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는 처녀’, 벨베데레박물관, 1850년, 캔버스에 유화,
프란츠 아이블. 옷이 흘러내린 줄도 모를 만큼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 소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을은 사실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 아니다. 가을은 정말 놀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런 계절에 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
당신의 여자가 싸돌아다니지 않고 TV를 시청하지도 않으며 집에서 고요히 책을 보고 있다고 치자. 집을 지키는 아내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진짜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지금부터 책 읽는 아내를 둔 남자들은 긴장하시길….
책 읽는 마릴린 먼로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섹스의 표상인 마릴린 먼로가 20세기 현대소설 중 가장 위대한 책이라고 평가받는 미국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탐독했다면? 먼로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 매그넘 사진가 이브 아널드에 따르면, 먼로를 찍기 위해 약속한 장소에 갔을 때 그녀가 율리시즈를 읽고 있었다는 것이다. 먼로는 자신이 제임스 조이스의 책과 그 문체를 좋아하며, 그것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소리 내서 읽고 있지만 힘든 일이라 말했다고. 그녀는 관련 강좌를 듣기 위해 대학은 물론 제임스 조이스 연구 모임과 접촉했다고 한다. ‘알면 다친다’고?! 어쩌면 마릴린 먼로의 죽음은 그녀가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루이 15세의 연인 마담 퐁파두르 역시 대단한 독서가였다. 그녀의 독서는 왕의 여자가 되기 위한 레토릭을 배울 수 있는 필수항목이었다. 그것은 왕을 유혹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책략이 권태로운 왕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독서는 그녀가 왕의 여자가 된다는 점괘를 믿은 어머니로 인해 9세 때부터 시작된 교양활동 중 하나였다. 그녀의 독서는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퐁파두르의 초상화는 그녀가 얼마나 책을 가까이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으로, 대부분 책이나 악보를 펼쳐 들고 있다. 그녀는 살롱의 식객이었던 볼테르, 디드로 같은 철학자들이 백과사전을 만들도록 후원했다. 왕의 인생 중 절반인 20년 가까운 세월을 사랑받는 애첩으로 온갖 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엄청난 스토리텔러, 즉 재미있는 여자로서 왕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방식으로 왕의 비서실장이자, 애인이자, 친구이자, 엄마이자 여러 역할을 다중적으로 해낼 수 있었다. 퐁파두르는 자신의 전 인생을 통해 현명하고 지적인 여성이라는 이미지 구축에 힘썼다. 그리하여 ‘벨 사방(학식 있는 여인)’이 됐다.
책 읽는 여자들은 언제부터 그려지기 시작했을까? 책 읽는 여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다. 특히 네덜란드만큼 문자를 통해 이뤄지는 책과 편지가 크게 유행한 나라는 없었다. 편지 읽는 그림이 많았던 것은 인간, 특히 남녀 사이에 사적이고 내밀한 관계가 지배적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여성들은 편지 작성법 교본이라든지 글씨 연습책 같은 것을 많이 읽었다. 그러다 살롱 문화가 발전하고 더불어 출판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18세기 로코코 시대부터 책 읽는 그림이 대대적으로 그려지고 그 여파를 몰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진다.
아마도 책 읽는 여자들이 가장 많이 그려졌던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여자들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세계에 갇혀 있을 때였을 것이다. 처음에 여자들은 자아실현의 수단이기보다는 지루하고 비천한 일상을 견디는 방법으로 책 읽기를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런데 책을 통해 가정이라는 좁은 세계를 상상력과 지식으로 이뤄진 무한한 세계와 맞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얻게 된 순간, 그러니까 책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을 얻게 된 순간부터 여자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아를 발견하면서 가정에 대한 순종을 벗어던지고 독립적 자존심을 얻기에 이른 것. 그녀들은 책을 통해 거대한 각성의 세계로 진입했다.
당신의 여자가 싸돌아다니지 않고 TV를 시청하지도 않으며 집에서 고요히 책을 보고 있다고 치자. 집을 지키는 아내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진짜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지금부터 책 읽는 아내를 둔 남자들은 긴장하시길….
책 읽는 마릴린 먼로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섹스의 표상인 마릴린 먼로가 20세기 현대소설 중 가장 위대한 책이라고 평가받는 미국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탐독했다면? 먼로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 매그넘 사진가 이브 아널드에 따르면, 먼로를 찍기 위해 약속한 장소에 갔을 때 그녀가 율리시즈를 읽고 있었다는 것이다. 먼로는 자신이 제임스 조이스의 책과 그 문체를 좋아하며, 그것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소리 내서 읽고 있지만 힘든 일이라 말했다고. 그녀는 관련 강좌를 듣기 위해 대학은 물론 제임스 조이스 연구 모임과 접촉했다고 한다. ‘알면 다친다’고?! 어쩌면 마릴린 먼로의 죽음은 그녀가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루이 15세의 연인 마담 퐁파두르 역시 대단한 독서가였다. 그녀의 독서는 왕의 여자가 되기 위한 레토릭을 배울 수 있는 필수항목이었다. 그것은 왕을 유혹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책략이 권태로운 왕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독서는 그녀가 왕의 여자가 된다는 점괘를 믿은 어머니로 인해 9세 때부터 시작된 교양활동 중 하나였다. 그녀의 독서는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퐁파두르의 초상화는 그녀가 얼마나 책을 가까이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으로, 대부분 책이나 악보를 펼쳐 들고 있다. 그녀는 살롱의 식객이었던 볼테르, 디드로 같은 철학자들이 백과사전을 만들도록 후원했다. 왕의 인생 중 절반인 20년 가까운 세월을 사랑받는 애첩으로 온갖 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엄청난 스토리텔러, 즉 재미있는 여자로서 왕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방식으로 왕의 비서실장이자, 애인이자, 친구이자, 엄마이자 여러 역할을 다중적으로 해낼 수 있었다. 퐁파두르는 자신의 전 인생을 통해 현명하고 지적인 여성이라는 이미지 구축에 힘썼다. 그리하여 ‘벨 사방(학식 있는 여인)’이 됐다.
