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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의 ‘힐링의 미술관’] 내 안에 낯선 여자가 산다…행복한 남자는 ‘아니마(남자의 무의식 속 여성성)’를 긍정한다

다연바람숲 2017. 3. 20. 12:16

 


사진설명남성 예술가들이 여성을 그린 그림에는 여성에 대한 그들의 무의식, 즉 ‘아니마’가 잘 드러난다. 그림➊은 아니마가 긍정적으로 드러난 장 앙투안 와토의 ‘케레스(그리스신화의 ‘데메테르’)’다. 반면 그림➋와 그림➌은 아니마가 부정적으로 반영된 장 베네의 ‘살로메’와 에드바르트 뭉크의 ‘마돈나’.

 

가끔씩 낯선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다. 질투, 변덕, 시기, 연민, 울적함 등 말이다. 이런 감정과 무드는 도무지 남자답지 못한 거라고 생각해 자꾸만 억누른다. 당신은 어떻게 처신하는가? 사실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이런 감정이 전혀 올라오지 않거나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가 된다.

칼 융의 심리학에서는 남성들 속의 이런 낯선 감정을 ‘아니마(anima)’라고 부른다. 아니마는 라틴어로 ‘영혼’을 뜻하는데,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다. 사실 남성이 여성을 볼 때는 현실적인 여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무의식에서 투사된 여성상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아니마는 당신이 첫눈에 반하는 여자가 왜 그런 여자인지, 당신이 왜 여자에게 인기 없는지, 왜 자주 패배적인 마음이 드는지 등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러니 성가시더라도 당신의 무의식 속 아니마의 존재를 이해하고, 그 존재와 잘 지내게 된다면 인생의 많은 어려운 일을 수월하게 넘길 수 있다.

남성 무의식 속 아니마의 존재는 무엇일까? 아니마는 고대 신화와 성서에 등장하는 여신, 창녀, 요정, 마녀 등의 여성 유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융의 정신적 동반자였던 토니 볼프(Tony Wolff)는 ‘여성 정신의 구조적 형태’라는 논문에서 여성 유형을 어머니, 헤타이라, 아마존, 영매 등 네 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어머니, 즉 모성을 대표하는 여성 원형이다. 남편보다 자식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유형으로, 신화와 역사 속 인물 중에선 데메테르와 마돈나 등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 유형 헤타이라는 고대 그리스에서 남성의 정신적 동반자가 되기 위해 특별 교육을 받은 고급 기생을 말한다. 이런 유형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만족을 추구한다. 남성들은 이런 여성을 좋아하는데 그녀들이 남성의 에로스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신화와 역사 속 인물로는 아프로디테와 이브 그리고 클레오파트라 정도가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아마존 여전사 유형으로 외부세계에서 주된 정체성과 만족을 찾는다. 보통 전문직에 종사하며 유능하고 지략이 뛰어난 부류다. 신화 속 인물로는 아테나 등이 있다. 네 번째 여성 유형은 영매 스타일이다. 영적인 세계와 인간 세상을 연결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예술가, 시인, 점성술사 등의 직업이 많으며 신화 속 인물로는 아르테미스와 메데이아 등이 있다.

이런 여성 원형들은 아니마가 인격화된 것으로, 남성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면서 남성에게 긍정적·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니마의 긍정적인 면은 영적인 힘과 직관, 자연에 대한 비상한 지혜, 무한한 연민과 사랑의 능력 등이다. 부정적인 면은 감정적이며 비합리적인 감수성, 유혹적이며 간악하고 잔인한 태도 등이다. 흔히 간계를 써서 남자에게 굴욕과 죽음을 갖다주는, 유혹하는 여자로 의인화된다. 일종의 팜므파탈이다.

아니마의 부정적인 측면과 관계 맺게 되면, 종종 불쾌한 생각과 감정 그리고 환상에 시달린다. 더불어 소위 나쁜 여자들한테 잘 속아 넘어가거나, 스스로 유혹자가 돼 상대를 타락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반대로 아니마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남자는 여성과 대화를 잘 나누며, 어린아이를 잘 보살피고, 동식물과도 잘 교감한다. 이처럼 남자의 내면에서 아니마가 긍정적으로 기능할 때 아니마는 그의 의식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아니마는 꿈, 환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정신적 이미지와 활기를 주는 감정들로 이뤄진 내면세계를 인식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인격을 풍요롭게 한다.

