈에 그리던 제주도로 이사 와 이렇게나 고생해서 지은 집에 살게 된 기분을 물었다. “먼저, 너무너무 좋아요(웃음). 이사한 첫날 아침엔 눈물이 주르륵 나더라고요. 집이 마무리된 지금은 조금씩 두려워지기도 해요. 저희 부부가 각자 10년 넘게 해오던 일을 잠시 멀리하고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되어서 그런 거 같아요. 하지만 열심히 달려보려고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요(웃음).”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와서 그렇게 좋아하던 중문에서의 서핑도 못한 채 1년이 훌쩍 지났다. 이렇게나 예쁜 제주도에서 올가을, 꼭 올레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김진경·신성선 부부의 제주살이를 응원한다.

 

 

HOUSING INFO

 

대지면적 701.0㎡(212평)(본채+별채)
건축면적 95.9㎡(29평)(본채)
연면적 77.68㎡(23.5평)(본채)
건물 규모 지상 1층
구조 목구조
마감재 지붕_징크패널, 외벽_스타코플렉스
창호재 엔썸 시스템창호
단열재 인슐레이션
설계 건축사사무소 가온
디자인과 시공 김진경, 신성선

 

*기획 : 이경현 기자 | 사진 : 김덕창

 

출처 - 리빙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