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의 식사 / 황병승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어요
어머니 빗소리가
좋아요
머리맡에서 검정 쌀을 씻으며 당신은 소리 없이
웃었고
그런데 참 어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잖아요
나는 두 번 잠에서
깨어났어요
창가의 제라늄이 붉은 땀을 뚝뚝 흘리는 여름 오후
안녕 파티에 올 거니 눈이 크구나 짧고 분명하게 종이인형처럼
말하는 여자친구
하나 갖고 싶은
계절이에요
언제부턴가 누렇게 변한 좌변기,에 앉아 열심히 삼십세를
생각하지만 개운하지 않아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저 제라늄 이파리 어쩌면 시간의
것이에요
사람들과 방금 했던 약속조차 까맣게 잊는
날들
베란다에 서서 우두커니 놀이터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하나 둘 놀던 아이들이
지워지고
꿈속의 시계 피에로
들쥐들이
어느새 미끄럼들을 차지하는
사이......
거울 앞에 서서 어느 외로운 외야수를
생각해요
느리게 느리게 허밍을 하며. 오후 네
시,
바람은 꼭 텅 빈 짐승처럼
울고
살짝 배가 고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