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트로스 ...... 보들레르
가혹한 심연 위로 미끄러져 가는 배를
무심한 여행의 동반자처럼 쫓아가는 알바트로스
이 거대한 바닷새를 뱃사람들은
자주 붙잡아 장난질을 치네.
갑판 위에 놓이기가 무섭게
서투르고 수치스러운 이 하늘의 왕은
그 크고 흰 날개를 배젓는 노처럼
가련하게 뱃사람 곁에서 질질 끌고다니네,
이 날개달린 여행자는 얼마나 어색하고 무기력한지!
전에는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이
얼마나 추하고 우스꽝스러운지!
어떤 이는 담뱃대로 그의 부리를 괴롭히고
어떤 이는 절뚝거리며 날았던 불구자를 흉내내는구나!
시인은 폭풍과 어울리고 사수(射手)를 비웃는
이 구름의 왕자와 같아라
야유의 함성 속에 지상으로 쫓겨나
그의 크나큰 날개가 걷는 것을 방해하는구나.
*
알바트로스 (가장 높이 날아오르는 새)
골퍼들의 꿈은 홀인원이지만 그것보다도 더한 것이 알바트로스이다.
6백미터 가량의 필드에서 단 두 번만에(규정타는 다섯 번)
맥주 컵만한 홀 안으로 공을 집어 넣어야 비로소 알바트로스가 된다.
그런데 왜 수많은 골퍼의 가슴을 환상에 젖게 하면서도
그 말이 무슨 뜻이며 왜 골프용어가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원래 골프는 양떼를 몰고 다니는 목동들의 놀이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넓은 초원에서 하는 스포츠이다.
목동의 지팡이가 골프채가 되고 돌이 골프공으로 변하고
토끼 굴과 같은 것이 홀컵이 된 셈이다.
그러나 그때나 저때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쳐서 허공으로 멀리 날려 보내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히 골프 용어는 하늘을 나는 새와 관련이 깊어서
규정타보다 한 개를 적게 치면 버디(birdy)가 되고
두 개를 더 적게 치면 이글(eagle)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한계라고 할 수 있는 세 개를 더 적게 치면
드디어 그 알바트로스라는 것이 등장하게 된다.
물론이다.
알바트로스는 봉황이나 불사조 같은 새와는 달리 실재하는 새이다.
어떤 독수리, 어떤 갈매기보다도 멀리 그리고 높게 나는 새이다.
알바트로스가 한자 문화권에 오면 신선 이름처럼
신천옹(信天翁)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도
가히 이 새의 비행 솜씨가 어떤지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알바트로스가 하늘을 나는 새 가운데
왕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명성있는 골퍼들이 평생을 다 바쳐서도 이루기 힘든
알바트로스의 그 이름만큼이나 실제로 나는 그 새의 비행 역시
필사의 기적 속에서 탄생한다는 점이다.
알바트로스는 알에서 깨자마자 바닷물에 떠다닌다.
당연히 비행법을 채 익히지 못한 알바트로스의 새끼들은
흉포한 표범상어들의 표적이 된다.
그러므로 알바트로스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상어의 이빨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의 날갯짓을 하게 된다.
대부분은 파도 위에서 퍼덕이다가 비행에 성공하지 못하고
상어의 먹이로 짧은 생을 마치게 되지만 구사일생으로 날갯짓에
성공을 하여 하늘로 떠오르는 녀석들이 있다.
이 최초의, 죽음의 비행에 성공한 알바트로스의 새끼들만이
강한 날개와 그 날쌘 비행술을 타고난 천재들만이
비로소 왕양한 하늘과 바다의 자유를 허락받게 되는 것이다.
즉 날지 못하는 알바트로스는 생존의 자격이 박탈된다.
마치 새끼를 낳자마자 천 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뜨려 거기에서
죽지 않고 기어오르는 놈만 기른다는 전설 속의 사자들 이야기를 방불케 한다.
그러고 보면 잔인한 표범상어들은 알바트로스의 적이 아니라
사실은 그들에게 비행 훈련을 시키는 과외 교사들인 셈이다.
생태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잡아먹히는 알바트로스 편이
오히려 고용주이고 표범상어 쪽이 그 종족에게 고용된 종속 관계에 있다.
날지 못하는 알바트로스의 새끼를 선별해 주는 대가로서
그 먹이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표범상어가 있는 한 알바트로스들은 튼튼한 날개의 유산을
대대로 물려줄 수가 있고 그 새끼들은 천부적인
그 비상의 재능을 갈고 닦게 된다.
생명과 함께 치열한 비행의 모험을 동시에 타고난
이 알바트로스들의 드라마는 조나단의
그 미지근한 「갈매기의 꿈」과 비길 것이 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들레르가 시인의 운명을 발견했던 것은
갈매기가 아니라 알바트로스였다.
오직 하늘과 바다 위를 날 때만이 존재 이유를 갖는 그 새가
일단 이 지상에 잡혀 오면 우스꽝스러운 흉물로 변하고 만다.
땅 위를 걷는 데 오히려 장애물이 되는 그 큰 날개는
선원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그렇다. 알바트로스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골퍼들의 공포인 OB나 깊은 러프, 그리고 턱이 높은 벙커라고 해도
어찌 그것이 알바트로스의 탄생을 기다리며 입을 벌리고 있는
표범상어의 이빨보다 두려울 것인가.
그리고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골퍼는 비로소 골프의
재미를 느끼고 또 그 기량이 늘게 된다.
단지 퍼런 잔디 위에서 공만 때리는 것이라면
누가 그 멀고 숨찬 언덕을 온종일 걸어 다닐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골프가 바로 우리 인생과 같다는 것은
이런 1백 가지 이유가 아니라 오직 하나,
알바트로스처럼 공은 하늘을 날기 위해 있으며
그 공이 날기 위해서는 표범상어에서 벗어나는
비행술을 익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상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유를 얻기 위해서
퍼덕거리며 필사적으로 날아오르려는 알바트로스의 새끼처럼
필드에서 그렇게 샷을 한다면, 인생의 모든 일을 그렇게 해낸다면
알바트로스의 그 기적을 실현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어령(李御寧) 교수의 말속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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