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 / 김경미
1
저녁 무렵 때론 전생의 사랑이 묽게 떠오르고
지금의 내게 수련꽃 주소를 옮겨 놓은 누군가가 자꾸
울먹이고
내가 들어갈 때 나가는 당신 뒷모습이 보이고
여름 내내 소식 없던 당신, 창 없는 내 방에서 날마다
기다렸다 하고
2
위 페이지만 오려 내려 했는데 아래 페이지까지 함께 베이고
나뭇잎과 뱀그물, 뱀그물과 거미줄, 거미줄과 눈동자, 혹은 구름과 모래들, 서로 무늬를 빚지거나 기대듯
지독한 배신밖에는 때로 사랑 지킬 방법이 없고
3
그러므로 당신을 버린 나와
나를 버린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청순하고 가련하고
늘 죽어 있는 세상을 흔드는 인기척에 놀라 저만치
달아나는 백일홍의 저녁과
아주 많이 다시 태어나도 죽은 척 내게로 와 겹치는
당신의 무릎이 또한 그러하고
*
‘겹’은 전생의 사랑과 현생의 사랑이 포개져 생긴 겹이고, 그의 몸과 나의 몸이 포개져 생긴 겹이다. 이렇듯 ‘겹’은 몸의 겹침이 먼저겠지만, 그 겹은 몸을 넘어서서 몸 아닌 것의 겹침을 불러 들인다. 사랑은 몸의 겹침이며 동시에 몸을 버린 마음의 겹침이다. 열애에 빠진 연인들은 몸과 몸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포개 겹치려고 한다. 연인들은 볼과 볼을 비비며 겹치고, 입술과 입술을 마주쳐 겹친다. 애무는 몸과 몸의 겹침이고, 몸이 만든 욕망과 욕망의 겹침이다.
사랑은 그 겹침을 욕망을 넘어서서 마음의 겹침으로 진화하도록 한다. 이 시 〈겹〉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진화하기를 멈춘, 끝나버린, 그래서 아픈 사랑이다. 그 아픔은 “지독한 배신밖에는 사랑 지킬 방법이 없고”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버리고 뒤돌아섬으로써 그 사랑을 끝내 지키려는, 지독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버린 나와 / 나를 버린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청순하고 가련하고”에 따르자면 이 겹은 어긋난 겹이다. 이 어긋남은 애초의 의도와 기대를 배반한다. 어긋남으로 인해 기획이나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 이를테면 “위 페이지만 오려 내려 했는데 아래 페이지까지 함께 베이고”와 같은 상황이 그렇다. 대개의 사랑은 의도와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랑은 의도하지 않는데 오고, 더 많은 사랑은 기대와 다른 곳에서 시작한다. 보라, “내가 들어갈 때 나가는 당신 뒷모습이 보이고 / 여름 내내 소식 없던 당신, 창 없는 내 방에서 날마다 / 기다렸다 하고”라는 구절을. 내가 들어갈 때 당신은 나가고, 내가 나갈 때 당신은 들어온다. 내가 없는 저곳에서 당신은 하염없이 기다리니, 내가 있는 이곳에 당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 엇갈림! 그래서 사랑은 맥락 없음과 혼선과 오류투성이고, 미몽(迷夢)이라고밖엔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인기척에 놀라 저만치 달아나는 백일홍의 저녁”은 관능의 열락으로 몸이 불꽃같던 저녁이었거나, 누군가를 기다림으로 그 관능적 열락에의 기대만으로도 황홀했던 저녁이었음을 암시한다. 백일홍은 백일 동안 그 붉음을 잃지 않는다는 뜻과 백일을 기다려 만개하는 꽃이라는 중의(衆意)를 갖는다. 백일홍은 불의 원소를 가진 불의 꽃답게 타오르는 몸의 사랑, 그 성적 몽상을 불러일으키는 꽃이다.
붉은 빛을 의기양양하게 뿜어내는 백일홍은 사랑의 현전(現前)에 대한 강력한 은유다. 서정주는 〈백일홍 필 무렵〉에서 “칠월이어서 보름나마 굶어서 / 백일홍이 피어서 / 밥상 받은 아이같이 너무 좋아서 / 비석 옆에 잠시 서서 웃고 있었지”라는 구절이 얼른 떠오른다. 보름나마 굶은 아이가 밥상을 받고 웃는 웃음이 어떻겠는가! 사실은 굶은 것은 아이가 아니다. 백일홍 핀 것을 보고 웃으며 비석 옆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사람이 바로 보름나마 사랑에 굶주렸던 것이다. 이 사람은 붉은 백일홍같이 성적인 열락에의 갈망과 그 열락이 가져올 환희에 대한 기대에 휩싸여 설레는 사람이다. 그 백일홍의 저녁은 저만치 달아나 버려 이미 과거지사가 되어 버렸다. 그 저녁은 붉은 꽃을 피운 백일홍의 기쁨을 가져다 주던 그 사람이 지금 여기에 없어서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만 허무하고 쓸쓸한 저녁이다.
이 사랑이 “청순하고 가련”해진 것은 어긋났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한편으로 흔적만 남기고 지나간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내상(內傷)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다. 헛디딘 발이 허방에서 잠시 아찔할 때와 마찬가지로 〈겹〉은 어긋난 사랑과 그 상처를 핥고 가여워하는 시다. 그 가여움 때문에 “아주 많이 다시 태어나도 죽은 척 내게로 와 겹치는 / 당신의 무릎”에 몸과 마음을 내주는 것이 아닐까. 그게 다정이다. “당신은 세상 몰래 죽도록 다정하겠다, 매일 맹세하죠. 거짓말이죠. 세상 몰래가 아니라 세상 뭐라든이 맞죠. 아시죠. 이것도 거짓말. 사실은 매일이 아니고 매시간이죠.”(〈다정이 병인 양〉) 사랑은 서로를 다정으로 끌어안는 것이다.
사람들 몰래가 아니라 사람들 뭐라고 하든 당당하게. 매일이 아니고 매시간 하염없이. 그 당당하게와 하염없음도 끌어안을 그 사람이 없다면, 허공을 가르는 복서의 주먹처럼 무용한 정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글 : 장석주 시인 <詩와 詩人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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