책 읽는 여자들은 언제부터 그려지기 시작했을까? 책 읽는 여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다. 특히 네덜란드만큼 문자를 통해 이뤄지는 책과 편지가 크게 유행한 나라는 없었다. 편지 읽는 그림이 많았던 것은 인간, 특히 남녀 사이에 사적이고 내밀한 관계가 지배적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여성들은 편지 작성법 교본이라든지 글씨 연습책 같은 것을 많이 읽었다. 그러다 살롱 문화가 발전하고 더불어 출판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18세기 로코코 시대부터 책 읽는 그림이 대대적으로 그려지고 그 여파를 몰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진다.
아마도 책 읽는 여자들이 가장 많이 그려졌던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여자들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세계에 갇혀 있을 때였을 것이다. 처음에 여자들은 자아실현의 수단이기보다는 지루하고 비천한 일상을 견디는 방법으로 책 읽기를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런데 책을 통해 가정이라는 좁은 세계를 상상력과 지식으로 이뤄진 무한한 세계와 맞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얻게 된 순간, 그러니까 책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을 얻게 된 순간부터 여자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아를 발견하면서 가정에 대한 순종을 벗어던지고 독립적 자존심을 얻기에 이른 것. 그녀들은 책을 통해 거대한 각성의 세계로 진입했다.
프란츠 아이블이 그린 소녀만큼 독서에 몰입한 상태를 기막히게 표현한 그림도 흔치 않다. 소녀는 책이 주는 최고의 열락, 즉 주이상스(jouissance)에 빠져 있다. 책을 읽는 일이 책을 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녀의 모습은 독서를 통한 트랜스 상태(마치 최면에 걸린 듯 몽환적인 상태)처럼 보인다. 그윽한 눈과 조금 벌어진 입의 모양뿐 아니라,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심장 위에 올려져 있다는 점, 그리고 블라우스의 어깨끈이 내려와 있는 것도 모를 정도의 집중 상태라는 점에서 바로 알 수 있다. 그렇게 소녀의 시간은 멈췄고 그녀는 온전히 책이 주는 세계와 혼연일치가 됐다.
책 읽는 그림 중에서도 아주 특별하게 시선을 잡아당기는 그림이 있다. 흔치 않게 벌거벗은 여자가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이다. 짙은 갈색 머리의 소녀가 조금은 딱딱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입을 벌린 채 책에 열중해 있다. 잡지로 보이는 이 인쇄물은 그녀의 무료함과 권태를 잠시 잊게 해주고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녀가 입고 있다 벗어놓은 아름다운 기모노가 그녀의 정신 상태를 대변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19세기 말의 낭만적 발상과 당대 자포니슴(예술 작품 등에 일본식 취향을 가미한 것)이라는 유행의 첨단에 젖어 있던 허영기 있는 여자였을 터다. 여자의 허영심은 또 얼마나 에로틱한가! 다시 말해 그녀가 보는 책은 그녀가 입었던 옷과 진배없이 ‘나를 다른 세계로 잠시나마 데려가줄 환상의 세계’, 즉 그녀가 동경해 마지않는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더불어 책 읽는 벌거벗은 여자는 아마 책 앞에서는 어떤 수치심도 없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한편 책이 피부를 통해 직접 심장까지 뚫고 들어온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독서는 인간을 벌거벗게 만든다. 책을 통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결국 인간을 더 자유롭게 한다는 비유다.
책 읽는 여자를 그린 시대의 남성들이 진정 책 읽는 여자를 두려워한 이유는, 그녀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자기만의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가사, 남편, 아이, 심지어 애인도 잊어버린다. 오직 책만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며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독서는 기존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반항적인 아이가 되게 만든다. 남들한테는 두려움을 주고, 스스로는 두려움이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남성들은 그런 존재에 매혹되는 동시에 두려워했다.
그런데 언제나 ‘타자적 삶(소외되고 배제된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이 모토인 예술가들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그녀들의 시선과 태도에 매료당했다. 화가들은 여자가 책을 읽는 순간 그녀들이 꾸는 혁명의 기쁜 꿈에 동참하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이제 책 읽는 여자들을 위험하게 생각하던 시대가 지났을까? 여전히 책을 읽는 여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반란과 저항과 혁명을 꿈꾼다. 그런데 이제 책 읽는 여자는 더 이상 예전 방식과 똑같은 선상에서 위험하지 않다. 이제 달라진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은 여행, 사업, 운동, 봉사, 블로거, 취미 등 수동적 독서를 넘어서 적극적 체험을 더 중요히 여기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두려운 건 단순히 책 읽는 여자가 아니고, 책도 많이 읽고 체험도 많이 하는 여자들이다. 아마 당신은 당신의 여자가 혼자 배낭 메고 세계일주 한다고 나설까봐 살짝 겁이 날지도 모른다. 그녀들은 예전 여자들처럼 곰국도 끓이지 않는다. 이제 당신도 홀로서기를 하든지, 젖은 낙엽처럼 들러붙어 있든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왔다. 아무쪼록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유경희 미술평론가]
출처 - [ⓒ 매일경제 & m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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