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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전설의 49 페이지 / 천경자

다연바람숲 2015. 10. 27. 18:09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 그녀가 자유를 찾던 날

 

 

 

기다림과 슬픔 벗고 자유롭게 떠난 힘은
타인 아닌 자기 안에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 130×162cm, 종이에 채색, 개인소장.

 

 

 

윔바윔바, 윔바윔바, 더 라이온 슬립스 투나잇(The lion sleeps tonight). 천경자(1924~2015 )가 그린 아프리카 밀림을 보니 나도 모르게 이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사자가 잠들지는 않았지만 배불러서 사냥할 생각이 없는 평화로운 밀림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눈을 감은 코끼리의 등 위에 고개를 푹 숙여 머리를 전부 앞쪽으로 늘어트린 여인이 보인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라는 제목이 암시해주듯 이 상처받은 나체의 여인은 아마도 천경자 자신의 모습인가보다. 그녀는 49년이라는 세월을 줄곧 함께 한 슬픔을 떨쳐 버리려 아프리카로 간 것일까.
 
천경자는 도쿄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유학시절에 만난 남자와 결혼해 딸까지 하나 낳았다. 하지만 그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모교인 전남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하던 중 또 하나의 사랑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랑 역시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었다. 첫 결혼의 실패가 남겨놓은 그늘이 그녀에게 드리워져 있었고, 무엇보다 아직은 새로운 사람을 맞이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그녀가 사랑의 감정을 느낀 그 남자에겐  방랑벽이 있었던 것 같다. 한 곳에 정착해 가정을 꾸릴 사람이 못되었던 것이다.
 
한 번은 저녁을 먹다가 둘이 다퉜는데, 그 길로 남자는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다가 1년 반이 지난 후에 불쑥 집에 돌아와 방금 전까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곤 했다. 그와 함께 지냈던 시절을 천경자는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그가 가면 가고, 찾아오면 받아들인다는 그런 생활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딸을 볼 때마다 속이 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 남자의 연락을 받고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고 나가려는 딸의 등 뒤에서 엄마는 울부짖곤 했다. “니 지금 나가면 니 죽고 나 죽는 거다.”
 
하지만 예술가에겐 저주 같은 운명이 효력을 발휘해 잠재된 예술성에 날개를 달아 주기도 한다. 천경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미인도에는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고, 뱀처럼 서늘하면서도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양면성이 서려있다. 상대를 끔찍하게 혐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솟아오르는 그리움, 꿈틀거리는 원망과 좌절감으로 인해 작품은 깊이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쉽게 가고 쉽게 오기를 반복하던 그 남자는 어느 날 정말로 떠났는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천경자는 마흔 아홉 살이 되던 해에 드디어 관계라는 운명으로부터 자유롭기로 마음먹는다. 누구에게나 자기가 생각하는 자유가 있다. 그녀에게 자유롭다는 건 ‘혹시나 그가 오지 않을까’ 해서 이사도 가지 않고 같은 집에 살면서 멀리 떠나보지도 못한 삶을 접는 것이었다.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가장 먼 나라들을 골랐다. 남미에 가서는 흥겨운 리듬감을 찾았고, 아프리카에서는 원시적인 색채를 발견했다. 영국으로 날아가 에밀리 브론테의 생가를 방문하는가 하면, 스칼렛 오하라를 창조해낸 마가렛 미첼의 고향도 찾아갔다. 그녀는 ‘폭풍의 언덕’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주인공의 열정과 강인함을 흡수했다.
 
이제 천경자는 자기 일생에서 벌어진 어느 사건을 돌아보면서 ‘슬픈’이라는 단어를 붙일 만큼 담담해졌다. 슬픔 속에 머물렀던 나날들을 부정하지 않고 모두 끌어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슬픔을 안아줄 수 있는 것은 타인의 품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자유였던 것이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 / 한국교직원신문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