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고영민

다연바람숲 2012. 9. 12. 15:46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고영민

 

 

   

버림받은 후에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야

 

주인은 어디에 있는가

있기는 한 것인가

 

빨랫줄에서 한바구니 마른 빨래를 담아 와 개면서

하염없이 저렇게 누군가를 기다리다보면

내가 기다리는 사람도 분명 저 길을 따라 올 것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생각

항상 먼저 너를 버린 건 나,

모든 과오는 네가 아닌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생각

 

개는 여전히 흰 목수국 옆

쨍쨍 해가 내리는 길 한복판을 지킨 채

앉아있고

 

수국이 수국의 시간과 대적하지 않듯

누가 불러도 짖거나 꼬리치지 않는,

진짜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지독한 기억 속으로

느릿느릿 오는 허기 속으로

 

끝끝내 버림받았다는 것을 믿지 않는

개야

 

 

 

제7회 지리산문학상 수상작품 <시산맥> 2012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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