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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구 입문자의 첫 선택 … 쓸모 많고 친근한 반닫이의 매력

다연바람숲 2013. 1. 2. 19:45

 

고가구 입문자의 첫 선택 … 쓸모 많고 친근한 반닫이의 매력

 

시골집 안방엔 옷장으로
아파트 거실에선 장식장으로
‘품격 있는 빈티지’ 반닫이

 

경첩·장석의 조형미가 아름다운 ‘강화반닫이’. 가운데 호리병 또는 거북 모양의 경첩이 특징이다.
‘반쪽을 여닫는다’는 말에서 유래한 ‘반닫이’는 한국 고가구 중 가장 사랑받고 있는 제품이다.

전문가들은 반닫이의 첫 번째 매력을 “1억원대에 거래되는 강화반닫이부터 50만원대의 강원도반닫이까지, 생산 지역별로 조형적 특성이 각기 달라 감상하는 맛이 있다”고 꼽았다. 1950년대까지도 제작됐기 때문에 우리와 친숙하다는 점도 매력이다. 튀지 않는 나무 빛깔이어서 주거공간 어디에 두어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이렇듯 장점이 많은 반닫이의 매력을 f가 자세히 살펴봤다.


전 세계적으로 오래된 ‘앤티크 가구’ 또는 ‘빈티지 가구’가 유행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2~3년 사이 서울 인사동을 중심으로 고가구 거래가 부쩍 활발해졌다. 거래 품목은 책장·서안(책상)·돈궤·약장·소반·반닫이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중 가장 인기가 좋은 게 바로 ‘반닫이’다. 시골 할머니 집에서 보았던 친숙함, 아파트 같은 현대적인 공간에 놓아도 어울리는 자연스러움이 반닫이의 매력이다. 여기에 이제는 생산이 중단됐다는 ‘희소가치’까지 더해져 최상품의 경우 1억원대를 호가한다. 한국 고가구에 입문하기 가장 좋은 가구, ‘반닫이’의 매력과 가치를 자세히 살펴봤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촬영협조=인사동 한국 고가구점 ‘나락실’

 

패션 디자이너 장광효씨 집. 백동 장식이 특징인 평양반닫이를 중심으로 양쪽에 오래된 서양 스탠드 램프와 의자를 놓았다. 반닫이 위에 있는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 액자까지, 동서양의 문화가 조화롭게 어울린 모습이다.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수공예품의 가치”

“한국 고가구의 첫 번째 매력은 희소가치 때문이죠.”

 서울 인사동에서 25년간 한국 고가구점 ‘나락실’을 운영해온 이애란(51) 사장의 말이다. “이미 생산이 멈춘, 그리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공예품들이니까요. 멀게는 고려시대부터 가깝게는 1950년대까지 시대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골동품들이라는 얘기죠.” 당연히 ‘나만 갖고 있다는 만족감’이 클 수밖에 없다.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고급 취향과 취미를 가졌다는 차별성 또한 고가구에 대한 관심과 소유욕을 불러 일으킨다.

 홍익대와 숙명여대에서 한국 고가구 강의를 하면서 아버지 고 김필환씨의 대를 이어 인사동에서 한국 고가구점 ‘고도사’를 운영하는 김미라(42) 대표는 “이야기가 있는 친숙함”을 한국 고가구의 매력으로 들었다. “할머니·할아버지가 쓰시던 가구를 다시 보면 저절로 향수에 젖게 되거든요. 가족끼리 또는 손님을 초대했을 때 ‘가구’에 얽힌 사연들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질 수 있죠. 외국인들을 집에 초대했을 때는 한국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됩니다.”

 수많은 고가구 중 반닫이가 특히 사랑받는 이유는 50년대까지도 우리 일상에서 실제로 쓰였던 가구였기 때문이다. 억대를 호가하는 문화재급 최상품은 물론 적지만 반닫이 자체의 개수만 따지면 다른 가구들보다 숫자가 훨씬 많다. 그래서 구입하고 사용하는 데 부담감이 덜하다. 반닫이는 필수 혼수품 중 하나였기 때문에 50년대까지 활발히 제작됐다. 김 대표는 “서안이나 삼층책장 같은 선비용 가구들은 전해지는 숫자가 적어 가격도 비싸다. 하지만 반닫이는 일상용품이었고 제작 숫자도 많아 가격대가 다양하다. 또 지역별로 종류도 다양하다. 그래서 자신의 경제력과 취향에 맞는 물건을 구하기 쉽다”고 말했다.

