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응용 - How?

부티크 한옥 호텔 취운정

다연바람숲 2017. 7. 31. 14:33

 

 

자연을 품은 두 개의 마당과 유난히 날씬하고 경쾌한 지붕 선. 열림과 겹침을 통해서 다이내믹함을 보여주는 공간 구성은 또 어떠한가! 대통령이 묵었던 집으로 유명세를 탔던 오래된 한옥이 취운정이라는 새 이름으로 부티크 호텔로서의 현대적 비전을 품었다.

 

 

 

 

대통령이 거주했을 당시 안방이던 곳은 창밖의 자연을 끌어들이는 구조로 리디자인됐다. 바닥의 한식 이불은 모노콜렉숀에서 제작한 것. 오른쪽 벽장의 민화는 심상훈 작가의 작품으로, 대통령이 기거하던 당시에 병풍으로 쓷너 것을 살린 것이다.



1 세로로 긴 뒷마당은 옆집의 기와지붕 덕분에 운치가 배어나는 공간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지붕을 보노라면 이불보라도 널어 보송보송하게 말려야 할 것 같은 청량감이 느껴진다.

2 방 안에는 무형문화재와 장인들이 만든 생활 소품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10월에는 취운정에서 사용하는 이 멋진 물건들과 가회동 북촌상회의 전통 소품을 함께 구경할 수 있는 기회, 「살림전」 전시를 진행할 계획이라고.문의02·765-7400



이 한옥의 대다수 패브릭은 전통의 현대적 해석에 앞장서는 모노콜렉숀에 의로했다. 마루 천장의 패브릭 장식 또한 모노콜렉숀의 장응복 대표가 스타일링한 것이다.

옛것을 본받아 새롭게 창조하다

기왓장을 촘촘히 올린 도심 한옥들이 모여 있는 가회동 31번지 골목. 과거로 건너온 듯한 동네를 거닐다 보면, 저 언덕 끝 취운정(翠雲亭)이라는 새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겉으로 봐서는 여느 도심형 한옥과 다를 바 없는 이 집이 대통령을 낳은 터, 그리고 왕가의 기운이 서린 터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도 조선 최고의 명문 세가들이 정치와 문화, 예술을 꽃피웠던 곳입니다. 왕이 궁궐을 나설 때마다 머물렀던 장소로서, 경복궁과 창경궁 사이의 알려진 명당이지요. 이곳에 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자 시절 거주하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된 것이죠."

관계자의 설명 때문이었을까. 과연 이 집은 첫인상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단정한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마당에 서면, 저 아래 한옥마을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뒷마당에서 마주한 이웃 한옥의 기와지붕에서는 어찌나 풍류가 묻어나던지. 게다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한옥 내부는 또 어떠한가. 이 집의 레노베이션을 맡은 한옥 건축가 조정구 소장은 "역사가 느껴지는 새로운 집을 짓는 것"을 목표로 했단다.

최대한 원형을 살리되 부티크 호텔로서 이용을 위해 그 속에 현대적 편리함을 담은 것이다. 따라서 기존 집의 뼈대를 남겨두고 내부를 개조했는데, 이때도 최소한의 구조 변경만을 가미했다. 덕분에 10여 년 전부터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한옥 부티크 호텔을 만들고 싶었다는 집주인의 꿈은 전통에 뿌리를 둔 채 멋지게 실현될 수 있었다.



1 뒷마당에서 대문 쪽을 바라본 모습. 왼편으로는 취운정의 본채, 오른쪽으로는 이웃 한옥의 기와지붕이 보인다.

2 본채 객실은 대통령이 기거했던 방과 사진 속 이 방이 메인 룸이다. 각각의 방에 작은 방이 하나씩 딸려 있고, 화장실과 작은 바도 마련되어 있다.

3 취운정이라는 이름은 옛날 가회동에 있었던 명원(名園)에서 이름을 따왔다.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 편안한 글씨체는 전 국회의원 손주항 선생이 선물한 것이다.

전통문화를 품은 한옥 호텔

취운정은 크게 세 채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취운정이라는 간판이 걸린 대문으로 들어섰을 때,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대통령이 거주했던 본채인데, 방이 여럿이어서 현재는 별도의 2개 객실로 사용 중이다. 문밖의 언덕을 조금 더 올라 이 집의 다른 쪽 대문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본채가 위치하고, 오른쪽으로 두 개의 별채가 보이는 구조가 된다. 그 가운데는 작은 정원이 있고, 마치 자연을 옮겨온 양 소담한 꽃과 나무가 손님을 맞는다.

"아무래도 한옥이 프라이빗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가능하면 공간 사면의 문을 모두 열고 닫을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문을 위로 올리면 전체가 툭 트인 듯한 큰 공간이 되고, 어디건 문을 닫는 순간, 프라이버시를 존중받는 독채가 되는 것이지요."

