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응용 - How?

소박한 별장으로 재단장한 옛 한옥의 변신, 오유당

다연바람숲 2015. 9. 9. 11:16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지은 한옥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변형되어왔다.

건축가이자 대학교수인 손기찬 씨는 어머니의 삶이 담긴 이 낡은 한옥의 묵은 때를 벗겨 내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주말 주택을 만들었다.

▲ 싱크대 위치를 바꾸는 큰 공사를 진행한 주방. 조그만 공간이라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상부장은 생략했다. 넉넉한 크기의 테이블 아랫부분이 부족한 수납공간을 대신한다. 싱크대와 테이블, 조명, 선반까지 이 집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크기로 맞춤 제작했다.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는 지혜

여름 한낮의 후텁지근함이 손기찬 씨의 집에 들어서자 서늘함으로 바뀐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그의 집은 지은 지 60년이 넘은 한옥으로,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살던 곳이다. 집은 창문마다 야산이 보이고, 외양간을 갖춘 전형적인 농가 주택이다. 마당 한 켠에는 우물의 흔적도 남아 있다. 대청마루와 방 2칸, 부엌이 주 공간인 집은 세월의 켜가 쌓이면서 낡았고, 군데군데 편의를 위해 고쳐 사느라 망가진 부분이 눈에 띄었다. 손기찬 씨는 건축설계와 인테리어를 모두 이해하는 전문가를 찾다 모루초의 박선은 대표에게 리모델링 공사를 의뢰했다.

▲ 고유의 모습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새로 단장한 ㄱ자 한옥 '오유당'. 손기찬 씨는 서울 집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이 작은 별장을 주말마다 찾는다. 자연을 느끼며 소박한 공간을 가꿔가는 시간이 그에게는 커다란 휴식이다.

 

"가능하면 집이 가지고 있는 흔적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어요. 가령 대청마루에 문을 달아 실내로 끌어들일 수 있었지만 한옥은 여름과 겨울의 공간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어요. 자연과 더불어 살려고 지은 집이니 불편을 감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아파트처럼 비가 들이칠까 봐 문을 닫아야 한다면 한옥에서 사는 의미는 퇴색되는 법. 그는 마루에 걸터앉아 비 내리고 눈 쌓이는 풍경을 고스란히 누리는 생활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집은 살기 편해야 하기에 주된 공사는 한옥의 옛 모습을 되살림과 동시에 옛집이 가진 취약점인 난방 문제, 불편한 주방 구조를 바꾸는 선에서 진행했다.

▲ 세월의 흔적을 벗겨 내니 작은방의 민낯이 드러났다. 서까래가 남아 있는 두꺼운 천장, 흙벽의 질감이 멋스러운 벽, 벽지로 가려 있던 벽장 등을 살려 조금씩 꾸미는 중이다.

 

마루와 기둥, 문틀에 칠해진 두꺼운 페인트를 벗겨 내자 근사한 원목이 뽀얀 얼굴을 드러냈다. 천장재를 철거하자 서까래 지붕이 시원스럽게 노출되었다. 머무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침실과 주방은 단열에 신경 썼다. 침실 천장을 막은 까닭도 난방 효과를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 대신 작은방은 구들장을 유지해 온돌방으로 쓴다.

최소한의 공사를 지향했지만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칠을 벗기는 일이나 흙과 지푸라기를 개어 벽체의 틈새를 메우는 과정 등은 노련한 인부들마저 어려워했다고. 요즘은 손기찬 씨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집 곳곳을 살피다 보면 주말이 금세 지나가지만, 서둘러 집을 완성하려는 기색은 그에게서 보이지 않는다. 집에 남아 있던 옥수수, 열무 등의 씨앗을 줄과 열을 맞추지 않고 흩뿌리고 잡초도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가 이 소박한 집에서 살고자 하는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 방 한가운데 기둥으로 보아 작은방 두 칸을 터서 사용한 것으로 예상되는 큰방. 군더더기 살림은 배제하고 간결하게 꾸며 침실로 사용한다. 천장을 막아 난방 효율을 높이고, 한지 느낌이 나는 종이 벽지로 마감했다.

 

어머니 품처럼 오롯이 자유롭고 편안한 집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가구, 사기그릇, 장독 등을 실제 사용하고 인테리어에 활용하면서 집이 한결 멋스러워졌다. 어머니에서 아들로 대를 이어가는 집의 앞날이 궁금한 건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건축과 자연의 만남을 추구해온 손기찬 씨의 건축관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집은 더 큰 가치를 품게 되었다. 그의 생각은 직접 지은 당호에 잘 드러난다.

▲ 공사 중 발견한 나뭇가지를 이용해 현대적인 느낌을 살려 만든 샹들리에. 농가 주택의 주방에 운치를 더하는 소품이 되어준다.

 

"집이란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남에게 드러내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당호는 <장자>의 잡편에 나오는 구절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빈 배가 밧줄로 매어 있지 않은 채로 마음대로 떠다니는 상태를 그리며 놀 오()자와 놀 유(遊)자를 썼습니다."

▲ 집 곳곳에서 발견한 고재를 허투루 버리지 않고 선반으로 만들어 주방에 달았다. 귀한 주방 살림을 진열해놓기에 안성맞춤이다.

 

일주일 만에 집에 오니 텃밭의 채소가 부쩍 자랐다며 웃는 손기찬 씨. 의자에 앉아 지내는 생활은 도시에서 충분히 했다며 몸을 움직이는 그는 어느새 자연과 벗해 자유로운 촌부가 되어 있다.

▲ 창고와 보일러실로 쓰던 주방 옆 작은 공간은 욕실로 바뀌었다. 벽과 바닥 마감재의 질감이 도드라져 멋스럽다.

▲ 대청마루와 문틀, 서까래 등의 두꺼운 칠과 먼지를 벗겨 내자 원목 고유의 멋스러운 색깔이 되살아났다. 이제는 한옥의 진면목을 마음껏 누리며 사는 일만 남았다.

Data

· 위치_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 면적_ 238.3㎡(71.56평)

· 구성_ 침실, 사랑방, 주방, 욕실, 마당, 실외 화장실

· 리모델링 연도_ 2015년 4월

· 리모델링 내역_ 설비+전기+도장+단열+목공+마루와 문 리폼+주방+구들장+욕실

· 총공사비_ 2900만원

 

기획: 전수희 기자, 임상범(프리랜서) | 공동 진행: 이채영(프리랜서) | 사진: 김덕창, 백경호 | 일러스트: 배선아 | 촬영협조: 모루초 디자인(http://morucho.com, 070-8860-9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