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 쓴 편지 / 김상미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대가 떠난 뒤 나는 꽃들과 친해졌답니다. 그대가 좋아했던 꽃들. 그 꽃들과 사귀며 하루하루 새 꿈을 개발해내고 있답니다.
그대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 안개꽃이었나요? 영원한 사랑. 그 꽃으로 그대는 나를 유혹하고 나를 버렸지요. 꽃밭 가득 그 꽃들이 다시 피어나고 있어요. 깊이를 잴 수 없는 꽃들의 욕망은 그 자체가 울부짖는 색깔 같아 그대 없이도 나는 그 꽃들을 숨막히게 안고 숨막히게 그 향기를 맡아요.
이제 엉겅퀴처럼 싱싱한 마음은 내 것이 아니에요. 나는 하루하루 화해의 개암나무 앞에 나를 문지르며 베고니아처럼 신중하게 아이비처럼 지조 있게 매일 밤 캐모마일 차를 마시며 역경 속의 에너지를 키우고 있답니다.
그러니 늘 버림받아 우는 매발톱 꽃씨 따위는 이제 보내지 말아요.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진달래처럼 짧고 연약한 열정에 매달려 쐐기풀처럼 잔인하게 시들고 싶진 않아요.
그래도 옛사랑, 그대를 위해 행운목 한 그루는 보내드릴게요. 애석하게도 그대가 좋아했던 달맞이꽃은 모두 시들어 버렸어요. 깊은 밤에만 피는 노랗고 변덕스런 꽃. 봉선화처럼 성급하게 수국처럼 냉정하게 나를 떠난 그대처럼 그 꽃들은 모두 바람 부는 벌판에 내던져 버릴래요.
하지만 그대가 백석 시집 갈피에 넣어두었던 제비꽃은 내가 가질게요. 아주 오랫동안 보고 또 본 꽃이라 말이 통할 정도로 친해졌거든요. 버릴 수 없는 내 일부분이 되어 버렸거든요.
나는 이제 꽃들이 발산하는 생명력 없이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그립지가 않아요. 꽃잎 하나하나가 내게 상처를 주어도 그 상처 위에 오래 앉아 있으면 꽃잎 하나하나가 다시 나를 치료해 줘요.
그러니 잘 가요, 내 사랑. 내 사랑이 앞으로도 계속 제비꽃에 빠져 있을지, 패랭이꽃에 가 머물지, 아카시아꽃처럼 비밀스런 사랑을 탐할지, 아몬드 꽃처럼 무분별한 사랑에 빠질지, 그건 아무도 몰라요. 나도 몰라요.
그렇지만 꽃들은 많은 걸 잊게 해주고 또한 많은 걸 떠올리게 해줘요. 두려움 없이 즐겁게 많은 걸 기다리게도 해줘요. 사랑하는 만큼 빠지게 하고, 사랑하면 할수록 더 많이 보이고, 볼 수 있게 해줘요. 파닥파닥 상상력이 뒤쫓아 다니는 어린아이의 발자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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