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김소연
땅 위로 주먹을 내밀고, 손가락을 쫙 펴서 흔든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짧은 키 들꽃,
손가락 끝에 눈동자 매달고는,
별 거 없는 지상을 휘둥그레 관람한다.
꽃자루 짧을수록 그 뿌리는 필시 굵고 싶다 했으니,
억척스럽고 아귀 힘이 좋은 뿌리 하나,
겨우내 언 땅 밑에서 긴 생각을 하였다가,
정말이지 저 위의 허전한 허공이 너무 궁금해
지상으로 눈동자를 올려 보낸 것이겠다.
얼마나 별 거 없이 지루하면,
한철을 손 흔들다 져버리게 될까
아무나 가져라,
제 꽃잎 다섯 장의 중심을 나비에게 줘 버리게 될까
그러고 보니, 너무 오래 살고 있네,
나여, 그리고 당신이여.
하지만, 피는 꽃이 있고 지는 꽃이 있어
나의, 우리의, 지루함을 가시화해 주니 안심,
우린, 평생을 지루하고 지루한 지복을 누릴 터.
피는 꽃을 바라보면 지는 꽃이 보이는,
이 고루한 관례에 대해 고민할 때에 보이면 어떡하나,
꺼질 듯하지만 꺼지지는 않는,
내 팔딱이는 심장 앞의 弔燈처럼,
쓸데가 전혀 없는 이 꽃이
'창너머 풍경 > 열정 - 끌리는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날은 간다 / 김용택 (0) | 2017.04.13 |
---|---|
봄날은 간다 / 기형도 (0) | 2017.04.12 |
봄날은 간다 /조용미 (0) | 2017.03.31 |
어제의 눈물 / 김상미 (0) | 2017.03.23 |
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 / 김미정 (0) | 2017.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