만든 지역 따라 가격 50만~2억5000만원

 

나뭇결이 잘 살아 있는 밀양반닫이는 경첩 모양이 화려한 게 특징이다.
‘반닫이’는 ‘반쪽을 여닫는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면 상부에 문짝을 달아 상하로 여닫는 형태를 가졌다. 반닫이는 지역별로 모양이 약간씩 다르다. 과거 가구 장인들은 사대부 집안에 소속돼 있어서 이주가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한 지역에서 대를 이어 가구를 만들면서 그 지역만의 독특한 경첩(문짝을 다는 데 쓰는 철물), 장석(금속장식) 등으로 ‘얼굴(반닫이 정면을 부르는 별칭)’을 완성했다. 이 얼굴의 조형미에 따라 반닫이 가격이 차이가 난다.

 이애란 사장은 “지역에 따라 경기·강원·경상·평안반닫이로 나누고, 이를 더 세분화시켜 강화·평양·밀양·진주·고흥반닫이 등으로 나눈다”며 “이 중 가장 선호도가 높은 게 ‘강화반닫이’”라고 했다. 전체적으로 조형미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국 전통목가구』의 저자인 용인대 박영규 교수는 책에서 강화반닫이의 조형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체로 묵직하면서도 깔끔한 편으로, 그 특징을 살펴보면 ▶소박한 재질인 소나무를 사용했고 ▶폭과 비교해 높이가 높아 시원하고 ▶두꺼운 무쇠장석에 만(卍)·아(亞)자 등을 투각해 장식성을 높였고 ▶중심에 표형(瓢形·표주박 또는 거북 모양) 경첩과 그 아래에 배꼽장석이 있으며 ▶자물쇠앞바탕 좌우에 조그마한 원형장석을 박아 자물쇠를 열고 닫을 때 앞판재가 상하는 것을 막고 있다.”

 강화반닫이 다음으로 선호도가 높은 것은 ‘밀양반닫이’다. 그 뒤로는 경기도 ‘남한산성반닫이’, 경상도 ‘예천반닫이’, 전라도 ‘나주반닫이’ 등이 있다. 이 사장은 “최상품의 경우 강화반닫이는 1억원 선에 거래되며 지금까지 거래된 최고가는 2억5000만원이었다”고 했다. 밀양반닫이의 평균 가격은 8000만원 정도이며, 남한산성·예천·나주반닫이는 대략 1100만~2000만원에 거래된다. 가격이 저렴한 축에 끼는 제주반닫이는 300만원 선 이하, 강원도반닫이는 50만~300만원 선이다. 이 사장은 “상태와 조형미의 수준에 따라 몇십만원대의 반닫이도 많다”며 “이렇게 가격이 저렴한 것은 숫자가 많아서”라고 했다. 숫자가 많아 희소가치 면에서 저평가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가격의 높고 낮음보다는 자신의 취향과 공간의 분위기에 따라 선택하는 게 좋다”는 게 이 사장의 조언이다.

형태 반듯하고, 경첩 견고해야 좋은 반닫이

 

평안도 박천 지방에서 만들어진 박천반닫이. 구멍이 숭숭 뚫린 경첩 모양이 독특해서 ‘숭숭이반닫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반닫이는 기본적으로 수납을 위한 가구다. 현대적인 공간에서도 여전히 수납 용도로 쓸모가 많다. 안에는 계절 옷을 담아 두고, 위에는 작은 소품들을 놓아 두기에 편리하다. 크기도 다양해 공간의 크기에 따라 선택의 여지도 많다. 김미라 대표는 “책장·자개농 등은 가격이 비싸 실생활에서 직접 활용하기보다는 관상용으로 모셔 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닫이는 가격이 다양해 일상생활에서 직접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국의 고가구들은 튀는 색깔이 아니어서 있는 듯 없는 듯 푸근한 맛을 준다. 그래서 어떤 공간에 놓아도 잘 어울린다. 아파트나 빌라 같은 현대적인 공간에 반닫이를 두는 경우는 이미 흔하다.

