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공지영

다연바람숲 2016. 1. 9. 14:25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 사악한 것은 한 가지뿐이지.

그건 당신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야.

 

                                                          찰스 프레드 앨버트 <인간은 왜 악에 굴복하는가>

 

슬픔 속에서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

눈물에 젖은 채 내일을 갈망하며 밤을지새우지 못한 삶

그들은 모른다 성스러운 힘을

 

                                                      괴테

 

 

"우리 태어나야지,하고 태어난 사람 손들어봐요"로 시작된 그 말,"우리가 남자로 할지 여자로 할지 자기가 결정한 사람 손들어봐요."로 이어진 그 말, "우리가 죽고 싶을 때 맘대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으로 이어지던 그 말들...... 사춘기 무렵 나는 자살에 대해 열렬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을 생각해냈는데 나는 나를 죽일 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page 109

 

누구에게나 슬픔은 있다. 이것은 자신이 남에게 줄 수 없는 재산이다.

모든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있지만 자신만은 남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소유한 비극은 있다.

그 비극은 영원히 자신이 소유해야 할 상흔이다.

눈물의 강, 슬픔의 강, 통곡의 강,

슬픔은 재산과는 달리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 분배되어 있다.

 

                                                    박삼중 스님

 

신기하게도 기억은 그 당시에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보게 해준다. 무대 구석에서 작은 제스처를 하는 엑스트라에게 비추어지는 핀 라이트처럼, 기억은 우리에게 그 순간을 다시 살게해줄 뿐 아니라 그 순간에 다른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때로 우리가 기억이라고 믿었던 것과 모순될 수도 있다.

 

                                                                                              page 129

 

그녀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도 겨우 마지막 순간 쥐어짜며 했던 그 말, 그 용서라는 것에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겁없이 도전했고, 인간으로서 패배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패배한 이유가 오만이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순간, 내 마음속으로 그녀는 이미 성녀의 월계관을 쓴 거 같았다. 그것은 그녀의 지난 과거와 다가올 미래 그 어떤 것과도 아무 상관이 없을 터였다. 내가 이제껏 인간에게 이런 점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내 주변에서 언제나 그 사람은 쭉 그렇게 살고 이 사람은 쭉 이렇게 살았다.

 

                                                                                               page 138

 

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깊은 내면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보여지는 것만큼 훌륭하지 못하다는 걸 알아. 의식하든 안하든 말야. 그래서 고모는 그런 사람들 안 싫어해. 죽는 날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걸 들키지않으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도 생각해. 고모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실은 어느 정도는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위악을 떠는 그 순간에도 남들이 실은 자기들의 속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 사람들은 실은 위선자들보다 더 교만하고 가엾어......

 

                                                                                               page 158~159

 

살고자 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건데,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때문이야.....

 

                                                                                               page 159

 

착한 거, 그거 바보같은 거 아니야. 가엾게 여기는 마음, 그거 무른 거 아니야. 남 때문에 우는 거, 자기가 잘못한 거 생각하면서 가슴 아픈 거, 그게 설사 감상이든 뭐든 그거 예쁘고 좋은 거야. 열심히 마음 주다가 상처 받는 거, 그거 창피한 거 아니야..... 정말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상처도 많이 받지만 극복도 잘하는 법이야.

 

                                                                                               page 160

 

아는 건 아무것도 아닌거야. 아는 거는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중요한 건 깨닫는 거야. 아는 것과 깨닫는 거에 차이가 있다면 깨닫기 위해서는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page 160

 

 

나는 인생을 즐기고자 신께 모든 것을 원했다.

그러나 신은 모든 것을 즐기게 하시려고 내게 인생을 주셨다.

내가 신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 하나 들어주시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뜻대로라고 희망했던 것은 모두 다 들어주셨다.

 

                                                      이태리 토리노에 있는 무명용사의 비

 

내가 그에게 느꼈던 동질감은 무수히 많았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우리가 인생의 어떤 시기부터 내내 죽음의 열차를, 쫓겨서 그랬든, 자발적으로 그랬든, 타고 싶어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열차라는 것을 타고 싶다고 생각하고 나면, 세상의 가치들이 모두 헤쳐 모여, 했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중요해지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중요해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왜곡된 것도 많았지만 제대로 보이는 것 또한 많았다. 죽음은 이 세상의 가치 중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모든 소유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page 201

 

모두들 얼마간 행복하고 모두들 얼마간 불행했다. 아니, 이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간 불행한 사람과 전적으로 불행한 사람 이렇게 나눌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종족들은 객관적으로는 도저히 구별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뮈 식으로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들이란 없고 다만, 행복에 관하여 마음이 더, 혹은 덜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인 것이다.

 

                                                                                               page 218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page 248

 

신문을 보니까 사람들이 단풍구경을 간다고 하는 기사가 있었어요. 문득 단풍은 사실 나무로서는 일종의 죽음인데 사람들은 그걸 아름답다고 구경하러 가는구나 싶었어요....... 저도 생각했죠. 이왕 죽을 김에, 단풍처럼 아름답게 죽자고, 사람들이 보고 참 아름답다, 감탄하게 하자고.

 

                                                                                              page 260

 

신비롭게도 사람이 삶을 배우는 데 일생이 걸린다.

더더욱 신비롭게도 사람이 죽음을 배우는 데 또 일생이 걸린다.

 

                                                                 세네카

 

나는 항상 이것만은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것은

우리들은 언제나 어려움에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려운 쪽이 바로 우리들의 몫이지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