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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유기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다

다연바람숲 2012. 12. 18. 20:14

도심 속 유기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다

 

 

도심 속 유기문화를 잇는 집

 

느리게 걷는 즐거움이 있는 서촌, 그 골목길 안에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물이 생겼다. 명절 또는 한식집에서나 보던 유기그릇과는 달리 모던한 느낌의 세련된 유기그릇을 예쁘게 전시해놓은 곳. 대물림으로 유기문화를 잇고 있는 ‘두부자공방’의 세컨드 브랜드 ‘놋:이’의 이경동 장인·김순영 대표 가족이 생활하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 화려한 샹들리에와 예스러운 고가구, 모던한 스타일의 놋그릇까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는 문화들이 한데 어우러진 2층의 놋:이 갤러리. 접시, 샐러드볼, 와인쿨러, 화병 등 실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유기 제품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 주말이면 가족은 특별한 식사를 한다. 엄마가 손수 만든 음식이 아빠가 정성껏 만든 식기에 담긴다. 일주일 동안 떨어져 있던 식구들이 나누는 정겨운 이야기가 맛깔 나는 양념이 되어 식사시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 지하 1층은 전통 한식 다실을 콘셉트로 꾸몄다. 바닥과 벽을 한지로 마감하고, 고재 목재 테이블과 커다란 한지 조명을 더해 은은한 멋이 난다.



정말 서울 도심이 맞을까? 주말 서촌 풍경은 상당히 여유롭다. 사람들이 넘쳐나는 삼청동이나 인사동과는 사뭇 다르다. 여유롭게 걸으며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서촌의 매력을 더하는 공간이 올봄에 생겼다. 모던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 안에 고급스러운 놋그릇을 예쁘게 전시해놓은 ‘놋그릇 가지런히’라는 카페와 갤러리 ‘놋:이’가 그곳이다.


경남 무형문화재 제14호 징장 이용구 선생의 넷째 며느리이자 ‘놋그릇 가지런히’를 운영하는 김순영 대표는 지난겨울, 놋그릇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공간이자 가족을 위한 집으로 겸용하기 위해 서울 통인동에 아담한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전통문화에 모던한 감각의 디자인을 더한 생활유기 지향 브랜드 ‘놋:이’의 콘셉트에 맞게 다양한 문화를 한데 어우르는 공간으로 이곳을 꾸몄다. 지하 1층에는 뜨끈한 온돌로 된 한식 다실 겸 게스트룸, 1층에는 자연 차와 주전부리를 모던한 놋그릇과 접목시킨 카페, 2층에는 동양과 서양의 앤티크 스타일로 꾸민 놋그릇 갤러리로 다양한 스타일을 풀어놓은 것. 그리고 그 위에 네 식구를 위한 아늑한 생활공간을 들였다.


고향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러나 김순영 대표에게는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할 만한 일이었다.


“경남 무형문화재인 시아버지와 전수조교인 남편이 거창에서 ‘두부자공방’이라는 이름의 유기공방을 운영 중이에요. 오랜 세월 묵묵히 땀 흘리며 전통의 맥을 잇고 계시죠. 유기는 고급스럽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은 우리 고유의 문화인데,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서울을 시작으로 해외까지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서울행을 결심했죠.”


세련된 강남도 좋지만 기왕이면 조선 시대 유기전이 있던 사대문 안이길 바랐던 김 대표. 때마침 화려한 도시의 모습보다 사람 사는 정, 소박한 아름다움이 깃든 통인동을 알게 되었고,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김순영 대표는 서울 생활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식구들보다 몇 달 먼저 서울로 왔다. 당차게 올라왔지만 가족과 몇 달간 떨어져 낯선 도시에서 혼자 생활하는 동안 속으로 울기도 많이 울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오가다 만나는 이웃들과 유기를 통해 알게 된 많은 사람들, 한국의 문화를 보고 감탄하는 관광객들로 그녀의 삶은 풍성해졌다. 무엇보다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식구들이 함께해 행복한 나날이다.



-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을 맨 처음 반기는 거실. 패브릭과 앤티크 가구를 활용해 언제나 따스하고 편안한 느낌이 나도록 꾸몄다. 

- 앤티크 선반장과 조명, 테이블로 꾸민 주방. 심플하게 꾸몄지만 시간이 더해진 가구의 멋스러움은 공간을 특별한 곳으로 만든다. 
- 주방 벽에 조각보 액자를 걸어두었더니 식탁 위의 유기그릇들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꾸밈 포인트가 되었다. 
- 유기그릇에 담아 정갈하게 차려낸 김순영 대표의 구수한 콩국수. 아무리 바빠도 가족을 위해 손수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의 정성이 담겼다.


- 4층 테라스 앞 거실 공간에 테이블과 조명을 두고 꾸민 작은 서재. 
- 고풍스러운 침대와 뷰로로 멋스럽게 꾸민 딸 소민 양의 방.
 