 반닫이를 두는 가장 좋은 자리는 거실이다. TV가 없는 다른 벽면의 중앙에 반닫이를 놓고 그 위에 도자기 등의 작은 소품들을 올려놓는 게 일반적인 활용법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박용호(66) 교수 집에서는 반닫이 위에 장식용 앤티크 전화기와 찻잔 세트를 놓아 두었다. 부인 정난영(62)씨의 취미는 다도다. 한국 다기는 물론 서양 앤티크 찻잔 세트도 여럿 가지고 있다. 이것을 반닫이 위에 전시한 것이다. 정씨는 “일부러 한국 다기 대신 서양 찻잔을 올려 놓았다”며 “동서양의 오래된 물건끼리 조화를 이룬 모습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우리 집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인테리어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자형 경첩 외에는 장식이 없는 나주반닫이에는 소박하고 담백한 멋이 있다.
 손님방 또는 다도용 방에 반닫이를 두기도 한다. 모양이 반듯하고 깔끔해서 아무것도 없는 벽에 반닫이를 놓아 두면 공간이 정갈하면서도 기품 있어 보인다. 필요한 이불과 베개 등을 안에 넣어 두거나 위에 올려 두기에도 좋다. 공간을 소박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반닫이의 매력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고가구는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 골동품상 등 전문 업체를 찾아다녀야 한다. 반닫이를 고를 때는 형태의 반듯함부터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목가구는 습도와 기온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관리를 소홀히 한 경우는 표면이 휘어져 있기 십상이다. 특히 온돌과 바로 맞닿는 바닥은 온도·습도의 차이에 따라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다. 뚜껑을 열고 안쪽 바닥과 벽면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경첩과 장석에 녹이 슬거나 헐거운지도 봐야 한다. 이들 장식은 단순히 조형미만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여섯 개의 면이 견고하고 반듯하게 물릴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서로 잡아 주고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한다. 고가구를 고를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안목’이다. 김미라 대표는 “고가구에 입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격에 대한 편견 없이 많이 보면서 조금씩 안목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또 “신뢰할 만한 가구점과 친해지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자신의 경제력에 맞는 저렴한 것부터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이애란 사장 역시 “전문서적과 박물관 전시 도록 등을 보면서 지역별 특색을 공부하고 인사동에 나와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며 “조형미·비례미는 눈으로 익혀서 얻을 수밖에 없는 덕목”라고 조언했다.

 

 디자이너 장광효의 고가구 예찬

거실 빛내는 소품 … 반닫이는 신혼부부 장만 필수품목

 

패션 디자이너 장광효(53·사진)씨는 소문난 고가구 매니어다. 화장실을 빼곤 거실, 침실, 공부방, 식탁이 있는 공간까지 집안 곳곳에서 고가구가 눈에 띈다. 흥미로운 건 그만의 독특한 인테리어 방법이다. 그의 고가구에 대한 관심은 동서양을 아우른다. 집안을 채운 가구들도 동서양의 고가구들이 서로 어울려 있다.

 예를 들어 일반 가정에서라면 TV를 놓았을 법한 거실 한쪽 벽면 중앙엔 금색 테두리의 화려한 프랑스 앤티크 거울이 걸려 있다. 거울 좌우로는 검정 자개장이 세워져 있다. 이 자개장은 앞면은 물론 양쪽 벽면에도 자개가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덕분에 거울 테두리의 금색과 거울에 비친 은색의 자개의 빛나는 모습이 아주 신비롭게 조화를 이루죠.” 침실과 욕실 사이의 작은 벽면에는 서양의 오래된 스탠드 램프와 의자, 그리고 평양반닫이를 나란히 세워 놓았다. 평양반닫이 위에는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 액자도 올려뒀다.

 “과거부터 현대까지 동서양의 문화가 섞여 있는 공간이라 잘못하면 어지러워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공간을 한번 본 사람들은 오히려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해요.” 장씨는 동서양의 고가구를 섞어두는 자신의 인테리어 방법을 “비움과 채움의 조합”이라고 표현했다.

 어려서 전남 강진에서 조부모와 함께 살았던 장씨는 일찍부터 한국 고가구와 친숙했다. 서울로 유학 와 대학에서 산업미술을 전공하면서 박물관·미술관을 관람하는 게 공부이자 취미였다. “우리 고가구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익힐 수 있는 시간이었죠.” 프랑스 유학 시절에는 프랑스 고가구에 관심을 가졌고 서로를 비교하다 보니 우리 것이 훨씬 아름답고 좋게 느껴졌다고 했다. “서양가구가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해서 공간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 것은 고졸한 멋과 품격으로 비움의 미학을 보여주죠.” 장씨만의 ‘비움과 채움의 조합’은 이렇게 시작됐다.

 장씨의 반닫이 사랑도 유난스럽다. 지역별로 조형성이 뛰어난 반닫이를 여럿 사 모은 것은 물론이고, 지인들에게 반닫이의 매력을 알리는 데도 열심이다. 장씨에겐 친가·외가를 합쳐 20명의 조카가 있다. 이들이 결혼할 때마다 장씨가 신혼집 ‘필수품목’으로 추천했던 것이 바로 반닫이다. “꼭 비싼 것이 아니어도 좋으니 맘에 드는 예쁜 반닫이 하나 꼭 장만해 두라 이르죠. 이사 몇 번 가고 애 낳으면 일반 가구들은 망가지기 십상이거든요. 곧 망가질 가구에 사치부리지 말고 예쁜 반닫이를 구입해서 잘 보관하면 실내가 깔끔하고 우아해지죠.”

 

 남들에게 보였을 때도 비싼 명품 가구와는 다르게 특별한 개성이 빛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큰 집으로 이사를 갈 때마다 반닫이에 어울리는 고가구를 하나씩 들여놓으면서 가족의 역사와 문화를 만든다면 참 멋진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