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감성 - 통하는문

화가의 아내 - Egon Schiele

다연바람숲 2011. 8. 20. 14:55

 

                                       

                                                                에곤 쉴레 (Egon Schiele, 1890-1918), <화가의 아내>, 1918년

 

 

에곤 쉴레는 오스트리아의 화가로, 관능적이며 유혹적인 여인을 그린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클림트가 장식적이며 부드러운 표현을 즐긴 반면, 쉴레는 삶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듯한 절규에 가까운 인물상을 그려냈다. 이처럼 클림트와 쉴레는 각자의 개성대로 성(性)에 대한 위선과 허위를 파헤쳐 거침없이 그려나갔는데, 이들이 주도한 미술운동을 빈 분리파(Wien Sezession)라고 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t Fleud, 1856-1939)가 이들의 사상적 기반이었다.

쉴레는 1911년 그의 애인이자 작품의 모델이었던 발레리라는 여인와 함께 빈을 떠나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1912년 빈에 정착하였는데, 그 해 도색적인 누드를 전시했다는 혐의로 감방에 갇히기도 하였다. 이후 유럽에서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 이듬해 쉴레는 오랜 연인이었던 발레리와 헤어지고 에디트란 여인을 만나게 된다.

에디트는 순진한 처녀였는데, 쉴레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 같다. 에디트는 집안의 반대를 무릎 쓰고 1915년, 화가 쉴레와 결혼하였다. 쉴레는 결혼 직후 전쟁에 사병으로 참여했으나 파견대로 귀속되어 가정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 그림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그는 군에서 군인들을 스케치하였고, 화가로서 경력을 쌓아나갔으며 점차 클림트의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 최고의 젊은 작가의 자리를 차지해나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1917년에 그린 것을 1918년에 완성한 에디트의 초상이다. 이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장식적인 효과를 배제하고 에디트라는 인물 표현에 주력하였다. 완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스트리아 당국에서 거금을 주고 구입하였다고 전하는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걸작 중 하나이다.

강렬한 선들 혹은 색면을 사용하여 관능적 격정을 드러내던 이 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잔잔한 붓터치로 여인의 모습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드러내었다. 특히 얼굴 표정의 묘사는 1915년 결혼할 당시에 그린 청순한 모습과는 달리 세월의 깊이가 묻어있는 듯 하다. 또한 뛰어난 데생 작품이나 수채, 과슈로 그린 스케치와는 달리 배경까지 채색으로 메워 완성해낸 것 또한 특징적이다. 이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쉴레는 에디트와 비교적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였던 것 같고, 그러한 생활이 초기의 격정적이며 신경질적인 쉴레의 붓터치들을 부드럽고 온화하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전의 쉴레 작품에서는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 인간의 이면을 탐구하기 위한 겉모습과 위선, 성에 대한 호기심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으나 아내를 그린 이 작품에서는 보다 따스한 인간애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를 완성한 그 해에 임신 중이던 그의 아내가 당시 전염병이었던 인플루엔자로 사망하고, 곧바로 쉴레 또한 같은 병으로 운명을 달리하였다.

28년 간의 짧은 인생을 마감한 쉴레에 관해서는 사후에 보다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그의 삶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쉴레의 삶은 하나의 비극적인 전설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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