가족을 편안하게 품어주는 집



집안에 들어서면 기분 좋은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거실을 만날 수 있다. 딱딱한 가죽 소파 대신 패브릭 소파와 1인용 암체어를 놓고, 상판 패턴이 돋보이는 앤티크 테이블을 매치하고 천장 조명으로 포인트를 줬다. 강렬하거나 복잡하게 장식하기보다 각각의 요소를 한데 어우러지게 해서 편안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거실 풍경은 지친 일상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을 위한 김 대표의 배려다.


“좋은 집이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곳이 아니잖아요. 지내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잉여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나무, 패브릭 등의 소재와 오래된 편안함을 전하는 앤티크 스타일로 집을 꾸몄어요. 주말부부로 일주일에 한 번 올라오는 남편과 서울로 전학 와서 적응하느라 고생하는 두 아이를 따뜻하게 맞아주면서 식구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신경 썼고요.”


고향에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딸에게는 특별히 더 신경을 썼다. 고풍스러운 침대와 뷰로, 레이스 커튼 등으로 방을 예쁘게 꾸며 새로운 생활과 집에 빨리 적응할 수 있게 했다. 호기심 많고 꿈도 많은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위해서는 4층에 작은방과 서재를 마련해 독립적인 공간을 꾸며주었다. 서재라고 해서 참고서와 학습도서로만 채우지는 않았다. 입시준비로 바쁜 나이지만 공부에만 매달리기보다 스스로 미래를 고민하고,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삶을 찾아 도전해나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4층에 있는 작은 서재는 제가 참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테라스 쪽으로 난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참 기분 좋아요. 오래된 나무가 주는 편안함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주기도 하죠.”


바쁘지만 살림을 직접 챙기는 그녀의 주방에는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놋그릇이 가득하다. 현대적인 감성을 담은 놋그릇 디자인은 그녀의 작품으로, 주부 입장에서 실제 사용하고 집을 꾸미면서 얻은 감각이 반영된 결과다.


“일반적으로 놋그릇은 고급스럽지만 묵직하다고 말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보온과 보냉 효과가 좋아서 음식의 맛을 잘 유지시켜주거든요. 또 살균력이 뛰어나고 독성에 쉽게 반응해 가족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줘서 실생활에도 유용해요.” 

 




전통의 가치를 잇는 아름다움 

반년 동안 서울 집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때때로 아쉬운 점도 있다. 남편인 이경동 장인이 경남 거창 공방에서 유기그릇을 제작하고 있어 주말부부로 지내기 때문이다. 이런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하자 이경동 씨는 오히려 이사 덕분에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고 웃으며 말한다.


“주말마다 볼 수 있으니 외국으로 가족을 보낸 기러기 아빠보다 낫지요. 식구들이 서울로 올라가면서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게 됐어요. 함께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고 혼내는 일도 많았는데, 이제는 달라졌어요. 서로 안 좋게 헤어지면 그것도 안 좋으니까. 식구들에게 더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아이들과 수시로 대화를 나눈다. 특히 아들에게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고 알려준다. 그가 느꼈던 이 일의 매력을 아이가 그대로 느끼게 된다면 진로 선택도 자연스러울 거라는 생각에서다. 선택을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아들이 가업을 잇게 되었을 때 일을 빨리 배울 수 있도록 눈으로 먼저 익히게 돕는 것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아버지가 저를 부르셨어요. 그래서 직장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징, 꽹과리 등 악기 만드는 일을 시작했죠. 징은 1천 번 넘게 망치로 두드려야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표준음이 없고 각자 원하는 소리가 다르죠. 망치질 한 번으로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고되고 어려운 작업이에요. 그렇지만 그 일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곁에서 계속 봤던 터라 제게는 익숙한 문화였거든요.”


그의 양손과 다리에 잡힌 굳은살이 작업의 고됨을 여실히 말해준다. 그러나 유명 사물놀이패의 수장인 김덕수 씨를 비롯해 유명 사찰은 물론 해외에서까지 수소문 끝에 찾아온 사람들이 좋은 소리에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간의 수고는 희열로 변한다.
유기그릇 제작도 마찬가지다. 구리와 주석을 78:22 비율로 합금해 둥근 모양의 바디기를 만든 뒤 뉘핌질한다. 이를  1,200℃가 넘는 불에 달구며 형태를 늘려가는 방짜 열단조 기법으로 제작하는데, 불을 가지고 모양을 어떻게 내느냐가 관건이다. 작은 차이로도 완성된 모양이 크게 바뀌는 것을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22년이 흘렀네요. 하지만 아직 무형문화재인 아버지의 기술을 따라가려면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예능은 그 자체를 복원할 수 있지만, 기능은 기술 있는 사람이 사라지면 평생 그 노하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완전히 사라져버리니 안타까운 일이죠.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버지가 이룩하신 일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것이 제 바람입니다.”
진심을 담아 소망을 말하는 그의 뒤로 아내 김순영 대표와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이 함께한다.


가업의 소중한 가치를 이해하고 그것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서로 힘이 되어주는 가족, 우리 시대 또 하나의 명품명가가 아닐까.


 

박미진 기자 사진 이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