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에덴의 동쪽 / 김상미

다연바람숲 2005. 12. 19. 20:46

 

                                                                                                            모네 <정원>

 

에덴의 동쪽 / 김상미


나는 나를 소홀히하지 않았기에
남도 소홀히하지 않았다

그러나 디디는 곳마다 생쥐투성이
세상에 생쥐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푸른 하늘, 하얀 구름 위에도
생쥐들의 세미나 생쥐들의 축제
자동차 뒷좌석에 쌓아놓은 책 위에도
여기저기 심어둔 사랑에도
이 시대의 검은 낭만을 연주해대는 생쥐투성이
내 머릿속 생각들을 훔쳐 갉아먹는 생쥐투성이
미로처럼 길게 줄을 서서 모여들고 있다

마네의 선착장에도 모네의 정원에도
쇠라의 그랑자트 섬에도 오치균의 사북에도
바람은 불어오지 않고 생쥐 떼들이
태양과 달을 희롱하며 숨바꼭질하고 있다

그러나 미안하다, 생쥐들이여,
나는 언제나 너희들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주사위를 던진다

그리고 그 주사위는 슬픔도 백일몽도 아니다
생방송으로 미친 듯이 울어대는 너희들의 아첨이
눈부셔, 눈이 부셔
너희들에게서 아주 멀어진 이야기들이다
내 이야기에 너희들의 웃음을 섞지 마라
너희들이 눈물도 섞지 마라
나는 내 이야기들로 너희들에게 어떤 덫도 놓지 않았다
나는 태양과 달 아래를 달리고 달려
지금도 에덴의 동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내 발 끝에 걸린 검은 구름조각들이
너희들의 집 한가운데 켜 있는 불을 꺼뜨리고
너희들의 침대를 텅 비게 만드는 건
내가 에덴의 동쪽에서 태어나
아직도 에덴의 동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내 발자국들을 기억하겠는가?
눈을 크게 뜨고, 조심스럽게, 잡초처럼 다가오는
너희들이 아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