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응용 - How?

소장가 갤러리 SEASON 2 / 건축사님의 사무실 PART 2

다연바람숲 2012. 7. 15. 13:20

 

 

 

 

무엇인가를 수집하거나 몰두하는 사람은 삶 속에서 채워지지않는 2% 가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채워지지않는 무엇, 그 공허함을 메꾸기 위해 새로운 걸 배우거나 수집하거나 관심을 쏟는 거라 생각을 했었습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 한 번 들여다 볼 여가없이 바쁜 순간엔 그 공허함도 사치스러워 잊고 살지만 잠시의 여가라도 생기면 가장 먼저 찾게되는 그 것,

맘에 드는 물건 하나를 찾기위해 먼 길 발품도 마다하지않고 그 물건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얻기위해 밤을 새워 책과 컴을 뒤적이기도 하고

그것이 마약같다 중독성이 있다 가끔은 벗어나야지 하면서도 자석에 끌리듯 스스로를 그 관심 안에 가두고 행복해하는 그 것,

사무실을 빼곡하게 채우고도 누군가의 좋은 물건에 대한 소문엔 한없이 귀가 열리고, 가진 것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그대로 삶의 활력소가 되는 그 것,

문득 이 공간의 주인이신 소장님에겐 어떤 채워지지않는 2%가 있어 이 열정적인 관심과 수집의 길에 들어섰는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삶을 열정적으로 채워가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일과 관심사를 나란히 두고 기울거나 치우치지않고 가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일이면 일, 취미면 취미... 최고가 되기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보다 적당한 곳에서 쉼표를 찍으며 걸을 줄 아는 사람, 삶자체가 최선인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설계사무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게되면 오른쪽으로 소장님 개인 사무실의 문이 보입니다. 극히 서구적이라 할 수 있는 프로방스풍의 격자문 나무문 위에 앙증맞게 걸린 각시탈이 , 그 해학적 웃음이 편안합니다. 언뜻 방의 주인이신 소장님의 웃음을 닮았습니다.

 

 

 

각시탈이 달린 문을 뒤로하고 들어서면 왼쪽으로 가지런히 정돈된 이 모습과 만나게 됩니다. 가로폭이 높이보다 넓은 경상도 반닫이와  그 위에 정갈하게 놓인 조각보와 거북이 모양의 일주반이 눈에 들어옵니다. 구석을 밝히는 문살문 스탠드의 은은한 조명 아래서 묵묵한 거북형의 일주반도 색색의 조각보도 고요하게 아름답습니다.

 

 

옻칠된 경기도 이층농은 그 단아한 장식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의 옷을 입었습니다. 저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지워지지않는 나이의 무늬입니다. 그 무늬의 무게로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도 부끄러움없이 당당합니다. 아마도 저 모습이 진정한 고가구의 멋이 아닐까란 생각을 합니다. 농 위에 다소곳이 놓인 나전칠기 반짓고리는 아래에서 자세히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소장님의 커다란 작업 테이블을 지나오면 창가에 놓인 반닫이들을 만납니다. 이전 사무실에서는 공간을 차지하기 급급했던 덩치 큰 반닫이들이 이곳에선 편안하고 넉넉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추리고 추려내어 연륜이 있는 것들과 가치가 있는 것들로 남겨놓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제 나이와 출신의 가치를 다하는 반닫이들로 보입니다.

 

 

가벼웁게 스쳐볼 땐 몰랐지만 하나하나 관심있게 들여다보니 소장님의 많은 소장품 중에서도 주된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유난히 눈에 많이 들어오는 연갑과 연상, 책반닫이, 아무래도 전생에 학자이셨음을 감지하셨는지 선비들의 사랑방에 자리했던 물건들이  많이 보입니다. 저 돌로 만들어진 약연은 소장님이 처음 골동품과 고가구에 관심을 갖게될 즈음 구입하신 것으로 구입장소며 사연까지 익히 알만큼  저와도 안면이 있는 것입니다. 옮긴 이곳 사무실에서도 첫정으로 아끼시는 만큼 좋은 자리를 내어주셨습니다.

 

 

반닫이 저 안쪽에 자리한 머릿장은 문 양쪽에 태극문양이 새겨진 것으로 섬세함과 중후함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반닫이 위에도, 머릿장 앞에도 또 단순하고 소박한 생김새의 연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반닫이 위의 등잔대, 연상 위의 등잔대, 바둑판 위의 등잔대도 이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머릿장 위에 놓인 작은함이 화사한 색색의 조각보 위에 곱게도 놓였습니다. 작은 함에 야무지게 장식된 황동장석들이 함의 품위를 더해줍니다.

