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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씨 집 지은 이야기

다연바람숲 2017. 12. 14. 14:39

 빈센트씨 집 지은 이야기

무려 14개월에 걸쳐 한옥을 리모델링했다. 거주자의 철학과 쓰임에 맞춰 고친 집. 빈센트의 지침을 들으며 집을 고칠 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미국 샌타모니카의 따스한 햇살 아래 살던 부부가 서울로 이사 왔다. 가회동의 아담한 한옥은 초록 현관에 금빛 기둥, 노란 벽, 핑크빛 가구가 있다. 여느 집에서 보지 못했던 산뜻하고 과감한 컬러다. 주방이 크고 침실 벽은 유리고, 그 흔한 옷장은 없다. 집을 둘러볼수록 신기하고 흥미롭다.

 

식탁은 앉았을 때 바른 자세를 잡기 쉽도록 2cm가량 낮게 맞췄다. 을지로 가구 거리에서 중고로 산 식탁 의자는 식탁 상판 밑으로 쏙 들어가도록 등받이를 잘랐다. 수납도 깔끔하게 되고, 바른 자세를 잡기도 좋다. 친구들의 자세까지 생각한 디자인이다.

식탁은 앉았을 때 바른 자세를 잡기 쉽도록 2cm가량 낮게 맞췄다. 을지로 가구 거리에서 중고로 산 식탁 의자는 식탁 상판 밑으로 쏙 들어가도록 등받이를 잘랐다. 수납도 깔끔하게 되고, 바른 자세를 잡기도 좋다. 친구들의 자세까지 생각한 디자인이다.

 

모임을 위한 집

중년의 부부가 사는 이 집의 주된 용도는 친구들의 모임 장소다. 날마다 기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부부에게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모임은 소중하고 즐거운 에너지다. 생각해보면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만큼 순도 높게 즐거운 때도 없지 않나. 이 집의 리모델링 이야기는 모임에서 출발한다.

“친구들이 와서 어린애처럼 노는 곳을 만들려고 했어요. 바닷가에 가면 동심이 되잖아요. 여름휴가를 떠날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있나요. 여름이 오면 뒷마당에서 아이들처럼 물놀이하면서 즐겁게 지내야지요.”

아내의 친구들을 위한 즐거운 모임 장소, 그 목적에 맞춰 동선과 공간과 가구를 선택했다. 남편은 사람들이 불편 없이 머물다 돌아가기를 바라며 세심하게 리모델링 계획을 세웠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들어오면 겉옷과 가방을 두는 옷걸이가 있고, 보랏빛으로 화려하게 단장한 널찍한 손님용 화장실이 있다. 손님 옷이 여기저기 뒹굴면 보기도 안 좋고 나중에 챙겨 가기도 번거롭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옷장 대신 손님용 수납장을 만들었다.

1 옥상에서 내려다본 마당. 야외 파티 장소, 여름에는 물놀이터가 될 예정이다. 2 아내가 좋아하는 샴페인 페리에 주에에 그려진 꽃을 모자이크 타일로 만들어 거실 바닥에 붙였다. 미국에서 주문 제작해 들고 온 애정 어린 작품이다

1 옥상에서 내려다본 마당. 야외 파티 장소, 여름에는 물놀이터가 될 예정이다. 2 아내가 좋아하는 샴페인 페리에 주에에 그려진 꽃을 모자이크 타일로 만들어 거실 바닥에 붙였다. 미국에서 주문 제작해 들고 온 애정 어린 작품이다

 

화장실을 넓게 만든 것도 대접받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모임을 위한 집이니 전체의 3분의 2를 주방과 다이닝 룸으로 할애했고, 그릇도 오픈형으로 수납해 누구나 꺼내 두루두루 쓰게 했다. 그러니 부담 없이 맘에 드는 찻잔과 접시를 골라 쓸 수 있다.

부부의 프라이빗 공간과 거실의 경계를 유리로 한 것도 파티 플레이스를 위해 넓게 보이려는 의도다. 대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는 현관 사이에 여유 있는 공간을 두려고 대문 위치를 10cm 밖으로 옮기기도 했다. 문을 열고 바로 문과 맞닥뜨리는 심리적 부담을 줄이려는 세심한 배려다.

