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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희, 韓屋한옥 짓다

다연바람숲 2017. 7. 15. 14:24

외희, 韓屋한옥 짓다

한복을 짓듯, 한옥을 지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드는 한복처럼 정성스레 완성한 디자이너 외희의 북촌 한옥.

 

 

 

쇼룸 공간으로 변신한 사랑방 자리. 비움의 미학을 살렸다.

 

쇼룸 공간으로 변신한 사랑방 자리. 비움의 미학을 살렸다.
잘 차려입은 옷이 그 사람의 감각을 일부 가늠할 수 있게 한다면, 지내는 공간은 온전히 그 사람을 말해준다. 어떤 상태를 편안하게 느끼고, 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며, 주변을 통해 어떻게 영감을 받고 있는가 등 공감각적인 요소가 녹아 있기에 제법 총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한복 디자이너 외희가 얼마 전 서울 북촌에 오픈한 한옥 쇼룸 역시 그녀의 정수를 느끼기에 알맞은 곳이다. 본래 서울 인사동 ‘외희 갤러리’에서 한복 브랜드를 운영해오던 그녀는 9년 만에 전통 한옥으로 터를 옮겼다. 한복이 가진 매력을 더욱 잘 살려줄 수 있는 공간은 당연히 한옥이다. 그녀 역시 이러한 이유로 필연처럼 한옥을 찾게 됐다.

“20대에 나의 이름을 건 무언가를 하고 싶었는데 30대가 되어 ‘외희 갤러리’를 오픈할 수 있었어요. 30대가 되면서는 한옥에서 한복을 만들고 싶어졌고 40대인 지금 그것을 이루게 됐죠. 그간 꿈을 향해 계속 달려왔다면 이제는 이 공간에서 숨을 고를 때라고 생각해요.

한복 디자이너 외희.
한복 디자이너 외희.

한복 디자이너 외희.


새로운 공간에는 ‘쉼’이라는 주제를 담아봤어요. 그만큼 신중하고 여유 있게 완성한 것 같아요.”‘한복을 짓는다’라고 표현하듯, 건축도 ‘짓는다’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둘은 닮은 점이 많다. 한복은 평면의 디자인에서부터 시작해 하나의 실물로 완성되고 건축은 설계에서 출발해 실제 공간을 구현하게 된다.
옷의 패턴과 색의 조합처럼 공간 역시 비율과 배치가 중요하다. 한복과 건축은 완성물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꼭 닮아 있다. 디자이너 외희는 한옥을 꾸리기 시작하며 한옥 설계 경험이 많은 이가 아닌, 주로 현대 건축물을 다뤘던 건축가 이승윤에게 의뢰했다.
기존의 방식을 따라가기보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옥을 선택하고 완성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적극적으로 함께했다. 이는 공간에 대한 깊은 관심도 한몫했지만 그 과정이 마치 한복을 지을 때처럼 친숙하게 느껴져서 가능했다.

좁은 창 틈에 놓은 도자 화병과 꽃 한 송이가 연출한 서정적 풍경.
좁은 창 틈에 놓은 도자 화병과 꽃 한 송이가 연출한 서정적 풍경.

좁은 창 틈에 놓은 도자 화병과 꽃 한 송이가 연출한 서정적 풍경.


외희 한복은 한복 본연의 아름다움에 집중해 전통 복식을 계승하되,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재해석해 동시대적인 감각을 잊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공간 역시 한옥의 기본 형태는 거스르지 않으면서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곳곳에 현대적인 장치를 더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한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1 강병인 작가가 선물한 캘리그래피.


2 홍경희 작가가 외희를 위해 그린 민화. ‘안으로 행복하라’는 의미를 담아 ‘내희’라는 제목을 붙였다.


3 이곳을 찾는 이들이야말로 VIP라는 생각으로 만든 피팅 룸 겸 일종의 VIP 룸. 바닥부터 벽지까지 최대한 한국적으로 꾸몄다.


4 공간에 잘 녹아드는 도자기 오브제는 김형규 선생의 달 항아리 작품, 아래의 나무장은 내촌목공소 이정섭 목수의 작품.


5 한옥이 가진 기본 틀을 고스란히 살린 내부.

여행에서 영감을 얻다


디자이너 외희의 새 쇼룸은 소담한 북촌 골목길 자락에 자리한다. 동네가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듯, 이곳은 한옥 본연의 운치를 풍긴다. 한편으로는 본채 앞으로 마당이 펼쳐져 있고 사랑방이 있는 구조가 그리 특별할 것 없다고 느껴질지 모른다.

채우기보단 비우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여백을 살린 쇼룸.
채우기보단 비우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여백을 살린 쇼룸.

채우기보단 비우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여백을 살린 쇼룸.


