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4월 / 심보선

다연바람숲 2012. 4. 2. 20:48

 

 

 

4월심보선 

 

 

  

  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지의 별빛과

  제국 빌딩의 녹슨 첨탑과

  꽃눈 그렁그렁한 목련 가지를

  창밖으로 내민 손가락이 번갈아가며 어루만지던 봄날에

 

  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손가락 외에는 아무것도 어루만지지 않던 봄날에

 

  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

  너의 소식은 1월과 3월 사이의 침묵을 물수제비뜨며 왔다

  너의 소식은 4월에 마지막으로 왔다

  5월에도 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6월에도 천사가 위로차 내 방을 방문했다가

  "내 차라리 악마가 되고 말지" 하고 고개를 흔들며 떠났다

  심리상담사가 "오늘은 어때요?" 물으면 나는 양미간을 찌푸렸고

  그러면 그녀는 아주 무서운 문장들을 노트 위에 적었다

 

  나는 너의 소식을……

  물론 7월에도……

  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

  너의 소식은 4월에 마지막으로 왔다

 

  8월에는 어깻죽지에서 날개가 돋았고

  9월에는 그것이 상수리나무만큼 커져서 밤에 나는 그 아래서 잠들곤 했다

  10월에 나는 옥상에서 뛰어 날아올랐고

  11월에는 화성과 목성을 거쳐 토성에 도착했다

 

  우주의 툇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저 멀리 지구를 바라보니

  내가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이 늙은 개처럼 엎드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2월에 나는 돌아왔다

  그때 나는 달력에 없는 뜨거운 겨울을 데리고 돌아왔다

 

  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

  4월은 마지막 달이었고 다음해의 첫번째 달이었다

  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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