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산만한 정원 / 성미정
삼 일 만에 족히 일 미터는 자라는
잭과 콩나무에나 나올 법한 식물도 자라난다
갑자기 원추리가 자라나고
비비추도 자라난다
찔레꽃도 자라난다
잎사귀만 보고는 가늠할 수 없던 식물들
길이도 들쭉날쭉한 식물들이 자라난다
일목요연하게 정원을 가꾸려던 의지는
무성한 잡초와 알 수 없는 식물들의 기세 앞에
슬슬 지쳐 가기 시작한다
해바라기와 오래된 모과나무에는
매미의 허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서툰 정원사가 꿈꾸던 아름다운
질서는 여기에 없다
포기
온갖 포기가 정원에 자라난다
한 포기 두 포기 세 포기
네 포기 다섯 포기
세는 것도 힘들다
다 포기다
이렇게 산만한 정원에서
이렇게 산만하게
자라고 싶은 것들 모두 자라라
시들고 싶은 것 모두 시들어라
이 모든 산만함이 그리워질
겨울이 오기 전에 더욱 산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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