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꽃, 위하여 / 황학주

다연바람숲 2010. 9. 26. 14:47

 

 

 

 

꽃, 위하여 / 황학주




입 다물어지지 않는 올리브 숲을 두 바다째 걸었다
하긴 어디 가서 올리브나무만 있다고 삶이 되리
널 사랑해서 어두워져 가는 세상이 건너지랴,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날아가면서 싼 새똥처럼 빗방울이 머리에 떨어질 때
잠깐 돌아서니 내 뒤가 정말 슬펐다
이제 옛날을 보여줄 수 없는 사랑이 오고 말았다
올려다보니 성좌 쪽에 탁구공 같은 영혼들이 떠 있고
한때의 유성들은 올리브나무 사이를 굴러 검은 열매를 달고 있다

며칠 동안 파도에 뛰어든 별들의 냄새가 다 밀려 올라오는 해안
여기쯤에서 길을 막고 나를 놓을 때가 있어야 하지
썰물이 붉은 뼈 다 보이는 절벽을 내다 놓듯
첫사랑을 가장 뒤에 만났으니, 사랑이
죽고 없는 것도 천연스레 살릴 때가 있을 것이다

사랑 때문에 죽은 물인 돌들이 깔려 있고
돌 아닌 줄 아는 물들이 한층 출렁인다
그래 사랑은 한두 개 허리를 가지고 산 게 아니었다
거의는 죽어서도 몸을 주러 밀려오길 원하니

사랑만이 꽃인 가을이다
물가 절벽에 위태로이 대궁을 키운 내게 네가 있다고
누가 믿지도 않겠지만

꽃,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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