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순수 - 비우는말

[스크랩] 기다림, 사랑의 다른 이름 / 진은영

다연바람숲 2010. 10. 20. 01:10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나는 기다린다. 이 느낌을 당신에게 전할 한 줄의 문장이 내게 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롤랑 바르트의 글들을 생각한다.


기다림은 하나의 주문(呪文)이다. 나는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화를 기다린다는 것은 하찮은, 무한히 고백하기조차도 어려운 금지사항들로 짜여 있다. 나는 방에서 나갈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전화를 걸 수도(통화중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없다. 그래서 누군가 전화를 해오면 괴로워하고 (똑같은 이유로 해서) 외출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그 자비로운 부름을… 놓칠까 봐 …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든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 기다리게 하는 것, 그것은 모든 권력의 변함없는 특권이요, 인류의 오래된 소일거리이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중에서


나는 그의 문장들을 베껴 쓰며 기다리고 기다린다. 날카롭게 빛나고 명징하게 아름다운 언어며 詩들이 내게 오기를 꿈꾼다. 그것이, 그 사람이 오긴 오는 것일까? 나는 점점 시들어가는 꽃을 쥐고 그가 오기로 한 쪽을 향해 목을 길게 빼는 소녀처럼 기다린다. 사랑에 빠진 이여, 당신도 지금 기다리고 있는가?




 

 

출처 : 정자나무 그늘 아래
글쓴이 : 바람숲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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