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은밀한 생 / 파스칼 키냐르

다연바람숲 2014. 10. 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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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여덟 가지가 사랑의 증거이다. 심장, 말을 안 듣는 사지, 나른해진 몸뚱어리, 굳어진 혀, 수척한 모습, 눈물, 비밀, 홀로 타오르는 육체의 정염. 이러한 것들이 정열적인 사랑의 여덟 가지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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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여덟 가지가 사랑의 결과이다. 사랑은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고통을 진정시키고, 죽음을 떼어놓고, 사랑과 관련되지 않는 관계들을 해체하고, 낮을 증가시키고, 밤을 단축시키며, 영혼을 대담하게 만들고, 태양을 빛나게 한다. 이러한 것들은 정열적인 사랑의 효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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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는 침묵해야 한다. 자신의 거짓말의 비밀이 침묵에 부쳐져야 한다. 비밀은 그것이 표명될 수 없기 때문에 겉모습이 전부가 아닌 인간들 사이의 유일한 관계이다. 외향적인 모든것은 지각되거나 알려질 수 있는 하나의 형태이다. 단지 감춰진 것만이 심정에 연결될 수 있다. 심정들을 결속시킬 수 있다. 비밀만이 실질적으로 사람들을 결속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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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은 단지 하나다." 이것이 사랑의 허구이다.

"우리는 둘이고 타인들이다." 태생 동물에게서의 성(性) 분리는 이렇게 정의된다.

"우리는 둘인데, 비슷하고 상호적이다." 바로 이것에 언어와, 언어가 고안해낸 대화와,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대화자의 자아 짊어지기e'gophorie가 예속되어 있다.

기표(열정적인 장면, 교합 중인 남녀 양성의 불가능한 통합)는 즉시 우리는 하나다 라는 하나의 기의(의미)를 가진다. 이 의미는 항상 실패한다. 타인은 절대로 하나가 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삶의 의미가 아무리 미화되고, 찬양되고, 신성시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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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큼 생존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 우리가 사랑을 이해하는 바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러하다. 철학자들이 이해하는 방식과도 다르다. 추억으로서가 아니다. 사랑에 관한 지식으로서도 아니다. 회한으로서는 전혀 아니다. 이미지들도 절대 아니다. 전혀 향수가 아니다.

그러나 타인, 사랑하던 바로 그 여인,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타인, 말을 건넬 수 있는 여인으로 남아 있는 타인, 그녀를 위해서 나는 살아간다. 이 세계를 떠났지만 내 영혼 속에 들어와 박힌 채로 남아 있는 타인.

진주의 영롱한 반사광으로 남아 있는 타인. 반사광의 움직임은 대상의 사람짐 너머로 끈질기게 지속되었다.

칸막이 벽 너머의 타인.

기도 너머의 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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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외적인 것, 타인 안의 타인에게서 느끼는 황홀감이다. 그것은 나가기의 출구issue 이다.

 

독서는 오히려 내적인 것, 자기 안의 타인에게서 느끼는 황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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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이란 두 나뭇가지 사이에 걸쳐진 이슬이 반짝이는 거미줄이라고들 한다. 새벽에 수줍게 솟아난 가장 작은 빛도 그 거미줄에 걸리고 만다.

 

2. 거미줄은 작은 날벌레들이 몰려드는 죽음의 함정이다.

행복 역시 욕망에 족쇄를 채우는 함정이다.

그러므로 행복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별이 불신하는 행복.

 

결별이 재회할 수 없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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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온통 흘러가는 시간으로 변한다. 사랑의 추억은 미래로서의 사랑에 관련된다. 사랑과 결별은 서로 묶여 있다. 그것들이 태어날 때부터 결합되어 있는 것은, 큰 울음 소리를 내면서 어두운 세계에 결별을 고하는 것이 태어남이기 때문이다.(벌거벗은 육체를 떠나서 벌거벗은 육체로서 불쑥 나타나기).

마리나 츠바타예바는 이렇게 썼다 : "그랬었다, 그랬었다, 그랬었다! 과거는 그토록 생생히 현재보다 더 살아 있다! "

 

 

파스칼 키냐르 < 은밀한 생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