앞마당에는 여름 물놀이를 위한 샤워기를 달아두었고, 기다란 벤치도 있고, 파라솔을 꽂을 계획으로 벤치에 구멍까지 뚫어두었다. 어른들의 놀이터를 위한 기발한 계획이 구석구석 알차게 채워져 있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1 아폴로니아에 초대받은 시공 팀과 환영의 의미를 담은 파인애플을 들고 있는 빈센트. 철저한 주인을 만나 공사하는 동안 고생도 했지만 배운 것도 많단다. 2 전선 가리는 철판, 샤워실 습기 조절 판 등 필요한 것은 이렇게 종이로 모형을 그려서 맞춤 제작했다. 3 작년 12월부터 한국에 머물며 현장에 매일 출근했다. 줄자, 가구 설계도, 각종 챙겨야 할 것 리스트가 빼곡히 적힌 노트가 든 가죽 가방을 들고 현장, 공장, 가구 거리를 다니며 집을 공사했다.

1 아폴로니아에 초대받은 시공 팀과 환영의 의미를 담은 파인애플을 들고 있는 빈센트. 철저한 주인을 만나 공사하는 동안 고생도 했지만 배운 것도 많단다. 2 전선 가리는 철판, 샤워실 습기 조절 판 등 필요한 것은 이렇게 종이로 모형을 그려서 맞춤 제작했다. 3 작년 12월부터 한국에 머물며 현장에 매일 출근했다. 줄자, 가구 설계도, 각종 챙겨야 할 것 리스트가 빼곡히 적힌 노트가 든 가죽 가방을 들고 현장, 공장, 가구 거리를 다니며 집을 공사했다.

 

내 집을 짓다

빈센트는 맞춤 옷을 짓듯 집을 지었다. 원하는 집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모든 것을 거기에 맞췄다. 일단 쾌적하고 안온한 캘리포니아에 살던 부부는 한국의 사계절이 걱정되었다. 습도 높은 여름과 스산한 겨울, 게다가 한옥은 춥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단열에 온 신경을 쏟았다.

선이 많고 컬러가 차분한 한옥의 무드가 맘에 안 들어 과감하게 디자인했다. 기둥을 금빛으로 칠한 것도 칙칙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툇마루도 사라지고 창호지 바른 창도 없어졌다. 도서관처럼 칸칸이 나눠진 방을 없애 한 공간으로 만들고 툇마루 아래 마당 일부를 실내로 들이고, 한옥의 사각 기둥은 모서리를 살짝 둥글렸다.

남쪽으로 통창을 내서 종일 밝은 햇살이 들어온다. 툇마루와 마당이었던 기둥 바깥쪽을 실내로 들이고, 작은 테이블이 있는 공간을 곡면으로 디자인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남쪽으로 통창을 내서 종일 밝은 햇살이 들어온다. 툇마루와 마당이었던 기둥 바깥쪽을 실내로 들이고, 작은 테이블이 있는 공간을 곡면으로 디자인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한옥의 특별함을 이렇게 과감하게 지워가며 리모델링을 할 수 있을까 조금 의아했는데 이유는 한 가지, 한옥 스타일보다는 따뜻하고 밝은 집을 원했기 때문이다. 빈센트의 중심은 확실했다.

집은 철저히 사는 사람에게 맞춰야 한다는 것. 아이가 몇 명이고, 장차 무슨 계획이 있는지,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부터 마시는지 화장실부터 가는지 등 사소한 라이프스타일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흔히 우리는 집을 리모델링할 때 어떤 스타일이 유행인지, 어떤 브랜드가 좋은지, 옆집은 무슨 가구를 샀는지에 집중하느라 집의 본질을 놓치곤 한다. 빈센트의 집에는 남에게 보여주려고 갖춘 것은 하나도 없다.

