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응용 - How?

한국 더하기 유럽풍 아파트

다연바람숲 2017. 12. 8. 16:25

 

 

 

 

 

 

경기도 광교 이의동에 위치한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한 이정록 씨. 일부 세대를 제외하고 전면과 후면에 모두 외창이 있는 맞통풍 구조로 채광과 통풍이 뛰어나고, 천장 높이를 일반 아파트 대비 20cm가량 높게 설계해 밝고 쾌적한 분위기로 유명한 주거 단지다. “인근에 광교산이 있고 공원이 많아 도심 속에서 그린 라이프를 즐길 수 있어요. 하지만 2017년 2월에 입주를 시작한 새집인데도 내부 마감이 다소 촌스러웠어요.” 욕심 같아서는 싹 바꾸고 싶었지만 모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자재에 총 48평의 공간을 뜯어고치기엔 비용과 시간 부담이 컸다. 이런 고민을 들은 인테리어 시공 전문 업체인 디자인폴의 박미진 실장이 제안한 방법은 ‘선택과 집중’이다. 

비용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일부만 바꿔도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바닥은 그대로 두고요. 벽지를 교체하고 문과 일부 벽에 페인트 도색만 새로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특급 처방전은 바로 루버 셔터예요.” 루버 셔터는 일정한 간격으로 짠 원목 슬랫을 올리고 내려서 통풍과 채광을 조절할 수 있는 창호 마감재다. 화이트부터 블랙까지 색상이 다양하다. 또 나무가 가진 물성으로 인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실과 주방 겸 다이닝 룸을 둘러싼 큰 유리창이 시야는 탁 트이지만 행여나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는 않을까 늘 신경이 쓰였어요. 저 큰 창에 커튼을 달자니 웬만한 두께의 암막이 아니고는 속이 어른어른 비칠 거 같았고요. 관리도 힘들 테고요. 이 모든 걸 해결한 루버 셔터야말로 현명한 선택이었어요.

 

 


1,2,3 자투리 공간에 꾸민 다실 전경. 체리색 웨인스코팅과 문목을 화이트 색상으로 도색했다. 그리고 20여 년간 모은 한국 고가구와 소품으로 꾸몄다.

 

 

다실이 된 방과 방 사이

 

의왕시 월암동에서 ‘정록’이라는 전통 찻집을 운영하는 이정록 씨. 바쁜 삶 속에 차 한 잔이 주는 여유를 중히 여기는 이정록 씨는 집에 머무는 동안에도 다도를 즐긴다. 딸아이 방과 남편의 서재 사이에 있는 5평 남짓한 공간. 통로로 쓰기에는 너무 넓어 용도가 애매했던 이곳을 다실로 꾸몄다. 30대 중반부터 20여 년간 우리나라의 전통 가구를 모으고 있는 이정록 씨는 이곳에 전통 소반과 반닫이를 두고 자수 방석을 깔았다. “좌식 다실이에요. 키 높은 가구를 두면 방과 방 사이의 이동 통로를 막고 답답하잖아요. 부피가 크지 않고 아담한 우리 고가구를 뒀어요.

 

 

1 주방 겸 다이닝 룸 전경. 공간 대비 작았던 등을 떼내고 프랑스산 샹들리에를 달았다. 2 부부 방.

 

 

동서양의 고가구로 채운 현대식 아파트

 

어두운 색의 벽지를 맑은 톤의 벽지로 교체했고 체리색 방문은 모두 화이트 색상의 페인트로 도색했다. 칙칙한 검은색 타일이 깔렸던 욕실은 화려한 블루 프린트의 타일로 교체했다. 그리고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지에서 앤티크 가구와 소품을 수집하는 박미진 실장은 20여 년간 우리의 고가구를 모은 이정록 씨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촌스러운 요소를 배제하고 모던하게 꾸민 공간에 이정록 씨가 가지고 있던 한국 고가구를 들이되 일부는 큼직하고 고풍스러운 유럽 앤티크 가구를 믹스 매치하기를 권했어요.” 

