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속의 함정 / 김상미
갑자기 유년의 뜨락이 그리워져 앨범을 뒤지는 건 함정입니다.
지나간 시간에 새 옷을 입혀 함께 외출하는 것도 함정입니다.
책꽂이에 꽂힌 당신의 시집을 빼내 읽지도 않고 다시 꽂는 것도 함정입니다.
루이 암스트롱의 목소리에 마음이 울컥해져 창문을 활짝 여는 것도 함정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실망했다고 말할 때마다 먹은 나이를 게워 내는 것도 함정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읽으면서도 모르는 척 침묵하는 것도 함정입니다.
들어줄 귀가 없고, 보아줄 눈이 없고, 품어줄 가슴이 없다면 아무도 사귀지 마십시오.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함정입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도 당신의 정신적 고통은 결코 함께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슬픔만을 조금 나눠 가질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보다 더 많은 걸 요구하는 건 함정입니다.
당신의 마음에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도 함정입니다.
함정인 줄 알면서 그곳에 아낌없이 뇌를 빠뜨리는 것도 함정입니다.
함정들로 가득 찬 당신 머리 속 서재에 앉아 좌절한 펜으로 쓰는
사랑과 미움, 파멸의 서(書) 또한 함정입니다.
그렇게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그 꽃잎 위에 앉아 있습니다.
함정 속의 함정! 그 외 달리 무엇을 꽃다운 인생이라 부르겠습니까?
천변지이(天變地異)가 모두 그 꽃잎 하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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