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회귀 / 김경미

다연바람숲 2011. 8. 29. 00:15

 

 

 

 

 

 

 

 

 

 

 

 

회귀 / 김경미

               -비망록





누가 또 어디쯤서 나를 저버리나 보다

마음 속 햇빛 많은 나뭇잎들 폭설처럼
떨어져 내리더니
수박향내 애틋하던 저녁 산책길이 돌변했다
이번엔 남의 집 대문앞이 아니다
누드화 같은 이 바다로 바다로 누가 또 날 버리나 보다
잡을 것 오직 은박지 같은 물뿐이다
소리치는 것도 부끄럽다 망망대해 혼자뿐인데
누군가 나타나도 원수가 될 것이다 기다림 간절했으므로
언제나 이런 식이다

이렇게는 아니었다 이렇게는 아니었다고 미안하다고
용서하라고
현생의 나를 만난 내 생에 사과라도 남기고 싶었으나
물천장 위 비바람에 섞여 내리는 주황빛 저녁이
성당의 색유리 가득한 성가 같아
붉은 점박이 나리꽃처럼 걸핏하면 끼얹어지는 이 침수
이 상실감을,
하긴 나는 사랑하던가 떠나고 없는 고요할 물 속
묵묵함을 내심 더 바랬던가 늘 그런 식이었던가




시집『쉬잇, 나의 세컨드는』, 문학동네 ,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