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싹튼 양파들 / 조말선

다연바람숲 2005. 11. 9. 20:47

 

 

 

싹튼 양파들 / 조말선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통화중 신호음을 들었다 나는 한번 시도한 일은 멈출 줄 몰랐다 나는 한 번 들어선 길은 돌아갈 줄 몰랐다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듣지 못한 응답이 나에게로 돌아와 꽂혔다 차창 밖으로 발개진 꽃잎들의 통화가 소란스러졌다 세상은 모두 통화중이었다 나는 나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안에 통화중 신호음이 가득 차올랐다 귓바퀴가 수백 다발의 코일을 빨아들였다 나는 나의 고백을 듣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어디 간 거야 나는 나의 응답을 찾지 않았다 나는 고독해졌다 나는 팽창했다 귓속에서 입이 찢어졌다 백년은 늙은 내 입 속에서 푸르른 말들이 나를 겨냥했다.

 

 

『현대시학』 2002년 6월호

'창너머 풍경 > 열정 - 끌리는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평선 / 김혜순  (0) 2005.11.12
이파리의 식사 / 황병승  (0) 2005.11.11
간통 / 문인수  (0) 2005.11.10
어둠 / 이상국  (0) 2005.11.09
더딘 사랑 / 이정록  (0) 2005.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