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의 푸른 누드 / 이성복 마티스의 푸른 누드 / 이성복 푸른빛은 정강이를 일으키고 목욕 타월처럼 머리를 감싸고 굵은 넓적다리로 가는 종아리를 가려주어도 추워, 자꾸 추워서 푸른빛은 마른 수세미처럼 여윈 팔을 발목 아래로 늘어뜨린다 닿지 않는 허방 어딘가에, 아직 식지 않은 바닥을 더듬는 듯이 ㅡ『문학사상』(2004. 1..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1.19
바쇼의 하이쿠 몇 편 이 가을엔 왜 이리 늙는가 구름에 가는 새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 (바쇼오 최후의 작품) 겨울비 오네 논의 그루터기가 검게 젖도록 이쪽 좀 보오 나도 서글프다오 저무는 가을 떠나가는 이 뒷모습 쓸쓸하다 가을 찬바람 나그네라고 이름을 불러주오 초겨울 가랑비 달구경 눈구경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1.18
상습적 자살 / 김혜순 상습적 자살 / 김혜순 사람들은 저마다 목소리 끝에 마침표를 달 듯 무덤을 달고 있다 나는 어제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 자살하는 모션을 취했다 양쪽 다리를 난간에서 떼었을 때 비명 소리가 먼저 산으로 가고 다음, 내 영혼이 뒤따라가는 것을 보았다 이제 곧 내 몸도 무덤으로 가게 되리라 사람들이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1.17
관계 , 그 출구없는 복도 / 김상미 관계 , 그 출구없는 복도 / 김상미 - 대부분의 상처는 상투적인 것에서 온다. 롤랑 바르트 그와 몸 섞었다 한 번 몸 섞기 시작하면 오, 다른 식의 관계도 있잖아요?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다는 것 알면서도 꺾여지길 원하는 장미꽃 내 몸에다 심었다 그래야만 몸에도 머리에도 똑같이 붉은 꽃 피어난다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1.16
그가 토토였던 사람 / 김언 그가 토토였던 사람 / 김언 나는 어지럽고 착한 사람 돌아보면 고귀하고 거룩하고 헛된 죽음이 따라붙는 거리 그 거리에서도 조용하고 말이 많았던 사람, 그러다가 아이는 어른이 되는 사람 가끔은 꽃이 핀다,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사람 그때는 이미 황혼이었던 사람 절망하더라도 이빨은 닦고 자..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1.15
늑대를 타고 달아난 여인 / 김승희 늑대를 타고 달아난 여인 / 김승희 나는 새로운 것이 보고 싶었다. 설거지가 끝나지 않은 역사말고. 정말 새로운 것. 설거지감 냄 새가 묻지 않은 그런 새로운 것.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마구마구 올라갔다. 투명 유리 엘리베이터 창 아래로 하늘이 마구마구 내려갔다. 믿을 수 없는 높이까지 내가 올..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1.15
슬픈 바코드 / 박진성 슬픈 바코드 / 박진성 낮은 카바이드 불빛 아래 쭈그려 앉은 여자, 느린 자전거 한 대만 쓰러져도 모두가 다칠 것 같은 밤의 시장길 모퉁이에 이마의 주름살 따라 흔들리고 있는 여자, 자기 앞의 生인 듯 또아리 틀고 있는 수대를 쭈욱 들어올린다 그때 잠깐 펴지는 이마의 주름살, 정가표도 없는 여자..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1.14
가을에 / 기형도 가을에 / 기형도 잎 진 빈 가지에 이제는 무엇이 매달려 있나. 밤이면 幽靈처럼 벌레 소리여. 네가 내 슬픔을 대신 울어줄까. 내 音聲을 만들어 줄까. 잠들지 못해 여윈 이 가슴엔 밤새 네 울음 소리에 할퀴운 자국. 홀로 된 아픔을 아는가. 우수수 떨어지는 노을에도 소스라쳐 멍든 가슴에서 주르르르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1.14
지평선 / 김혜순 지평선 / 김혜순 누가 쪼개놓았나 저 지평선 하늘과 땅이 갈라진 흔적 누가 쪼개놓았나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내 몸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저녁 상처만이 상처와 서로 스밀 수 있는가 내가 두 눈을 뜨자 닥쳐오는 저 노을 상처와 상처가 맞닿아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1.12
이파리의 식사 / 황병승 이파리의 식사 / 황병승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어요 어머니 빗소리가 좋아요 머리맡에서 검정 쌀을 씻으며 당신은 소리 없이 웃었고 그런데 참 어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잖아요 나는 두 번 잠에서 깨어났어요 창가의 제라늄이 붉은 땀을 뚝뚝 흘리는 여름 오후 안녕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