응접실에 으레 있어야 하는 소파와 티 테이블은 없다. 쓰임에 맞게 가구를 맞추고, 서울 을지로 가구거리에서 집에 맞는 중고 가구를 찾아냈다. 쓰임에 맞게 집의 본질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많은 이가 이점을 쉽게 간과한다.

1 양념통에 맞춰 제작한 전용 수납장. 맞춤 수납장은 비용이 조금 더 들지만 사용할수록 그 편의와 가치를 알 수 있다. 2 개수대 덮개는 맞춤 제작했다. 덮개를 덮으면 테이블로 쓸 수 있다. 핑크빛 판의 반대쪽은 나무 재질이고 스틸 덮개도 따로 만들었다. 파티 분위기에 따라 3가지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다. 3 서랍은 물건을 찾고 정리 정돈하기 쉽도록 전면을 유리로, 속을 이중으로 만들었다.  샤워 부스에는 접이식 의자를 넣어 편의를 높였다. 5 컴퓨터 테이블은 전동으로 모니터를 조정할 수 있다. 모임 장소에 일하는 흔적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모니터, 프린터를 쏙 숨겨두는 디자인으로 맞춘 것.

1 양념통에 맞춰 제작한 전용 수납장. 맞춤 수납장은 비용이 조금 더 들지만 사용할수록 그 편의와 가치를 알 수 있다. 2 개수대 덮개는 맞춤 제작했다. 덮개를 덮으면 테이블로 쓸 수 있다. 핑크빛 판의 반대쪽은 나무 재질이고 스틸 덮개도 따로 만들었다. 파티 분위기에 따라 3가지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다. 3 서랍은 물건을 찾고 정리 정돈하기 쉽도록 전면을 유리로, 속을 이중으로 만들었다. 샤워 부스에는 접이식 의자를 넣어 편의를 높였다. 5 컴퓨터 테이블은 전동으로 모니터를 조정할 수 있다. 모임 장소에 일하는 흔적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모니터, 프린터를 쏙 숨겨두는 디자인으로 맞춘 것.

 

아폴로니아의 4가지 원칙

이 집의 이름은 아폴로니아, 별채는 몽블랑이라 부른다. 이름을 붙인 것도 재밌는데 이름 지은 이야기는 동화같다. “제 머릿속의 살기 좋은 곳은 따뜻하고 안락한 곳이에요. 그리스나 이탈리아 남부 같은 느낌을 원했어요.

우리 집을 보면 한옥이지만 방바닥은 대리석 느낌이고, 기둥은 그리스 신전 같잖아요. 그리스 신 아폴론이 떠올랐고, 여자들을 위한 집이니까 아폴로니아라고 정했는데 우연히 아폴로니아라는 항구 도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바다는 먹을거리가 나는 곳이자 생명의 시작이잖아요. 제가 바다를 좋아하거든요. 우리 집에 바다 모티브를 쓰고 싶었는데 딱 들어맞았어요.”

몽블랑의 사연은 더 깜찍하다. 별채가 계단 위에 위치해 있고 외벽이 하얘서 몽블랑이라고 붙였다는 것. 이런 이름을 부르며 아폴로니아에 있자니 몽블랑의 하얀 벽이 눈처럼 보이며 마치 무대 위의 여신이라도 된 듯한 재미에 빠진다. 그리고 파도처럼 햇살이 넘실거리는 이 집에 아폴로니아라는 이름이 딱 맞춤이다 싶다.

침실과 파우더 룸, 샤워실이 있는 공간.

침실과 파우더 룸, 샤워실이 있는 공간.

 

이렇게 유쾌한 빈센트에게는 집에 관한 엄격한 룰이 있다. 안전, 기능, 경제성, 아름다움의 4원칙이다. 1순위는 안전, 2순위는 기능, 경제성과 아름다움은 경우에 따라 순서가 바뀔 수 있다. 모든 결정의 기준이 4가지 원칙이다.

디자인은 기능을 따라가는 것, 기능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그래서 공사하는 동안, 인터뷰 내내 그가 제일 강조한 것은 수평이 잘 맞는 바닥이었다. 가능한 한 벽을 없애고 침실과 거실 사이에 유리 벽을 세운 것도 안전과 연관되어 있다. 소리와 시선이 공유되는 안전한 집을 추구한 것이다.

