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최승자
나더러 안녕하냐고요?
그러엄, 안녕하죠.
내 하루의 밥상은
언젠가 당신이 했던 말 한마디로 진수성찬이 되고요,
내 한 해의 의상은
당신이 보내주는 한 번의 미소로 충분하고요,
전 지금 부엌에서 당근을 씻고 있거든요.
세계의 모든 당근들에 대해
시를 쓸까 말까 생각하는 중이에요.
우연이 가장 훌륭한 선택이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다시 한번 물어주시겠어요,
나더러 안녕하냐고?
그러엄, 안녕하죠.
똑딱똑딱 일사분란하게
세계의 모든 시계들이 함께 가고 있잖아요?
*
창 밖엔 겨울비가 내리고
쌓였던 눈 위에 빙판길 위에 그 비 내려 거리는 위태롭기만한데
미친 계집처럼 까르르 웃어 제껴도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오래 응어리처럼 품고있던 무언가를 탁 놓아버려서
이 하마같은 몸뚱이가 하늘을 날아갈 것 같고
자꾸만 명랑한 안녕을 외치고만 싶으니 이 가벼운 안녕도 용서해주시겠습니까?
먼 길을 돌아온듯이 어제 오늘,
문득 생각이 나더라며 또 무슨 일 있으신가 안부를 물어와주신 분들이 계셨지요.
사는 곳 다르고, 아는 길도 모두 다른 분들이 이렇게 일제히 함께 안부를 물어주시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놀라웁고 미안하고 또 무한 감사할 따름입니다.
비내린 밤길이 좀 미끄러우면 어떻습니까
한발한발 위태로운 세상에 내딛는 발길, 조심하라는 뜻이겠지요.
옷깃을 여미어도 뼈속까지 시린 겨울이니 어쩌겠습니까
찾아들 따스한 곳의 품, 그 고귀함을 또 깨달으라는 것이겠지요.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겨울밤입니다.
늘 누군가 가까이 있다는 것,
그럼으로 나를 외롭지않게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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