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설단비(立雪斷臂) / 김선우 입설단비(立雪斷臂) 김선우 2조(二祖) 혜가는 눈 속에서 자기 팔뚝을 잘라 바치며 달마에게 도(道) 공부 하기를 청했다는데 나는 무슨 그리 독한 비원도 이미 없고 단지 조금 고적한 아침의 그림자를 원할 뿐 아름다운 것의 슬픔을 아는 사람을 만나 밤 깊도록 겨울 숲 작은 움막에서 생나뭇가지 찢어지..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2.20
나는 네가 더 아프다 / 김상미 나는 네가 더 아프다 김상미 온몸에 구름 끼고 비 내리고 바람 부는 날은 수많은 창문들도 함께 울고, 흔들리다, 깨어진다. 그런 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균열 또한 골이 깊어 아무리 꽃다웠던 순간들도 모두 불명예가 되어 찢어진다. 온 세상 자욱한 저 검은 연기들을 보라. 책상과 창문 사이를 왔다..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2.20
무언가를 듣는 밤 / 김경미 까미유 끌로델 <뜬소문> 무언가를 듣는 밤 / 김경미 비천과 험담 그치지 않는 입을 만나고 왔다 사람이 사람 밖으로 나가는 길 있을까 적작약 백작약은 꽃색깔이 아니라 뿌리 빛깔에 따라 구별된다고 한다 누구나 항상 자기 자신을 만나며 사는 법 내 입속 먼지가 그 여자의 혀가 되고 네 변심이 내..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2.19
에덴의 동쪽 / 김상미 모네 <정원> 에덴의 동쪽 / 김상미 나는 나를 소홀히하지 않았기에 남도 소홀히하지 않았다 그러나 디디는 곳마다 생쥐투성이 세상에 생쥐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푸른 하늘, 하얀 구름 위에도 생쥐들의 세미나 생쥐들의 축제 자동차 뒷좌석에 쌓아놓은 책 위에도 여기저기 심어둔 사랑에도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2.19
목포항 / 김선우 <네이버 포토>김광석 목포항 / 김선우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짓무르고 다친 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속의 상처 덧날 때가 있다 먼 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2.17
자욱한 사랑 / 김혜순 자욱한 사랑 / 김혜순 세상에! 네 몸 속에 이토록 자욱한 눈보라! 헤집고 갈 수가 없구나 누가 가르쳐주었니? 눈송이처럼 스치는 손길 하나만으로 남의 가슴에 이토록 뜨거운 낙인 찍는 법을 세상에! 돌림병처럼 자욱한 눈보라! 이 병 걸리지 않고는 네 몸을 건너갈 수가 없겠구나 갓 세상에 태어난 어..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2.16
엄마의 뼈와 찹쌀 석 되 / 김선우 엄마의 뼈와 찹쌀 석 되 / 김선우 저 여자는 죽었다 죽은 여자의 얼굴에 生生히 살아 있는 검버섯 죽은 여자는 흰꽃무당버섯의 훌륭한 정원이 된다 죽은 여자, 딱딱하게 닫혀 있던 음부와 젖가슴이 활짝 열리며 희고 고운 가루가 흰나비 분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반짝거리는 알들 내 죽은 담에는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2.15
얼굴 / 김혜순 얼굴 / 김혜순 당신 속에는 또 하나의 당신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 속의 당신은 당신의 몸을 안으로 단단히 당겨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손톱은 안쪽으로 동그랗게 말려들고, 당신의 귓바퀴 또한 당신의 몸속으로 소용돌이치며 빨려들고 있습니다 당신 속의 당신이 당신을 당겨 잡은 그 손을 놓..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2.15
산청 여인숙 / 김선우 산청 여인숙 / 김선우 여행 마지막날 나는 무료하게 누워 흰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래된 여관이 으레 그렇듯 사랑해, 내일 떠나 따위의 낙서가 눈에 띄었다 벽과 벽이 끝나고 만나는 모서리에 빛바랜 자줏빛 얼룩, 기묘한 흥분을 느끼며 얼룩을 바라보았다 두 세계의 끝이며 시작인, 모서리를 통해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2.14
雲柱에 눕다 / 김선우 雲柱에 눕다 / 김선우 가시연꽃을 찾아 단 한번도 가시연꽃 피운 적 없는 운주사에 가네 참혹한 얼굴로 나를 맞는 불두, 오늘 나는 스물아홉살. 이십사만칠천여 시간이 나를 통과해갔지만 나의 시간은 늙은 별에 닿지 못하고 내 마음은 무르팍을 향해 종종 사기를 치네 엎어져도 무르팍이 깨지지 않는 .. 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200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