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순수 - 비우는말

모든 열정에는 진저리쳐지는 포만의 정점이 있다.

다연바람숲 2012. 7. 5. 20:01

 

 

 

모든 열정에는 진저리처지는 포만의 정점이 있다.

이 시점에 이르면 우리는 문득 우리의 삶을 지탱시키는 이 열기를 증가시킬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혹은 열기를 지속시킬 수조차 없어서 그것이 곧 소멸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에게 닥칠 불행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서뿐만 아니라 운명을 변경시키거나 지연시켜보려는 희망 때문에, 우리는 그 예방책으로 미리, 갑작스럽게, 은밀히, 길모퉁이에서, 서둘러 눈물을 흘린다.

 

논증이란 새벽의 박명을 의미하는 고어이다. 그것은 잠깐 동안에 들이닥치는 희미한 빛 속에서 밝아지고 지각되는 모든 것이다. 논증이란 단호하기 그지없다. 하천이 범람하는 바로 그 순간에 강물의 흐름을 바꾸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새벽에 동이 트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기다린다.

갑자기 불행으로 변해버린 응시 속에서 우리는 무력하게 기다릴 뿐이다.

 

사랑은 열정으로부터 솟아나든가, 그렇지 않으면 결코 생겨나지 않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화석으로 굳어진 이 순간을 마술에서 풀어내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저마다 이 야릇한 길목을 넘어서야만 한다. 그곳에서는, 영혼 깊숙이서 발견된 모든 것이 스스로가 더 이상은 찾아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알아보기 시작한다.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