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 드 보통

다연바람숲 2015. 5. 28. 17:11

 

 

 

플라톤은 에술이란 삶을 모방하고자 분투하지만, 결국 실패할 뿐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예술가들은 이상 사회에서는 잉여 인간이었다. 로뎅이나 클림트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들은 이미 존재하기에 재생산될 필요가 없는 것들을 모방할 뿐이니까.

 

                                                                                                                                 page 26

 

감정적인 벌거벗음은 남에게 자신의 약함과 모자란 부분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된다. 거기에 의존하면, 우리는 존재라는 엄연한 사실 외의 다른 방법으로 어떤 인상을 심어줄 능력을 빼앗기게 된다. 더는 거짓말하거나 허세 부리지 못하고, 뽐내거나 미사여구 뒤로 숨지 못한다. - 몽테뉴는 감정적으로 벌거벗게 되는, 죽음을 맞는 순간에는 단순한 프랑스어[자신의 모국어]로 말해야 한다고 했다.

 

내 필요를 고백할 때는 감정적으로 벌거숭이가 된다.

 

                                                                                                                                  page 136

 

경제의 세계에서는 빚이 나쁜 것이지만, 우정과 사랑의 세계는 괴팍하게도 잘 관리한 빚에 의지한다. 재무 정책으로는 우수한 것이 사랑의 정책으로는 나쁠 수가 있다. - 사랑이란 일부분은 빚을 지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빚지는 데 따른 불확실성을 견디고, 상대를 믿고 언제 어떻게 빚을 갚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남겨주는 일이다.

 

                                                                                                                                  page 143~144

 

그 남자는 멀리서는 잘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백만 개나 되는 파편으로 나뉘어 있었다. 앨리스는 이토록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요소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그리고 예상할 수 없고, 끊임없이 질문과 해석이 뒤따르는 불안정 상태에 힘이 빠졌다.

 

                                                                                                                                  page 154

 

평소에는 멀쩡한 사람도 사랑을 하면 편집증에 걸리고, 별별 최악의 생각을 다 한다 - 그 남자/그녀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아, 싫증내고 있어, 적당한 때가 되면 이 사람은 모든 걸 없던 일로 할거야. . . . .

편집증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따르는, 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상대를 높이 평가하니 내가 버려질 가능성이 점점 커질 밖에. 하지만 일단 재앙의 시나리오에 끌려들면 사랑은 상처를 악화시킬 뿐이다.

 

                                                                                                                                  page 165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 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힘 들이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

 

                                                                                                                                   page 176 ~ 177

 

학구적인 자기 학대는 온유적인 편견을 반영한다. 진실은 얻기 어려운 보물이며, 쉽게 읽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경박하고중요하지않다는 편견이다. 진리는 올라야 할 산과 같아서, 위험하고 모호하며 품이 많이 든다. 도서관의 환한 불빛 아래에 학문의 좌우명은 이렇게 쓰여 있다. 읽기 힘든 책일수록 더 진리에 가깝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다. 마음이 열려있고, 명쾌하고, 예측 가능하고 시간을 잘 지키는 애인보다는 힘들게 하는 애인이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page 195

 

그 남자가 찾아낸 애인은 늘 냉소적이었다. 그들은 책임을 지기 싫어했고, 적극적으로 자기 잘못을 찾아내지 않았다 - 반면 앨리스는 그 남자가 변덕을 부려도 비위를 맞추려는 자기 패배적인 성향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받았다.

그 남자는 무방비적으로 사랑하는 그녀의 방식이 두려웠다.

 

                                                                                                                                    page 199

 

궁극적으로, 오로지 앨리스는 잃어버리면 자신이 존재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사랑받고 싶었다. 그녀에게서 빼버릴 수 없는 요소때문에 사랑받고 싶었다.

 

                                                                                                                                    page 224

 

사랑의 동기 중 덧없는 요소를 다 뺏을 때, 앨리스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육체와 지성과 가진 것들을 제하니, 어떤 사랑할 이유가 남았을까?

데카르트처럼 별로 남는 게 없었다.

그녀에게는 순수한 의식, 순수한 자신,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남았다.

 

                                                                                                                                    page 227

 

몽테뉴는 수상록의 '고독에 관해'란 부분에서 이렇게 썼다.

'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에게, 어떤 사람이 여행을 하고도 전혀 성숙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발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데려갔거든요.' ' 같은 글에서 호라티우스는 물었다.

 

왜 우리는 찾아다니나,

다른 나라와 기후를?

어떤 추방자가 자신을 뒤에 남기고 떠날까?

 

                                                                                                                                     page 290

 

누구와 사귈 때 , 사람만 달랑 올 수가 없다 -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문화가 따라오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관습이 따라온다. 특정한 지역성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함께 온다. 이러한 성향은 민족성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계층과 지역과 집안의 특성이 뒤섞여 구성된다.

 

                                                                                                                                     page 298

 

 

행복은 배타적이지만 불행은 끌어안는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표정이 아니라 불행한 표정을 짓고, 명랑함에 수반되는 독립심, 고통에 대한 무감각을 피할 일이다. 불행을 추구하는 일은, 만족한 표정에 함유된 경쟁심을 피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page 336

 

 

 

 

알랭 드 보통

 

 알랭드 보통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 능통하다. 알랭 드 보통은 스물세 살에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책들은 현재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2003년 2월에 드 보통은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명예인 예술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슈발리에 드 로드르 데자르 에 레트르」라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츠베탕 토도로프, 로베르토 칼라소, 티모시 가튼 애쉬, 장 스타로뱅스키 등과 같이 유럽 전역의 뛰어난 문장가에게 수여되는 「샤를르 베이옹 유럽 에세이 상」을 수상했다.그는 자신의 작품 내용에 바탕을 둔 TV 다큐멘터리 제작에 오랫동안 관여해왔다. 『프루스트는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꿨나』는 BBC 영화제작팀에서 랄프 파인즈와 펠리시티 켄들을 주연으로 하여 제작됐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영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동시에 영국에서 「철학: 행복으로의 안내」라는 제목으로 6부작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영됐다.그의 대표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놀랍도록 기이한 첫 만남에서부터 점차 시들해지고 서로를 더이상 운명으로 느끼지 않게 되는 이별까지, 연애에 대한 남녀의 심리와 그 메카니즘이 철학적 사유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기술되어 있는 작품이다. 알랭 드 보통은 미국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 20대의 재기와 30대의 깊이가 뛰어난 조화를 이룬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로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새로운 글쓰기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은 전기 형식으로 문학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저자 특유의 유머와 상상력으로 버무린 인생학 개론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