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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구와는 다른 매력, 고재가구 쇼핑기

다연바람숲 2011. 2. 13. 19:34

 고가구와는 다른 매력, 고재가구 쇼핑기

 

좋은 고재의 생명은 나무에 있다. 고재 가구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지만 최상의 제품은 오래된 한옥에서 뜯어낸 우리 고재를 사용해 만든 가구. 수백년 동안 세월의 손때가 묻어 자연스럽게 드러난 질감과 고풍스러움에 빠져 고재 가구로 공간을 꾸민 마니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안’이라는 근사한 본명을 두고 ‘앉은뱅이 책상’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이 고재 가구는 좌식 서재에 두고 책도 올려놓고 서랍 안에 필기구 등을 정리할 요량으로 제작되었다. 제 용도로는 사용 빈도가 워낙 낮아 안방과 작은방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 두고 장식장 겸 수납장으로 쓰고 있는데, 나지막한 게 집 안 분위기를 차분하게 정리해 준다. 옛날 선반이나 책장에 쓰였던 춘향목을 떼어 만든 것. 예나무

 

고가구와 고재 가구의 차이점
고가구와 고재 가구의 차이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무로 만든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가구 마니아들의 입장에서 볼 때 고가구와 고재 가구는 종류가 다르다. ‘앤티크’라고도 불리는 고가구는 대를 이어 물려받은 가구나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오던 가구를 말한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머릿장이나,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돈궤 등이 바로 고가구.

 

반면 고재 가구는 오래된 고재목을 이용해 만든 가구를 말하는데, 중국 고재를 수입해 만든 가구도 고재 가구이기는 하지만 가장 최고는 오래된 한옥에서 뜯어낸 고재로 만든 가구이다. 고재 차제는 오래 되었지만 가구는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미하거나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제작이 가능한 것이 고재 가구의 특징. 가구로 만들 수 있는 고재 중에서는 뒤틀림이나 벌레가 슬지 않 고 향이 좋아서 양반가의 한옥을 지을 때 많이 썼던 ‘춘향목’이 가장 좋은 재료라고 할 수 있으며, 구멍이 숭숭 뚫리고 흠이 너무 많은 나무는 ‘좋은 고재’가 아니다.

 

 

1_좌식 서재의 사방 책장. 더 많은 책을 꽂기 위해 기존의 형태에서 양 옆을 조금씩 늘렸다. 포인트는 좌식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낮게 만든 것. 이 고재 역시 손 대표가 안동에서 공수한 것이다.
2_어릴 적 대청마루에서 잠들던 기억을 떠올리며 제작을 의뢰했던 침대. 겨울에는 도톰한 보료를 깔 계획이었지만 전체적인 집 안의 분위기를 고려해 두께가 있는 매트리스를 선택했다. 침대 옆에는 협탁을 놓는 대신 화장대 역할을 하는 거울을 두었다.

 

고재 가구가 맺어준 아주 특별한 인연_진근수·김순희 부부
안동의 유명한 종갓집 딸인 김순희씨의 유년에 대한 기억 속에는 늘 한옥이 함께한다. 천생배필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서울에 정착하게 되면서 현대식 가구에 적응하려고 했지만 마루 있는 집에 대한 향수는 어쩔 수 없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현대 가구에 묻어 있는 화학 성분에 바로 반응하는 피부 알레르기. 이런 아내를 안타까워하던 남편 진근수씨는 틈날 때마다 그녀와 함께 전국을 누비며 고재 가구를 찾기 시작했다.

 

남들 눈에는 다 같은 고재로 보일 수 있지만 관리가 잘 된 사대부가의 한옥에서 20년 넘게 살았던 순희씨 마음에 쏙 드는 제대로 된 고재 가구 찾기란 쉽지 않았다. 외형만 그럴 듯 갖춰 놓은 것, 디자인과 정성이 결여된 것, 나무의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가구에 실망하기를 수십 번. 포기할 때쯤 만난 사람이 바로 예나무의 손건우 대표였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가구의 크기와 용도를 말했을 뿐인데, 손대표는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기막히게 진짜 고재를 골라냈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안목 또한 탁월했다.

 

김순희씨가 자신의 고향에서 나온 고재로 집 안을 꾸미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는 직접 안동 구석구석을 누비며 헐린 한옥을 찾아다닌 것도 손 대표였다. 이들 부부는 3년에 걸쳐 아파트 곳곳을 한옥처럼 손보았고, 2~3점의 고가구를 제외하고는 집 안 모든 가구는 고재로 바뀌었다. 그 후 거짓말처럼 그녀의 피부병이 사라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편은 아내만큼 고재 가구 마니아가 되었으며 손님과 주인으로 만난 이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의형제가 되었다.

