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발라동, <아담과 이브>, 1909년, 캔버스에 유채
ㆍ남자들은 왜 그러는 건가요?
<순례자>에서 파울로 코엘료가 말했습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금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금기는 지켜질 때 가장 안전하지만 지켜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의식은 금기가 깨지는 고통의 현장에서 성장을 시작하니까요.
“나를 보려 하지 말라”는 것이 에로스의 금기였다면 에덴의 금기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여호와는 인간이 인식의 나무 열매를 먹지 않기를 애타게 원하셨던 걸까요? 혹 여호와는 인간 스스로 목숨을 걸고 그 나무 열매의 비밀을 알아가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니체가 말합니다. 인식의 나무 아래 뱀으로 누워 이브를 유혹했던 것은 신 자신이었다고.
아시다시피 에덴의 금기가 깨지면서 인간의 역사, 의식의 역사가 시작되지요? 많은 화가들이 그 순간을 그렸습니다. 사람들의 그림 속에서도 아담과 이브는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매혹적이거나 슬프거나 비장하거나 고통스럽거나 순수하거나 무지하거나 무구하거나 불안하거나. 그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바로 남자가 아닌 여인이 그린 저 그림, ‘아담과 이브’입니다.
수잔 발라동의 ‘아담과 이브’는 독특합니다. 우선 아담과 이브의 표정이 확실히 구분됩니다. 대조적이지요. 두려움 없는 여자와 두려움으로 비겁해진 남자! 시간이 저절로 가르쳐주는 것에 대해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이끌리는 무구한 여자와 원하는 것조차 제 손을 더럽혀서는 얻지 않으려 하는 야비한 남자! 유혹할 의도 없이 유혹적인 여자와 유혹당하면서도 제대로 사랑할 줄은 모르는 남자!수잔 발라동, 그녀는 19세기 파리에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납니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손가락질과 칼바람 같은 가난을 겪으며 그녀는 곡예사로, 세탁부로 안 해 본 것이 없습니다. 그런 여인이 인상파 화가들의 모델이 되면서 그림을 배우고 그림을 배우면서 자기 삶을 성찰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녀가 르누아르, 로트렉, 드가와 같은 세계적인 화가들의 모델이 되어 그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일까요, 운명일까요? 그녀를 보면 가혹한 운명 앞에서 무릎을 꺾고 울지 않고 오히려 운명을 스승 삼아 거기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구나 싶습니다. 그녀가 그린 아담의 몸짓을 보십시오. 이브는 두려움 없이 인식의 나무 열매를 따려하는데, 아담은 그 열매를 따려는 이브의 손목을 잡고 있습니다. 아담은 열매를 따는 이브를 도우려는 걸까요, 아니면 따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는 걸까요? 아담은 선악과 앞에서 이브를 부추기며 억누르며 나중을 위한 변명을 만드는 치사하고 비겁한 몸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수잔 발라동이 성서의 아담을 제대로 해석한 것 같지 않습니까? 결국은 선악과를 먹었으면서도 내가 먹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주신 여자 때문에 먹게 되었다고 변명하는 존재가 창세기 속 아담입니다. 여자는 변명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매 순간 마음을 다해 사랑할 줄 모르는 남자, 사랑할 때도 도망갈 길을 마련하는 남자에게 어찌 마음을 열겠습니까? 아니, 마음을 닫아버리지요.
저 아담과 이브를 보면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는 이브입니다. 발라동은 순수한 사랑 앞에서도 한없이 복잡해지는 비겁하고 비루한 남자들을 거치며 성숙한 여인으로 성숙해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브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채 벌거벗고 있는데 아담은 가리고 있지요? 아담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불안이 생기고 허세가 생기지 않나요? 남자들은 왜 그러는 거지요? 그런데 여자들은 안 그런가요? 나는 내게 묻습니다. 너는 있는 그대로의 너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으냐고? 사실 생긴 게 부끄럽고, 배우지 못한 게 부끄럽고, 가난한 부모가 부끄럽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이 부끄러우면 우리는 저 그림 속 아담인 겁니다. 그나저나 아담과 대조되는 그림 속 이브가 참 예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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