주방 조리대와 개수대는 스틸로 접어 제작했다. 바 스툴은 을지로에서 중고 가구를 사 페인팅만 새로 했다.

주방 조리대와 개수대는 스틸로 접어 제작했다. 바 스툴은 을지로에서 중고 가구를 사 페인팅만 새로 했다.

먼지도 계산했다

빈센트는 공사 기간 내내 줄자와 설계도가 빼곡한 노트를 들고 현장을 드나들었다. 그는 잠수함과 인공위성을 만든 공학도다. 좁은 공간에서 일해보았기에1~2cm가 주는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안다.

집에도 이런 예민한 디테일이 살아 있다. 계단을 내려갈 때의 각도, 손잡이의 위치, 둥글린 정도, 샤워실의 습기가 나갈 틈, 화장실 변기의 높이, 개수대의 홈, 쓰레기통 서랍 등 안전과 편의와 쓸모를 생각한 아이디어가 넘친다.

오픈형 그릇장을 쓰는 집이라 틈을 최소화하며 먼지까지 계산했다. 단열도 현장에 가서 단열재를 제대로 넣었는지 살폈고, 이중창을 달면서 시공이 제대로 되었는지, 고무 패킹 하나하나 손을 대가며 바람이 세는지 체크했다. 잘못되면 뜯었고, 제대로 될 때까지 다시 했다.

그래서 무려 14개월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곳이 있다며 여기저기 테이프를 붙여 표시해두었다. 잠시라도 머물 곳이면 제대로 하자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고치고 또 고칠 예정이다. 실내뿐만이 아니다. 대문 밖의 화단, 집 앞의 길, 심지어 옆집까지 살피고 가꾼다.

1 모든 그릇을 오픈 형태로 수납했다. 아일랜드 조리대의 상판은 나무 도마를 올렸다. 20년 후에 교체할 것을 고려해 탈착이 되도록 디자인했다. 빈센트의 아이디어다. 그는 어떤 물건이든 평생 쓸 것을 염두에 두고 제대로 만든다. 2 벤치 뒤 하얀 벽이 게스트 룸, 몽블랑이다. 꽃병이 올려진 벤치에는 파라솔, 조명 스틱을 꽂을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놓았다.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계단을 물결처럼 둥글게 디자인했다. 3 초록색 문에 철로 만든 꽃이 달려 있다. 현관 손잡이의 각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1 모든 그릇을 오픈 형태로 수납했다. 아일랜드 조리대의 상판은 나무 도마를 올렸다. 20년 후에 교체할 것을 고려해 탈착이 되도록 디자인했다. 빈센트의 아이디어다. 그는 어떤 물건이든 평생 쓸 것을 염두에 두고 제대로 만든다. 2 벤치 뒤 하얀 벽이 게스트 룸, 몽블랑이다. 꽃병이 올려진 벤치에는 파라솔, 조명 스틱을 꽂을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놓았다.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계단을 물결처럼 둥글게 디자인했다. 3 초록색 문에 철로 만든 꽃이 달려 있다. 현관 손잡이의 각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작년 여름에 공사를 시작해 다시 여름이 오고 가을이 되어 공사가 끝났다. 부부는 1년여를 함께 일한 시공 팀을 아폴로니아에 초대했다. 그 마음이 참 넓고 아름다웠다. 집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지만 완성된 모습을 볼 일이 거의 없었던 그들은 이런 모임이 어색하면서도 뿌듯하고 즐거워 보였다.

한국에 연고가 없는 빈센트도 ‘동창’이 생긴 듯 상기되었다. 빈센트의 치밀한 계획처럼 누구나 와서 즐기는 집의 기능이 톡톡히 발휘되었다. 화사하고 생기 넘치며 작은 즐거움이 가득한 아폴로니아가 빈센트의 의도대로 완성되었다.


에디터_이나래 | 사진_JEON TAEG SU
여성중앙 2017.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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