 

 

1_양반집 대청마루를 뜯어낸 고재에 철제 다리를 연결해 서재 책상을 완성했다. 철제 다리를 맞출 때에는 청계천 인근의 철공소가 시중보다 30~40% 정도 저렴하다.
2_오래 전에 장한평 가구거리에서 구입한 고재 떡판에 기둥을 세워 거실 테이블을 만들었다.

 

고재 마니아, 시골 장터에서 보물을 만나다_ 한희숙(서양화가)
부암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아담한 주택. 한희숙씨는 2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방문, 책장, 침대에 이르기까지 직접 색을 칠하고 장식 타일을 붙이면서 공을 들였다. 심지어 가구까지 직접 만든다는 그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재료는 ‘고재’. 거실의 선반은 물론, 오브제를 모아 놓은 장식장, 아들 방의 책장까지 모두 고재에 철골 다리를 달거나 기둥을 세워 만들었다.

 

한희숙씨의 남편 역시 고재 마니아이기 때문에 부부는 좋은 고재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전국 어디라도 간다. 예전에 비해서 가격은 비싸지고 물건은 믿을 수 없어진 황학동 풍물시장을 찾는 대신 부부가 찾는 곳은 시골 장터나 작은 지방의 골동품 상가. 서재에 있는 책상의 재료가 된 고재도 널따란 양반집 한옥 대청마루를 뜯어낸 것으로 서울 근교를 지나다 운 좋게 12만원에 구입한 것이라고.

 

사실 일반인이 좋은 고재를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은데, 좋은 고재는 시간이 흘러도 변형이 없으니 나무를 뒤집어 봐서 뒤틀림이 시작되었는지, 벌레 슬은 구멍이 지나치게 많지는 않은지를 꼭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 고재 마니아 한희숙씨의 조언이다.

 

 

1_테이블로 쓰려던 한옥 대청마루를 뜯어낸 고재를 바닥에 깔아 다도를 즐길 수 있는 좌식 공간으로 꾸몄다. 일주일에 1~2번 정도 마른 걸레에 올리브 오일을 묻혀 닦아주는 것이 고재를 윤기 있게 관리하는 팁.
2_거실 테이블로 사용하고 있는 제주도 절구. 유리 덮개 안쪽에는 향수 컬렉션과 가족사진을 넣어두었다.
3_진주에서 사온 떡판에 다리를 덧대어 만든 책상과 지인이 버리려고 하는 것을 얻어와 잘 사용하고 있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재봉틀. 떡판 책상을 비롯 고재 가구는 3년에 한 번 정도 황학동에 있는 가구 공방에 보내 전체적인 점검을 받는다.

 

고재 컬렉터의 28년 쇼핑 히스토리_ 최애자(섬유작가)
경남 진주에서 사온 커다란 떡판에 다리를 덧댄 책상에서 고운 모시로 작품을 만든다는 섬유작가 최애자씨는 요즘 가구보다는 세월이 느껴지는 고재 가구에 더 정이 간다고 이야기한다. 고재 박물관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은 그녀의 집에 있는 가구 중 현대적인 것은 소파와 붙박이장 정도. 20대 때부터 고재를 수집했기 때문에 결혼할 때 혼수도 고재 가구로 통일했다.

 

25년 전, 당시 고재 가구를 많이 팔던 아현동 가구거리에서 100만원에 구입한 제주도 절구는 아직도 거실 테이블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아이템. 10년 전만 해도 괜찮은 고재 가구를 만날 수 있던 장한평 가구거리가 이제는 중국산 고재가 넘치는 곳으로 변했기 때문에, 요즘은 확실한 루트가 아니면 쇼핑을 하지 않는다.

 

현관 입구에 세워 놓은 커다란 한옥 문짝은 얼마 전에 파주에 사는 언니의 집 앞 한옥이 헐릴 때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가서 구입해 온 것으로 요즘 최애자씨의 보물 1호. 한창 바쁜 작업이 끝나면 퇴촌 입구의 가구 공방에 가지고 가서 온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차 한잔할 수 있는 좌식 테이블을 만들 예정이다.

 

 


기획_최은초롱, 이미주 사진_문덕관, 이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