취운정 주인장인 이숙희 씨의 이야기는 내부를 채운 물건들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언젠가 이런 공간을 만들어야지 하는 꿈을 꾸면서, 오랫동안 한국의 고가구들을 수집했어요. 조선시대 목가구부터 현대의 장인들이 새로 만든 전통 가구까지 한 점 한 점 모으다 보니, 어느새 이 집을 채울 정도가 된 겁니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모은 가구들은 다양한 시대와 취향이 어우러져 있다. 어떤 것은 요염함을 뽐내는 자개장이고, 어떤 것은 듬직한 품성이 느껴지는 목가구다. 더욱이 그 주변에 어우러진 미술품과 실생활 소품들까지 모두 솜씨 있는 장인과 무형문화재의 작품으로 채운 것을 보자 전통에 대한 집주인의 진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반갑게도 10월에는 호텔의 정식 오픈에 맞추어 취운정에 있는 이 멋진 전통 소품들을 「살림전」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한다. 한시적이나마 품격 있는 전통문화를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누리려는 마음에서라고.



1 상단 쪽창 밖으로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겹겹이 쌓인 기와 처마가 리듬감 있게 펼쳐진다.

2 본채의 마루는 2개의 공간으로 구별되어 있다. 사진은 뒷마당 쪽에서 중간 정원을 바라본 모습. 창호문을 내리면 이 마루 또한 독립된 방으로 사용할 수 있다.



1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쪽문 밖으로 중정이 내다보인다. 방마다 바닥 가까이 작은 문이 있어, 풀과 나무를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다.

2 본체 옆 샛길은 중정에서 뒷마당으로 이어진다.

3 본채에서 중간 정원을 바라보면 왼쪽부터 두 채의 별채가 나란히 들어서 있다. 오른쪽 저 멀리 보이는 문이 이 집의 또 다른 대문. 정원의 조경은 생태 조경 전문가 이석창이 담당했다. 제주도의 여미지식물원 등을 만들었던 전문가에게 "자연 그대로를 들여달라" 부탁했다고.

4 본채 대통령이 기거했던 방. 쪽거울에 비친 꽃도 이숙희 사장이 직접 꽂은 것이다.

5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이숙희 사장은 꽃도 마치 전문가처럼 툭툭 꽂는다. 이날은 가을에 어울리는 국화와 맨드라미를 주제로 꽃꽂이를 했다.

"이 집의 백미는 자연 정원이에요. 나무, 꽃, 바람, 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들여오고자 했지요. 어느 방에서건 풀과 나무가 보이는 구조도 신경 쓴 부분입니다. 심지어 정원이 보이지 않는 방일지라도 구석의 쪽문을 열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가까이할 수 있어요."

디테일이 있는, 아름다운 한옥에 살어리랏다

"호텔은 의식주 토털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프랑스에 가면 고성 호텔에서 그들의 전통 공간을 체험하고, 일본에 가면 료칸에서 일본의 전통을 체험할 수 있지요. 취운정 또한 우리의 전통문화체험관으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깊이 있는 한국적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곳으로요."

여행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이야기. 그래서 취운정에서는 차 한 잔을 낼 때도 스타일링까지 신경을 쓴다. 특히 집주인의 20년 노하우를 담은 한식 밥상은 그녀 스스로가 최고의 재료를 썼다 자부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촬영이 끝나 한옥을 나서기 전, 미처 발견치 못했던 보대가 눈에 띄었다. 나무에 정성스레 조각된 보대에는 심지어 뱀과 돼지가 새겨 있어서 예사롭지가 않았다.

"대통령 내외분이 사실 적에 두 분의 띠를 따서 보대를 조각해드린 겁니다. 무형문화재 허길량 선생께서 만들어주신 거예요."

이 또한 집주인의 깐깐한 미적 감각을 잘 보여주는 부분. 게다가 공간에 새겨 넣은 디테일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벽장 창호문에 신사임당의 조충도를 민화로 그려 넣고, 화장실 타일 하나도 도예가 선생의 솜씨로 태어난 것을 붙였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창호문이 열릴 때 아주 부드럽도록 문짝 디자인도 여러 차례 바꾸었을 정도라고 하니, 이 집에 스민 정성이 얼마만큼일지….

"한국에도 품격 있는 의식주 문화가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번 가을에는 가야금, 거문고 연주회도 가질 계획이지요. 눈으로 감상했으면, 마음으로 한껏 한옥을 느낄 기회도 있어야 하겠지요."

'푸른 구름 머무는 정자'라는 뜻의 취운정, 그에 서린 푸릇푸릇한 열정은 이 한옥 호텔의 행보에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게 한다.



1 벽장 창호문에는 민화를 리듬감 있게 붙였다. 신사임당의 조충도를 현대 민화 작가가 재해석한 그림이다. 그 속에 있는 한식 이불은 모노콜렉숀에서 제작한 것.

2 중간채 정자에서 별채를 바라본 모습.

3 대통령 내외의 띠를 따서 제작했다는 보대.

4 도예가 김대훈 선생이 약 1천 장의 타일을 만들어주었다. 총 4개의 욕실 모두에 선생의 타일을 붙였다.

5 최진호 작가가 만든 마당의 물확.

6 마루의 고가구에는 집주인이 모은 베개를 장식으로 올려두었다. 앞쪽 바닥의 쿠션은 취운정에서 직접 제작한 것.

기획_홍주희 사진_박찬우
레몬트리 2011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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