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다녀오다 / 김경미

다연바람숲 2016. 11. 11. 18:22

 

다녀오다 / 김경미

 

다녀오면 언제나 잘 이어지질 않는다

더 잘 잇거나 최소한 같아야 하는데

똑같은 곳인데 잘 이어지질 않는다

나이와 잠과 돈과 인내와 교제와

끊길 수 있는 건 다 끊긴 듯

 

다녀오면 다리가 뻐근하도록 잠이 안오고

종일 사과꽃 지는 소리만 들리고

있던 게 두렵고

없는 게 거슬리고

다녀왔으니 양말만 벗고 가방만 풀면 그만인데

가방은 열리지 않고

양말은 수치스럽고

폭풍우는 창문마다 들이치고

 

애인에게 다녀온 사람들

우체국에 다녀온 사람들

술집에 바다에 야구장에 다녀온 사람들

점술가의 집에 동창회에 백화점에 다녀온 사람들

통영이나 춘천, 라오스에 페루에 프랑스에 다녀온 사람들

다녀와서도 모두 잘만 그치는데

 

자꾸 이러면

허황이나 허무라고

횡단보도 한 가운데

구두 뒷굽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는데

 

다녀만 오면 손끝까지 잠이 안오고

대체 거기 무엇이 있기에

무엇이 있었기에

종일 비가 내리고

혹인지 매듭인지 구멍인지 파도인지

벌레인지 무덤인지

 

다녀만 오면 앞니가 벌어지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