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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살 넘은 한옥의 유쾌한 변신기- 건축가 양지우의 온고지신 서촌 하우스

다연바람숲 2015. 3. 22. 12:23

100살 넘은 한옥의 유쾌한 변신기

건축가 양지우의 온고지신 서촌 하우스

서울 한복판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동네, 종로구 누하동. 켜켜이 쌓인 세월의 먼지를 털고 말끔하게 단장한 옛집이 있다. 쓸모 있게 리모델링한 한옥과 위압적이지 않은 2층 양옥은 시간의 흐름에 맞게 모양새를 바꾸며 하나의 집이 되었다. 건축가 양지우 소장이 가족을 위해 고친 특별한 공간 소개

 

 

 

 

 

다이닝 룸과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거실. 서까래 천장 아래 청록색의 가죽 소파, 이국적인 패턴의 카펫이 근사하게 어우러진다. 고재 테이블은 부모님이 신혼 시절 구입해 수십 년 사용해온 가구라서 더욱 특별하다.

재미있는 공존, 새로운 대안

번잡한 도심에서 단지 몇 걸음 비켜났을 뿐인데, 서촌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듯하다. 절로 걸음이 느려지고 빈틈없던 마음에 쉼이 깃드는 기분이랄까. 서울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이방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모두가 희망하는 삶의 모습이 이곳에 펼쳐지기 때문인 듯하다. 최근에는 급속한 변화의 바람으로 몸살도 앓지만, 서촌은 그 새로움마저 서촌다움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대문에서 들어와 바라본 모습으로 ㄷ자에 가까운 한옥과 현대식 건물이 나란히 서 있다. 서너 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마당이다.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아기자기한 서촌의 골목 안쪽, 사이좋게 나란히 선 한옥과 현대식 2층 건물의 별난 공존도 그와 다르지 않다. 움UM 건축사사무소 양지우 소장은 1백 살이 넘은 한옥을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의 생활을 고려한 공간으로 바꾸었다. 먼저 한옥 옆 낡은 이층집은 사무 공간이자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한옥과 2층 건물 사이로는 아늑한 마당과 화단이 펼쳐진다. 대문에서 좁은 통로를 지나 펼쳐지는 이 묘한 광경은 처음에는 생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한옥에는 양 소장의 부모님과 여동생이 살고, 2층 건물에는 자신의 건축 스튜디오가 자리한다. 전통과 현대, 한옥과 양옥, 주거와 사무 공간, 부모의 집과 아들의 직장…. 이곳에는 공존과 조화의 묘미를 살리려는 건축가의 고민과 영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 안방에서 바라본 양옥 전경. 1층은 전시 공간, 2층은 양 소장의 스튜디오, 그리고 옥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옥은 고강도 유리와 얇은 막대 형태의 메탈 소재로 마감해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답답함을 줄였다.
2. 다닥다닥 붙어 있던 도시의 골목길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한옥의 벽과 옆집 담 사이의 좁은 통로가 집 안팎을 연결하는 길이다. 잔디와 벽면을 타고 오르는 식물 덕에 작은 오솔길 같다.


이 집을 처음 본 2010년 당시, 1890~1900년경에 지은 한옥과 1950년대에 지은 양옥 등 시대별로 건축물이 뒤섞여 있는 점이 양 소장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양옥이 있어서 공간 활용 면이나 장단점을 서로 보완하며 다양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신혼집으로 고쳐 쓸 애초의 계획이 수정되어 결과적으로 한옥에서 살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터전이 되었다. 가족은 20여 년을 일본에서 살았고 이사 전에는 주택에서 살았던 영향 때문인지, 낡고 독특한 구조의 옛집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3. 현관 옆 여동생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 유일하게 화이트 도장이 아닌 거친 질감의 마감재를 적용한 벽면 처리가 인상적이다. 그림과 소가구로 갤러리처럼 꾸몄다.
4. 모던하고 컬러감이 강한 가구를 한옥에 매치한 감각이 돋보인다. 내부 마감처럼 가구도 심플한 디자인으로 골랐다.


“일본의 다양한 주택을 보고 자랐고, 유학 갔던 이탈리아에서는 집 마당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되었어요. 이 집을 손볼 때 그 시절 받은 영향이 영감으로 작용했지요.”
   

양옥 옥상에서 내려다본 집. 오목하게 자리 잡은 한옥의 정겨운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1. 마당을 바라볼 수 있는 다이닝 룸. 튼튼한 목재와 플라스틱 소재의 루이 고스트 체어, 샹들리에 등 상반되는 아이템들의 믹스 매치가 공간에 개성과 화려함을 준다.
2. 일자형 주방에 반전 수납력이 있는 붙박이장을 병렬형으로 설치했다. 많은 살림살이를 정리 정돈하기 수월하도록 배려한 디자인이다. 붙박이장의 위쪽 공간도 수납에 활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3. 좁은 복도를 지나면 욕실과 파우더 룸, 침실로 꾸며진 여동생 공간이 나온다. 미닫이문을 달고 깔끔한 화이트 컬러로 마감해 미니멀한 공간을 연출했다.

