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기억의 집 / 최승자
다연바람숲
2017. 5. 20. 12:22
기억의 집 / 최승자
그 많은 좌측과 우측을 돌아
나는 약속의 땅에 다다르지 못했다
도처에서 물과 바람이 새는 허공의 방에 누워
"내게 다오, 그 증오의 손길을, 복수의 꽃잎을"
노래하던 그 여자도 오래 전에 재가 되어 부스러져내렸다
그리하여, 이것은 무엇인가
내 운명인가, 나의 꿈인가
운명이란 스스로 꾸는 꿈의 다른 이름인가
기억의 집에는 늘 불안한 바람이 삐걱이고
기억의 집에는 늘 불요불급한
슬픔의 세간살이들이 넘치고
살아있음의 내 나날 위에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자세히 보면 고요하게 흔들리는 벽
더 자세히 보면 고요히 갈라지는 벽
그 속에서 소리 없이 살고 있는 이들의 그림자
혹은 긴 한숨 소리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일찍이 나 그들 중의 하나였으며
지금도 하나이지만 잠시 눈 감으면 다시 닫히는 벽
다시 갇히는 사람들
갇히는 것은 나이지만
벽의 안쪽도 벽, 벽의 바깥도 벽이지만
내가 바라보는 이 세계, 벽이 꾸는 꿈
저무는 어디선가 굶주린 그리운 노동자들이 피어나고
한 평생의 꿈이 먼 별처럼 결빙해가는 창가에서
나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나라
그 물빛 흔들리는 강가에 다다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