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닫이
[반쪽을 여닫는다]라는 말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전, 후, 좌, 우, 상, 하의 육면을 막고 전면 상반부를 경첩을 달아 문짝으로 만들어 상하로 개폐하는 형식의 궤의 한 종류이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한서차가 심한 기후적 영향으로 다양한 의복을 수장하기위해 사용하기 편하고 보존에 편리한 반닫이류가 많이 이용되었다. 현판의 중앙에 경첩을 달아 개폐하는 형식의 돈궤, 또는 곡물궤와 같은 윗닫이궤와, 앞면의 중앙에 경첩을 달아 상하로 개폐하는 형식인 앞닫이궤로 분류되는데, 일반적인 의미의 반닫이는 후자인 앞닫이궤를 지칭한다.
일반적 크기는 높이 80㎝ 내외로 앞면에는 장식 금구를 크게 부착시켰고 위에는 이불을 얹어놓고 쓰도록 튼튼하게 짜여졌다. 기본적으로 반닫이는 서민주택의 의복을 보관하는 기본가구로, 장, 또는 농을 장만할 수 없는 일반 서민들이 중요 혼수품으로 챙긴 가구였다.
전문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앞널과 뒷널 또는 바닥널을 서로 다른 목재를 쓰는 경우가 많으나 산간지역에서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은 동일한 목재로 두껍게 만들었으며, 자귀 흔적이 남아 있는 특징이 있다. 기온이 따뜻한 남쪽지역의 반닫이는 북쪽지역의 반닫이 보다 높이가 대체로 낮은 편이다.
반닫이
나무로 된 장방형의 상자를 가리키며 장(欌)을 세우는 궤(櫃), 곧 수궤(竪櫃)라는 한자어로 표기하는데, 대비하여 누워있는 궤라는 뜻의 와궤(臥櫃)라고두 한다. 궤에는 윗다지와 반다지(앞다지)의 두가지 형태가 있다. 천판(윗판)을 앞뒤로 절개하여 앞쪽을 문판으로 삼은 것을 윗쪽에 문이 있어서 윗다지라고 하며, 앞면을 상하로 이등분하여 위쪽을 문판으로 삼은 것을 반다지 또는 앞다지라 한다. 윗다지라 부르는 대형 궤를 흔히 돈궤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 알려진 명칭이다. 돈궤는 윗다지와 형태는 같으나 크기가 훨씬 작으며 윗면이 절개된 부위 중안에는 엽전(葉錢:동전)이 들어갈 수 있도록 장방형의 작은 구멍이 뚫여있다. 궤 가운데 윗다지는 책, 문서, 의복, 피륙, 건어물, 그릇, 제기, 활자(活字)등을 보관하는 다목적 가구로서 수납됨 물품의 종류에 따라 사랑방, 다락, 광, 사당 등에 놓고 사용하였으며 관청에서도 많이 이용한 가구이다. 궤는 문(뚜껑)이 널판으로 되어 운두가 없으며 문판에 붙은 경첩이 천판과 연결되어 포개 놓을 수 없다. 앞면에 문이 달린 반다지 가운데 특이한 형태는 내부를 좌우 칸으로 나누어 두 개의 문판을 나란히 단 원앙 반다지와 문을 중앙에 작게 낸 개구멍 반다지의 두가지 형태이다. 원앙반다지는 부부가 해로하라는 의미로서 결혼 예물로 만들며 부유한 집에서는 내외의 수의를 보관하기 위해서 만들기도 한다.
궤는 견고하고 물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어 각 가정마다 여러구를 비치하였다. 다양한 수요로 지역적 특색을 나타내기도 한지만 필요에 의해 주문제작한 것은 일정한 양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 예로 책탁 반다지, 반다지장등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양식이 다른 가구와 결합하여 독특한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1800년대 말경부터 수입되었던 석유와 성냥은 궤로 포장되어 수송, 판매되었으며 물건을 다 팔고 난 뒤 빈궤는 서민들이 얻어다 색종이를 발라 혼수품으로도 사용하였다.
북쪽 지방의 궤는 남쪽 지방의 궤에 비해 높이가 높으며 관서에서 호서에 이르는 반도의 서쪽 지역은 금구 장식이 화려하며 많이 부착되어 있다. 지역별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반다지로는 강화와 박천의 것이다. 강화 반다지는 주로 소나무로 만들며 폭에 비해 높이가 높다. 무쇠장식에 만(卍)자를 투각하여 장식성을 높이고 중심 절개부에 표자(瓢字)형 경첩을 달고 좌우에 사각의 경첩을 부착한다. 표자형 경첩아래는 배꼽 장식이 있으며 자물쇠 앞바탕 좌우에는 광두정을 대어 자물쇠를 잠글때 판재를 보호할 수 있게 하였다.
대부분의 반다지는 길목이 천판에 부착되어 문판의 좌물쇠 앞바탕까지 ㄱ자형으로 꺽어져 있다. 따라서 천판 위에 물건을 올려 놓을 경우 문을 열기가 불편한데 강화 반다지는 길목이 천판의 이마에 달려 있어 천판에 물건을 올려놓아도 문을 여닫기 편리하게 설계되었다 박천 반다지는 일명 숭숭이 반다지라고 알려진 무쇠 장식 반다지이다. 숭숭이 반다지는 피나무로 만들며 무미함 나뭇결에 투각의 금속장식을 앞면에 가득히 부착하여 장식한 것이다.
궤의 기원에 관한 중국 기록으로는 하(夏:B.C. 2205 ~ B.C.1670)나라와 주(周:B.C. 1134 ~ B.C. 1116)나라의 두 가지 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제4대 탈해왕(脫解王:57 ~ 80)이 길이 20자(尺), 너비 13자(尺)의 궤에서 나왔다는 기록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지금까지 삼국시대의 일상 생활용 가구가 발견된 예는 없으나 고분에서 출토된 목관과 부장용 궤의 예로 미루어 왕실 또는 신분이 높은 계층에서는 특수한 용도로 나무궤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면 관을 짜는 연장과 제작 기법 및 부장용 궤의 용도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일상 생활용 궤를 충분히 제작할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대원사 발행 <전통목가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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