처음엔 스타일이 다른 동서양의 고가구를 과연 한 공간에 들일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됐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는 공통점을 가진 한국과 유럽의 고가구는 놀랍도록 잘 어우러졌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주방 겸 다이닝 룸. 그릇장과 식탁은 영국에서 가져온 앤티크 가구다. “그릇장 안에는 ‘각시병’이라고 혼례 때 사용했던 술병을, 식탁 위엔 한식기를 뒀어요.” 그리고 곳곳에는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옹기’로 채웠다. “옛날에 부자들은 유기를 썼던 반면, 주로 서민들이 썼던 게 옹기예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벌목을 제한하면서 전통 가마에 소나무를 때서 굽던 옹기의 맥이 끊겼죠. 최근 5년간 전국을 뒤지며 맥이 끊기기 전 구워낸 옹기를 찾고 있어요.”

 

 

화려한 패턴의 타일로 교체해 유니크해진 욕실.

 

1,2 이정록 씨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베란다 정원.

 

 

정원은 나의 안식처

 

딱딱한 타일로 덮여 있던 베란다. 평소 야생화를 좋아하는 이정록 씨는 이곳을 정원으로 꾸미기로 결심했다. 과감히 타일을 뜯어내고 방수포와 부직포, 인공토, 마사 순으로 깔아 바닥을 다졌다. “제일 마지막에 깐 게 돌을 잘게 쪼갠 마사예요. 화분 제일 밑에 까는 게 이 마사인데, 작은 모래가 빠져나가지 않고 배수가 잘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죠. 이렇게 마사를 깔면 좋은 점이, 돌의 차가운 기운 때문에 여름엔 시원하고요. 이물질이 있으면 빗질을 할 필요 없이 주워서 버리면 돼요. 배수가 잘돼서 물청소도 편하고요.” 이렇게 타일 철거 비용을 제외하고 베란다를 정원으로 꾸미느라 든 비용은 200만원 미만. “야생화는 제가 키우던 거고요. 인공토는 70포, 마사는 50포를 들였고요. 디딤돌로는 옛날 온돌 마루에 깔았던 구들장을 30만원어치 샀어요. 지방에서 공수하느라 용달비가 들었어요. 조경 업체에 맡기면 지금 이 면적에 최소 500만원, 최대 10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더라고요.” 발품을 팔아 도매가에 가까운 저렴한 비용으로 자재를 구매할 수 있는 화훼단지를 찾았고 직접 꾸며 인건비를 줄였기에 가능한 비용이었다. 이곳에 썬빔 또는 문빔이라 불리는 아기 코스모스와 잔디 패랭이, 사계국화, 초화화까지 심어놓자 저 멀리 미국 타샤의 정원이 부럽지 않다.


 

고가구로 꾸민 집

조선 후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사상. 옛 물건인데도 다리를 접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거실의 간이 테이블로 사용하고 있다. 바닥에 놓인 작은 함은 제사상에 떡을 올릴 때 사용한 편대다.

 


현관 바로 맞은편 벽에 걸어둔 물고기 모양의 나무 조각. 물고기는 오랜 옛날부터 넉넉함과 풍족함, 여유를 상징했는데, 떼를 지어 몰려다녀서 집 안에 두면 행운이 떼로 몰려든다는 의미도 있다.

 


옛 한옥 굴뚝에 올려 연기 통로로 사용되었던 ‘연가’를 비롯해 저금통 등 서민들이 일상 용품으로 사용하던 옹기. 넓적한 옹기에는 물을 받아 풀이나 꽃송이를 띄워 둔다.

 


세리프 TV 옆에 둔 함. 먹과 붓 등 서예 도구를 뒀던 벼루 함으로 보기 싫은 셋톱박스를 가리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꺾어지는 곳에 둔 고재 벤치와 반닫이. 벽에는 시침과 분침이 물고기 조각으로 된 시계를 걸었다.

 


기획 : 이경현 기자 | 사진 : 백경호 | 디자인과 시공 : 디자인폴(blog.naver.com/tmdvy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