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지훈씨가 모은 50~70년 된 미국·일본산 만년필. 2. 안씨가 첫 수집품으로 핀란드 벼룩시장에서 산 장난감 전차. ‘메이드 인 유에스-존 저머니’(MADE IN U.S-ZONE GERMANY)라고 쓰여 있어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령 독일에서 만든 제품임을 알 수 있다. 3. 이창훈씨 집 벽에 걸어둔 19세기 중반에 만든 참죽나무 필가(붓걸이). 4. 안씨가 가지고 있는 1960년대에 만든 핀란드 아라비아(Arabia)의 루스카(Ruska) 주전자. 5. 안씨가 스웨덴 출장을 가 사온 1930년대에 만든 가죽 여행가방. 6. 이씨가 4년 전부터 모으고 있는 사자상 가운데 19세기 후반 청나라 시대에 만든 작품. |
[매거진 esc]
국내 골동품·북유럽 빈티지 물건 모으는 월급쟁이 수집가들
“얼마나 돈 많으면 골동품 사냐
주변 오해도 있었지만
10만원 안팎의 물건이 대부분이에요”
중학생 시절 국어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어령 교수의 수필 <삶의 광택>에서, 그는 아들에게 포마이카(합성수지 도료) 책상 사 준 걸 후회한다 했다. 늘 번드르르한 포마이카 책상으로는 오래된 나무 책상의 손때 묻은 광택의 의미를 알기 힘들다던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스마트폰의 뒤태가 얼마나 매끈한지에만 눈이 간다. 값싸고 새로운 물건이 넘쳐나기에, 세월을 머금은 ‘오래된 물건’은 그저 넉넉한 이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여기 두 남자는 그런 우리에게 “그게 아니거든”이라고 외친다. 다른 사람처럼 용돈과 카드값 걱정하는 직장인 두 남자의 ‘오래된 물건’ 예찬론, 함께 들어보자.
이창훈씨 방에 문방사우를 올려둔 19세기 오동나무 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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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름다움, 끌릴 수밖에 이창훈(43)씨는 한 대기업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무교동에서 만난 그는 ‘골동품’이라는 단어를 듣자 이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물욕 때문이겠죠. 기왕이면 이쁘고 소박한 게 좋아요. 옛 물건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영향도 있고요.”
그는 10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오래된 골동품을 조금씩 모아 왔다. 주로 작고 값싼 소품을 모아온 그는, 매주 한 번씩 점심시간 틈을 내 회사 근처 서울 인사동을 찾는다. “회사에 갓 입사해서 우연히 인사동에서 문에 걸어 두는 ‘풍경’을 사면서 골동품 수집을 시작했어요. 그 뒤에 ‘향로’를 사면서 ‘옛 물건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모으게 됐죠.” 이씨가 사는 골동품은 대부분 100년 안팎의 사랑방 소품과 가구다. 조선 말기 연갑(문방사우 수납함)이나 남성용 경대, 서탑 등 남자들이 쓰는 목제 소품이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남자가 쓰던 물건에 눈이 갑니다.”
사 모은 골동품은 모셔두기보다 일상생활에 사용한다. 모아둔 물건을 되판 적도 없다. “처음에 주변 동료들이 ‘돈이 얼마나 많길래 골동품을 사 모으냐’고들 했는데, 사실 10만원 안팎의 물건들이 대부분이에요.” 결혼한 뒤에는 책장, 수납함 등 가구를 아예 사랑방 가구로 하나둘씩 꾸몄다. “처음에 아내가 꺼리긴 했는데, 어차피 가구를 살 거면 아름다운 고가구로 인테리어하는 게 낫다고 설득해 이제는 같이 보러 다니죠.”
