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올드-Vintage

오늘의 행복론

다연바람숲 2013. 8. 16. 19:08

 

내가 읽은 인상적인 행복론은 아이리스 머독이란 현존 여류 작가가

한 소설 지문에서 적고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나의 행복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너무 슬퍼서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불행인 줄 알고 내던졌었다."

 

 유종호《내 마음의 망명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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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향해 가는 햇볕의 열기가 조금 순해졌습니다.

정수리에 콕 박힐 것 같던 따가움도 많이 비스듬해졌습니다.

바람이 선뜻 불 때마다 길 건너 매미가 일제히 짧은 울음을 울다가 그치기를 반복합니다.

해가 기울고 길가에 그늘이 넓어지면서 그늘을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이 느려집니다.

서쪽을 바라보는 어느 3층 건물의 창문은 막바지 하루빛을 받아내느라 눈부신데,

배경처럼 펼쳐진 오늘 저녁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안그려진 파랑입니다.

 

이런 저녁을 잠시 고요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행복인 줄 모르던 때도 있었습니다.

가만가만 숨을 고르고 내 하루가, 내 마음이 하는 말을 듣는 일이 행복인 줄 모른 때도 있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불행하지않았던 순간은 모두 행복이었다는 것, 그 사소한 진실을 알기까지

왜 내게만인지, 부정하고 벗어나고싶은 불행의 슬픈 얼굴만을 기억하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삶을 따뜻하게하는 순간들, 사람들, 마음들, 내게 온 행복의 표정을 읽어내는 법을 알아갑니다

 

어제는 그런 날이었지요.

혼자있다보니 어쩌다 때를 놓쳐 늦은 식사라도 함께 해줄 사람을 찾았을 뿐인데...

오래 피붙이처럼 지내는 아우는 갓지은 밥에 내 좋아하는 반찬까지 만들어 도시락을 싸서 달려와주고,,

오며가며 지날때마다 살뜰하게 챙겨주시는 고객님은 온갖 과일에 따끈한 떡 한보따리 안겨주고 가시고,

광복절이니 혹 휴일일까 연락드린 정든 이웃의 언니는 이른 퇴근길을 달려와 저녁을 챙겨주고,

먹은 건 한끼 식사였지만 정작 나를 배부르게한건 나를 외롭지않게해준 그 맛있고 따뜻한 마음들이었습니다.

그 마음들 있어 아마도 나는 아주 오래 사랑이 고프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나의 행복론은 그렇습니다.

사랑은 참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랑이 주는 그 무한 가능성을 믿는 것, 그것이 오늘의 행복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