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생각으로 세월에 기댔을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평화를 얻으리라 생각했을까. 20대의 어느 대목에선가는 20대가 참 길다고 생각했고 , 어떤 격정에 휩싸이다 결국 자학에 빠질 때는 편안해지리란 이유로 어서 나이를 먹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그때 그랬다. 서른이 되면 , 혹은 마흔이 되면 수습할 길 없는 좌절감에서 빠져 나오지 않겠는가 , 살아가는 가치 기준도 생기고 이리저리 헤메는 마음도 안정이 되지 않겠는가. 그때쯤이면 어느 소용돌이에도 휘말리지 않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언제나 새로운 생김새의 불안과 막막함이 가로 놓여있다. 나아지기는 커녕 이제는 무슨 일을 시작해서 실패를 하면 그 실패의 영향이 내내 앞으로의 인생에 상처로 작용하게 될 것 같아 살얼음판을 딛는 것 같은 조심스러움까지 동반한 막막함 , 그 때문인가. 운신의 폭은 점점 더 좁아지고 , 등짝에 멍이 든것 같은 마음 시림은 더해진다. 어쩌면 인간이란 본래 어느 구석이 그렇게 비어 있고 , 평생을 늘 그 빈 곳에 대한 결핍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선배와의 불화속에서 요즘 내가 느끼는 것은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근원적인 결핍을 지니고서도 사람이 사랑과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은 사람 옆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 그런데 이기심으로 집착으로 무성의로 늘 사람을 잃어버리며 지낸다. 실제로 어떤 현상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만이 죽음은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속에서도 죽음은 수도 없이 이루어진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탓으로 내 곁에서 사라지게 햇던 사람들. 한때 서로 살아가는 이유를 깊이 공유했으나 무엇 때문인가로 서로를 저버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관계의 죽음에 의한 아픔이나 상실로 인해 사람은 외로워지고 쓸쓸해지고 황폐해지는 건 아닌지.
나를 속이지 않으리라는 신뢰 , 서로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사람이 주변에 둘만 있어도 살아가는 일은 덜 막막하고 덜 불안할 것이다.
마음 평화롭게 살아가는 힘은 서른이 되면 , 혹은 마흔이 되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 내 아픔과 기쁨을 자기 아픔과 기쁨처럼 생각해 주고 , 앞뒤가 안 맞는 얘기도 들어주며 , 있는 듯 없는 듯 늘 함께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행복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이 온전한 사랑이라는 생각도 , 언제나 인연은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았더라면 , 그랬다면 지난날 내 곁에 머물렀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덜 줬을 것이다.
결국 이별할 수 밖에 없는 관계였다 해도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시의 한 구절처럼 우리가 자주 만난 날들은 무지개 같았다고 말할 수 있게 이별했을 것이다. 진작 인연은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았더라면.
신경숙 수필 <인연은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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