그는 매주 받는 ‘주급’ 용돈을 모아 골동품을 산다. 그래서 인사동·장한평 골동품 골목을 여러번 돌아다니며 고민한다. 요즘에는 우리나라 골동품이 비싸 중국·동남아 출장을 가면 벼룩시장에서 100~200달러 정도 예산을 정하고 물건을 산다. “2008년부터는 나무로 깎아 만든 중국의 사자 육각상을 모으고 있어요. 우리나라 해태상처럼 비슷한 아시아 문화에 지역마다 다양한 개성이 있어서 재미나더라고요.”
그는 골동품을 모으는 가장 큰 이유로 “물건에 깃든 이야기 때문”이라고 했다. “골동품 가게 주인한테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스스로 상상을 하는 재미도 있어요. 예전에 필가(붓걸이)를 산 적이 있는데, 아귀도 잘 안 맞고 한눈에 봐도 서툰 솜씨로 만든 물건이었죠. 그 물건을 벽에 걸어두고 생각을 하죠. ‘붓을 쓰니까 선비가 썼던 건 맞는데, 목수를 불러 만들 만큼 넉넉했던 사람은 아니었구나’ 식으로요.” 그래도 그가 가장 아끼는 골동품 1호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서류함이다. “그냥 나무상자이지만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거든요. 제 아들에게도 꼭 물려줄 겁니다.”
40년 된 스테이플러
30년 된 가위 쓰면서
디자인의 기원을 찾아보며
느끼는 즐거움도 크다
안지훈씨가 10년 전 스웨덴 대학가 벼룩시장에서 산 가죽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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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빈티지의 아름다움 속으로 24일 저녁 서울 청담동 사무실에서 만난 안지훈(33)씨는 손때 잔뜩 묻은 황토색 가죽가방을 책상에 내려놨다. 그는 가방에서 꺼낸 빨간 영국산 양철 담뱃갑을 연 뒤 명함을 집어 건넸다. “여기, 담뱃갑에 새긴 영국 왕실 문양을 보면, ‘His Majesty The King’(왕)이라 쓰여 있어요.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이 아닌 조지 6세 때 물건일 수 있는 거죠.(웃음)”
현재 브랜드컨설팅 업체의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북유럽 빈티지 물건들을 소개하는 인터넷 블로그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팩토리’도 운영하고 있다. “어릴 적 외갓집의 광에 먼지 쌓인 놋그릇·항아리를 보면서 오래된 물건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북유럽에 살면서 오래된 물건을 아껴 쓰고 나누는 문화를 동경하게 됐고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민이 100명 남짓했던 1998년 핀란드로 유학을 가 10년 동안 핀란드·스웨덴에 머물렀다. “북유럽 친구들은 18살에 무조건 독립을 해요. 집에서 쓰던 의자·그릇을 챙겨 오고, 벼룩시장에서 냄비도 사 오죠. 오래된 물건들이 다시 사랑받고 새 생명을 얻는 그런 생활 속에 녹아 있는 빈티지 문화가 참 좋았어요.”
안씨가 쓰는 물건들은 면도기부터 작은 장식품까지 북유럽 유학생 시절 구입했던 빈티지 제품이 대부분이다. “제가 가장 아끼는 가죽가방은 10년 전 스웨덴 대학가 벼룩시장에서 샀어요. 실을 다시 꿰매고, 손이 닿는 부분은 때가 진하게 묻었죠. 요즘 인공적으로 화학처리를 해 오래된 물건처럼 보이도록 하는 물건의 모습도 눈비 맞고 손때 묻은 이 세월의 자연스러움은 따라올 수 없어요.” 그는 요즘에도 북유럽 출장 등을 가면 틈을 내 벼룩시장을 꼭 찾고, 회사 안에서 벼룩시장을 열어 수집한 물건을 나누기도 한다.
소소한 물건들이지만 40년 된 스테이플러와 30년 된 가위를 쓰면서 물건 디자인의 기원을 찾아보며 느끼는 즐거움도 크다. “수집이라는 게 반드시 대단한 물건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주변에서부터 이야기를 머금고 있는 물건을 아끼고, 그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소중하고 매력적인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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