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못지않게 삶이 주목을 받는 화가가 바로 고흐일 것이다. 그만큼 그의 삶은 예술만큼이나 극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고흐가 죽음으로 치달아가던 그 시기에 대한 기록들은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고흐가 무엇 때문에 귀를 자르는 문제의 사건을 일으킨 것인지, 여전히 정확하게 알려진 사실이 없다.
고흐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까마귀 나는 밀밭]이라는 걸작을 둘러싼 설왕설래도 마찬가지이다. 대체로 이 그림은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정황으로 봐도 이 그림을 그리다가 고흐가 자살에 이른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데, 빈센트 자신이 1890년 7월 10일 경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동생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참기 힘들다는 내용과 함께 “불안한 하늘 아래 펼쳐진 거대한 밀밭”을 담은 그림 3점을 그렸다고 전했던 것이다. 고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명료한 정신으로 극도의 슬픔과 고독을 표현하고자 노력했어. 곧 볼 수 있을 거야. 가능한 빨리 파리에 가져가려고 생각하니까 말이야. 나는 이 그림들이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내가 시골에서 얼마나 건강하고 활기에 차 있는지를 말해주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야.
이 진술에서도 고흐의 마음이 여전히 상반된 감정상태를 오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까마귀 나는 밀밭]이 “극도의 슬픔과 고독을 표현”했다고 말하는 한편으로 이 그림을 보면 자신이 지금 “얼마나 건강하고 활기에 차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이다. 고흐가 이 편지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슬픔과 고독을 이제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자신감이지만, 얼마 뒤에 실행한 자살을 염두에 둔다면, 이 편지에서 교차하는 감정의 굴곡은 범상한 것이 아니라고 하겠다.
죽음이라는 막다른 상황에 내몰린 고흐
어쨌든 이 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까마귀 나는 밀밭]은 자살 직전에 고흐가 그린 그림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신 어떤 역사가들은 [세 개의 뿌리]라는 작품을 생애 최후의 작품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이 또한 그냥 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고흐의 마지막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다만 그가 남겨 놓고 간 작품들을 토대로 여러 가지로 추측을 해보는 것이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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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뿌리] 1890년 캔버스에 유채, 50cmx100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
[오베르 부근의 풍경] 1890년 캔버스에 유채, 65cmx50cm, 개인소장 |
그러나 [까마귀 나는 밀밭]은 최후의 작품은 아니라고 해도 죽음이라는 막다른 상황에 내몰린 고흐의 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낮게 깔린 음울한 하늘빛은 희망을 찾을 수 없이 억눌린 고흐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고, 세 갈래로 나눠진 길은 그 무엇도 결정할 수 없는 딜레마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밀밭 위를 어지럽게 날아가는 까마귀는 궁극적으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삶의 곤경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해석은 자유이지만, 마냥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어두운 기운이 이 그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빈센트는 죽기 얼마 전인 1890년 7월 24일 경에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갱의 브르타뉴 작품에 대해 “정말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는데,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여전히 고갱과 함께 했던 아를의 시간들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그에게 고갱은 그냥 동료 화가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고갱은 고흐의 미래를 의미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 편지에서 고흐는 “나는 지금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면서, “내가 너무 좋아하고 숭배하는 화가들처럼 훌륭한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고흐의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암시를 포함하고 있다. 오베르에서 고흐가 느낀 것은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는 화가들의 처지”일 뿐이었다. | |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한 밀밭] 1890년
캔버스에 유채, 50.5cmx103cm, 반 고흐 미술관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다
그는 더 이상 삶의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한때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고갱과 함께 화가 공동체를 꾸려보고자 했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마지막 편지에서 고흐는 “공동체의 유용함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할 시기가 이제 지나버린 것 같다”고 테오에게 말한다. 고흐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를 이 진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편지를 쓰고 나서 3일 뒤, 그러니까 7월 27일에 고흐는 자신의 가슴을 총으로 쏘고 숙소로 돌아와서 이틀 뒤인 29일 새벽에 숨을 거둔다. 회복할 수 없는 짙은 절망이 고흐를 짓눌렀다는 사실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다. 마지막 편지에서 고흐는 인상주의를 위한 화상들이 연대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표명하면서 화가 공동체에 대해 발의했다가 헛물만 킨 꼴이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서 “그런 경험을 맛본 자”가 다시 그것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마리를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까마귀 나는 밀밭]은 비록 마지막 작품은 아니지만, 그 마지막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한 화가의 운명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영화 같은 장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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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택광 / 문화비평가, 경희대 영미문화과 교수
- 부산에서 자랐다.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문화연구에 흥미를 느끼고 영국으로 건너가 워릭대학교에서 철학석사학위를, 셰필드대학교에서 문화이론을 전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21>에 글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시각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치사회문제를 해명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Bridgeman Art Library, Wikipedia, York Project
출처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미술>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5157&path=|185|200|255|&leafId=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