신축을 방불케 한 대대적인 옛 한옥 리모델링

1백 년이 넘은 한옥은 뼈대만 남긴 채 대수선을 거쳤다. 기둥마다 밑이 썩어 보강하고, 주방 위치를 바꾸는 등 전반적인 레이아웃의 변화가 생겼다.

“한옥은 대체적으로 공간의 폭이 좁아서 신중하게 고심해서 평면을 짜야 해요. 그나마 이 집은 폭이 넓은 편이지만 침실과 주방 등 적당한 규모의 생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구조를 바꿨어요. 한국인은 무조건 큰 공간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은데, 생활은 그리 큰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주로 TV 시청만 하는 거실보다 마당을 넓히고 수납에 신경 쓰는 편이 삶의 여유를 만들어줍니다. 주택은 아파트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해요.”
   

전통 가옥의 서까래와 보, 기둥이 인상적인 공간. 거실부터 주방과 다이닝 룸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동선을 편리하게 확보했다. 마당 쪽으로는 전면 창을 시공해 채광과 환기에 신경 썼다.


양지우 소장은 좁고 불편하다는 한옥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구조 변경에 공을 들였다. 집의 중심에는 거실과 다이닝 룸, 주방이 일자형 동선으로 길게 이어지고 양 끝으로 부모님과 여동생 침실이 각각 자리한다. 대청마루를 실내 공간으로 끌어들인 다이닝 룸은 마당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억지스러운 공간 분할보다 개방적이고 유기적으로 생활공간이 이루어지게 한 것이 포인트다.

공용 욕실 대신 침실마다 별도의 욕실을 마련해 72.6㎡(약 22평)에 불과한 작은 한옥이지만 시각적으로, 심리적으로는 훨씬 넓게 다가온다. 화강석으로 시공한 마당은 30cm 정도 높여 실내 공간과 비슷하게 높이를 맞추니 집이 넓어 보이는 효과도 생겼다.
   

거실과 미닫이문으로 분리되는 부모님 침실에 편백나무로 짜 맞춘 침대를 두었다. 침실 중간의 가벽 뒤로 시스템화된 드레스 룸과 욕실이 이어져 생활하기 편리하다.

스타일과 실용성을 두루 갖춘 살기 좋은 집

양지우 소장이 평면 다음으로 공을 들인 건 수납이다. 한옥은 수납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살림살이가 많거나 가구가 들어차면 사람이 먼저가 아닌,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한옥 특성상 기성 가구를 들여놓기가 마땅찮고, 한옥과 어울리는 분위기로 매치하기도 까다롭죠. 집을 짓거나 수리할 때 붙박이 가구를 마련하면 골칫덩어리인 수납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어요.”

집안 곳곳에 붙박이장을 설치하고 서랍 달린 침대를 제작하는 등 맞춤 가구를 활용해, 집안은 늘 단정하고 쾌적하다. 거실 벽의 틈새마저도 책장으로 활용하고, 스탠드형 에어컨은 미리 위치를 고려해 설치함으로써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해 보인다. 한옥 특유의 분위기에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가미된 건 과감하게 적용한 마감재의 효과가 크다. 양지우 소장은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이력의 소유자답게 한옥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현대적인 마감재를 활용하는 묘미를 살렸다.

다른 한옥에 비해 비교적 두꺼운 천장 서까래와 보를 모두 살렸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은 화이트 컬러의 도장과 타일, 유리 같은 소재로 간결하게 마감했다. 채광과 환기를 위해 기존의 크기를 조절하거나 새로 뚫기도 했다는 창문 유리에는 한지를 붙였다. 난방 효과도 있으면서 집 안으로 스미는 햇살이 한결 은은해졌다.
   

1. 침실 가벽 뒤 파우더 룸으로 맞춤식 가구를 설치해 좁은 공간에 수납 기능을 더했다.
2. 여동생 침실 입구 쪽 커다란 창가에 붙박이 화장대와 선반을 설치, 자투리 공간까지 버리는 데 없이 활용했다.
3. 오밀조밀 기능적으로 만든 침실. 옷장 안쪽으로 배치한 침대에도 서랍이 달려 실용적이다. 에어컨은 전통 창살을 모티프로 한 가림막으로 가려 인테리어 효과도 높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한옥살이를 하며 마당을 누리는 생활을 시작한 지 4년여, 가족은 소박하고 정겨운 지금의 생활을 마음껏 즐기며 산다. 집이 가장 예뻐진다는 봄을 기다리는 온고지신 하우스. 가족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집은 또 다른 백 년의 역사를 써가는 중이다.

 

  • 기획 / 김일아 기자
    진행 / 임상범(프리랜서)
    사진 /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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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리빙센스 2015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