하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도시화된 삶에 익숙해진 이들도 지내기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한 흔적에 감탄하게 된다. 화장실, 주방 같은 공간이 특히 그러하다. 기능적으로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니만큼 이 공간은 현대적으로 구현하면서도 최대한 심플하게 구성해 전체 그림에서 그리 어긋나지 않는다.

외희 한복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세련된 색감이다. 천연 염색 방식으로 만든 총천연색 패브릭.
외희 한복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세련된 색감이다. 천연 염색 방식으로 만든 총천연색 패브릭.

외희 한복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세련된 색감이다. 천연 염색 방식으로 만든 총천연색 패브릭.
또 한옥은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바닥과 벽, 창호 시스템에 특히 신경 썼다. 단열 통유리창 바깥쪽으로는 전통적인 창살 문을 한 겹 더해 필요에 따라 전통 문은 위로 올렸다 내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독일식 오디오 시스템. 특유의 앤티크한 매력이 공간에 잘 어우러진다.
독일식 오디오 시스템. 특유의 앤티크한 매력이 공간에 잘 어우러진다.

독일식 오디오 시스템. 특유의 앤티크한 매력이 공간에 잘 어우러진다.
마당 역시 관리하기 쉽도록 석재 블록을 깔되, 중간중간에 잔디를 심어 푸른 기운을 더했다. ‘ㄱ’ 자로 구성된 본채의 중간중간에는 미닫이문을 설치해 평소에는 활짝 열어서 모두 통하도록 하고, 클래스를 할 때나 요리를 하는 등 구역을 구분해야 하는 때는 문을 닫아서 각공간을 분리시킨다.

대문에서 들어왔을 때 보이는 볕이 잘 드는 마당과 고즈넉한 한옥의 풍경.
대문에서 들어왔을 때 보이는 볕이 잘 드는 마당과 고즈넉한 한옥의 풍경.

대문에서 들어왔을 때 보이는 볕이 잘 드는 마당과 고즈넉한 한옥의 풍경.
이런 디테일한 요소는 모두 그녀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공간에 대한 이해나 감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터. 건축과 인테리어에 대한 남다른 안목은 숱한 여행이 기반이 됐다고 말한다. “최고로 잘 어우러지는 것들을 모아놓은 공간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여행지의 숙소가 그러하죠. 매번 여행지에서는 건축물을 비롯해, 좋은 숙소에서 감각과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요. 한동안은 문에, 또 언젠가는 건축물의 아웃 핏에 빠져서 그것만 보며 사진에 담았죠. 얼마 전 뉴욕 여행에서는 동파 예방이 되면서도 외관을 거스르지 않도록 건물 속에 살수 장치를 넣은 게 기억나네요.”

북촌 골목에 위치한 외희의 한옥.
북촌 골목에 위치한 외희의 한옥.

북촌 골목에 위치한 외희의 한옥.


공간 스타일링을 할 때에도 여행지에서 보고 느꼈던 감성을 떠올렸다. 가장 그 나라다운 모습이야말로 멋스럽다는 것을 알기에 한옥만큼은 전통이 잘 살아 있도록 꾸미는 데 주안점을 뒀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평소 지론에 맞춰 물건의 가짓수는 그리 많지 않다.
대신 하나를 채우더라도 의미 있게 담기 위해 노력했다. 내촌목공소 이정섭 목수의 가구와 양병용 선생의 서안, 나무를 다루는 양웅걸 작가의 테이블 등 실제로 사용하는 가구부터 김형규 선생의 달 항아리, 변동해 선생의 마음을 닦는 빗자루, 강병인 선생의 캘리그래피 등의 소품까지 두루 어우러져 공간을 더욱 빛내고 있다.

이곳의 뷰포인트. 한쪽에 앉아 처마를 걸쳐서 바라보는 풍경이 고즈넉하다.
이곳의 뷰포인트. 한쪽에 앉아 처마를 걸쳐서 바라보는 풍경이 고즈넉하다.

이곳의 뷰포인트. 한쪽에 앉아 처마를 걸쳐서 바라보는 풍경이 고즈넉하다.
“외희의 한복을 보여주고 직접 느낄 수 있는 이 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마치 꿈을 짓는 것 같았어요. 이곳에서 펼칠 일들이 시작되는 지금부터가 진짜 꿈을 만들어가는 것이겠죠. 밖에서 빛난다는 ‘외희’라는 이름처럼 언제나 빛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한복을 짓는 디자이너와 그러한 일상을 담아내는 한옥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감을 준다. 새로운 한옥에서 한복을 짓는 그녀의 한복 인생 제2막은 지금 시작됐다.

에디터_박주선 | 사진_전택수
여성중앙 2017.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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