 

 

어디에선가부터 여러 등잔대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기억해보니 앞의 사무실 사진 속에도 여러개의 등잔대가 보였습니다. 열어 보여주신 어느 반닫이 안에도 빼곡하게 여러 개의 등잔대가 보였습니다. 모양도, 기법도, 만들어진 시기도, 나무의 재질도 각각 다른 여러개의 등잔대들을 한군데 모아놓아도 훌륭한 콜렉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장님의 테이블 옆으로 또 하나의 제주반닫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전 사무실에서도 이곳에서도 책장의 아랫칸은 또 고가구들에게 밀렸습니다. 일과 취미의 어쩔 수 없는 조우가 책장 앞에서 앞과 뒤를 다툽니다. 저 모습을 막무가내식 밀어내기가 아닌 적당히 자리를 내어주는 식의 자리잡기라고 읽어줍니다. 일과 취미생활의 자연스러운 손잡기라고 읽어줍니다.

 

 

무쇠장석이 단단하고 야무진 돈궤입니다. 크기도 두께도 세월의 나이만큼 묵중함을 지녔습니다. 앞바탕과 연결된 상판의 장석이 꽃문양으로 만들어진 것이 새롭습니다. 어느 것 하나 흠잡을데 없이 나름의 가치를 다 보여주는 것이지만 보통의 돈궤보다 더 무겁고 큰  이유로 아마도 바깥의 공간에 자리잡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목오리가 놓여진 가판은 양반님네 사랑방에서 잡동사니나 작은 물건들이 놓여지던 것으로 보입니다. 소장님이 소장하신 두개의 가판 중 하나로 단순하면서도 부분부분 미적인 형식을 가미한 손길이 느껴집니다. 12각 소반 위에 장식한 오리와 소품들은 이 곳의 주인이 혹여 여자가 아닐까 생각이 들만큼 절제된 조화와 섬세함을 보여줍니다.  

 

 

 

설명이 없었더라면 서안과 궤가 놓인 긴 탁자를 아마도 근래 만들어진 의자쯤으로 보았을 겁니다. 저 긴 탁자는 서탁으로 선비의 방에 두고 여러권의 책을 올려두는 탁자였다고 합니다. 서탁 위의 또 한 점의 서안, 다리 쪽의 유려한 곡선이 새롭고 특색이 있습니다. 그 뒤로 소장님의 색깔이 아름다운 작품, 건축물들이 보입니다.

 

 

아마도 이 공간에 오래 머물렀지 싶습니다. 사진보다는 실제 마주하는 공간이 훨씬 아름다웠기 때문일겁니다. 서양의 엔틱과 동양의 엔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입니다. 많은 곳이 채움의 미학으로 살려졌다면 이 공간은 최대한 절제하고 덜어낸 공간이라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비움의 미학... 이 공간에 그런 설명을 덧붙여주고 싶어집니다.

 

 

다분히 서구적인 콘솔 위에 소장님의 가판 중 또 하나가 놓였습니다. 그 가판 속에 연적 두 점, 그리고 또 다분히 서구적인 스탠드.. 동서양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많은 여백을 두고 놓인 엑틱풍의 미니 재봉틀... 벽면의 풍경화가 차라리 없었더라면 싶을만큼 여백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앞부분 이층농 위에 다소곳이 놓여있던 나전칠기 반짓고리입니다. 자개무늬가 촘촘하게 들어가있는 반짓고리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입니다. 실패, 골무, 바늘꽂이...저 반짓고리를 알뜰살뜰 채워넣은 솜씨가 소장님의 섬세한 성격을 또 말해줍니다.

 

 

 

소장님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책장 위의 저 액자였습니다.

德不孤 必有隣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를 따르는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다 - 논어에 나오는 말이지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제가 늘 가까이 두고 살피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사무실에 저 말씀을 두고 새기는 분이라면 그 가까이 얼마나 좋은 분들이 계실지 짐작이 됩니다. 모던과 엔틱,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소장님의 사무실 모습입니다. 이 공간을 빙둘러 앞의 고가구들이 놓여있다고 그림을 그려보면 방의 전경이 펼쳐질겁니다.

 

 

 

책장의 한켠, 소장님이 직접 그리셨다는 캐리커쳐입니다. 자신의 특징을 이렇게 잘 알아도 되나 싶을만큼 자신과 꼭 닮은 얼굴을 그려내셨습니다. 책으로만 채워지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그 사이에, 요런 소품들로 멋을 낼 줄 아는 감각이 또 놀랍습니다.

 

 

소장님의 일을 하시는작업 테이블입니다. 책상 가득 수북한 진짜 서류, 설계도등 일감들은 잠시 사진 밖에 밀어놓았습니다.색색의 펜들이 가득 꽂힌 연필통을 함께 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이 조명, 제가 너무 예쁘다는 말을 아마 다섯번은 족히 했을 듯도 싶습니다. 역시 전문가는 조명조차 남다른 감각으로 선택하시나 봅니다.

 

 

 

 

- 平生을 생각나는대로 연필가는대로 -

소장님의 인생을 함축한 말로 소장님이 또 직접 쓰신 글씨라고 합니다.

그 생각, 그 연필 지나간 길이 만들어 낸 작품들이 또 소장님의 평생이라는 말이겠지요. 

그 평생의 흔적을 무엇인가로 남길 수 있는 삶이 부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수줍은 미소를 짓고 계신 사진 속의 멋진 분이 이 모든 공간과 물건의 주인이신 류흥렬 건축설계사님이십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을 반갑게 맞아주신 소장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