예술가들은 아니마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사실 남성 예술가는 대부분 아니마가 강한 사람들이다. 아니, 아니마와 잘 화해하고 소통한 부류다. 피카소는 스스로 자신은 남성성 때문에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페미닌’하기 때문에 사랑받았다고 토로했다. 피카소 아니마의 긍정적 측면이 여성의 감정을 잘 읽어내게 해 그녀들을 매혹했고, 아니마의 부정적 측면은 그녀들을 내치고 가슴 아프게 했다. 어쨌거나 대부분의 남성 예술가는 여성성이 무척 풍부한 이들이다.

남성 속에 있는 아니마의 부정적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낸 존재는 살로메, 메두사, 메데이아, 스핑크스, 유디트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살로메는 단연 압권이다. 계부이자 삼촌인 헤롯왕을 춤으로 유혹해 세례요한의 목을 베도록 설득한 살로메는 이중으로 유혹적인 존재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은 전 남편의 이복형과 혼인한 살로메의 엄마인 헤로디아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투옥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던 헤로디아는 자기보다 젊고 아름다운 딸 살로메를 앞세워 세례요한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살로메는 자신에게 음심을 품었던 헤롯왕을 관능으로 유혹했다. 더욱 치명적인 건, 그녀가 죽인 존재가 세례요한이었다는 점. 세상을 구하러 온 선지자를 죽였다는 건 부정적인 아니마가 저지른 극단적 실수가 아닌가!

화가들은 세례요한의 비극적인 삶과 죽음의 드라마보다 살로메의 미모와 성격에 더 매료됐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목 잘린 세례요한을 쟁반에 받쳐 든 살로메의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다. 가장 눈에 띄는 그림들은 소름 끼치도록 천연덕스럽고 냉정한 살로메의 모습을 담은 것. 이로써 남성들 속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아니마로서의 살로메는 위험한 여성성의 대명사가 된다.

남성 속에 있는 아니마의 긍정적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낸 존재는 마돈나와 데메테르 같은 여성상일 것이다. 영원한 모성의 존재들, 남성들은 언제나 자궁에서처럼 자신을 지켜줄 신비한 모성을 그리워한다. 미술관에 넘쳐나는 ‘성모자’와 ‘비너스와 큐피드’를 보라.

남성들은 여자를 성녀와 악녀로서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대표적으로 에드바르트 뭉크가 그렇다. 그는 이상적 연인상으로는 마돈나, 적대적 여인상으로는 살로메, 뱀파이어, 메두사 같은 여성을 그렸다. 흥미로운 건 뭉크가 그린 마돈나가 참 기괴하다는 점이다.

사실, 뭉크의 ‘마돈나’ 3부작은 고향 후배이자 짝사랑이었던 다그니 유을을 모델로 했지만 뭉크 곁을 스쳐 간 어머니, 누이, 첫사랑 등 그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은 여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버무려져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뭉크의 그림에는 마돈나로 생각했던 여자조차도 상처와 절망을 주는 무시무시한 존재일 뿐이라는 심각한 여성 혐오 사상이 녹아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뭉크는 자신의 무의식 속 여성성인 아니마와 제대로 화해하지 못한 대표적 케이스의 화가가 아닌가 싶다. 독신이었던 그는 평생 여성을 가까이하는 동시에 두려워하고 공포스러워했으니 말이다.

부정적 아니마인 살로메와 같은 존재는 남성들이 유혹하고 싶고 또 유혹에 빠지고 싶은 감정을 의인화한 존재다. 혹 그런 감정이 올라온다면, 당신 인생에 무언가가 빠져 있는 것이다.

권력을 거머쥔 성공한 남자들이 저지르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의 배경에는 아니마가 불러일으키는 불안과 공포가 있다. 성공한 남자의 무의식 속에서 드러나는 무시무시한 유혹녀는 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외부적인 성공에 집중하면서 내면의 성장에 소홀했다는 의미다.

남성들이여! 당신들 내면의 아니마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면 이성과의 관계에 도움이 된다. 남자가 자신이 갖고 있는 여성성과 화해하기를 원한다면 여자들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집 안에서 만나는 여자, 동창회나 모임에서 만나는 여자, 직장에서 대면하는 여자들은 모두 당신의 아니마와 조우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이제 그녀들이 다시 보일 것이다. 그녀들은 모두 나의 아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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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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