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다연바람숲 2014. 10. 22. 15:36

 

 

 

 

" 이 이야기에서 딱하나 이해가지가 않는 건 스탈린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는 거야."

"그렇지." 샤를이 이렇게 말하며 탁자 위에 책을 내려놓았다. " 왜냐하면 그 주위 누구도 농담이란 게 뭔지 알지 못하게 됐으니까. 나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가 도래한 거라고 봐. "

 

" 시간은 흘러가. 시간 덕분에 우선 우리는 살아 있지. 비난받고, 심판받고 한다는 말이야. 그다음 우리는 죽고, 우리를 알았던 이들과 더불어 몇 해 더 머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아주 아주 드물게 몇 사람만이 이름을 남겨 기억되지만 진정한 증인도 없고 실제 기억도 없어서 인형이 되어 버려. . . . . . . "

 

" 나 자신한테 화가 나서 그래. 나는 왜 틈만 나면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

" 괜찮아. "

" 죄책감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자기 잘못이라 고백하는 자는 패배하리라. . . . ."

 

"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 . . . 우스운 것에 대한 성찰에서 헤겔은 진정한 유머란 무한히 좋은 기분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해, 잘 들어, 그가 한 말 그대로 하는 거야, ' 무한히 좋은 기분' , unendliche Wohlgemutheit 말이지. 조롱, 풍자, 빈정거림이 아니야. 오로지 무한히 좋은 기분이라는 저 높은 곳에서만 너는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는 거라고."

 

" . . . .중요한 건 뭐든 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 "

 

" . ... . 하찮고 의미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밀란 쿤데라 < 무의미의 축제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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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는 말한다.

삶은 무의미의 축제라고,

우리가 하찮고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존재의 본질이며 그걸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만이 지혜의 열쇠이며 좋은 삶, 의미있는 삶을 여는 열쇠라고.

 

소설 무의미의 축제는, 퇴직했거나 현역이거나 어느 정도 연륜의 삶을 살아 온 중년의 남자들. . ,알랭, 라몽, 샤를, 칼리방 네 친구의 대화와 일상의 이야기들로 이어진다.

 

그들은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않는 시대, 농담이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스탈린의 일화를 들어 뒤집고 반박하고, 소설이면서도 철학적인, 딱히 줄거리가 없는 듯한 그들의 이야기는 질문과 대화와 공상으로 이어지면서 삶이란 무겁고 의미있는 것이 아닌 가볍고 무의미한 것들로 채워진 것이라고 독자들을 설득한다.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은 무의미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 내게 절박하고 죽을만큼 고통스럽고 삶을 송두리째 뒤집을만큼 엄청난 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의미없고 깃털 하나의 무게도 되지않을만큼 사소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

세상은 그런 보잘것 없는 일들로 오늘을 이루어가고 시간은 흘러가고 역사는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한다는 것,

지금이라고 말하는 시간도 어느 날엔 나와 함께 아무것도 아닌 무, 기억의 소멸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고,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않는 것 뿐.

 

총 149 쪽,

책은 가볍지만 깊이만큼은 무거운 책.

 

밀란 쿤데라는 말한다.

무의미한 의미, 거짓말 같은 농담, 축제같은 삶. . .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그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인정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사랑하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