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올드-Vintage

빈티지 전화기

다연바람숲 2017. 2. 14. 20:40

 

 

 

 

 

 

 

전화 한다고 했으면 전화해줘.

전화를 하겠다고 하고선 전화를 못 받고 몇 시간이 지나면 나는 그대로 죽는 거 같아. 알아? 벨이 잘못 놓였나, 들었다 놔보고 혹시 벨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까봐 소리나는 일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한번은 어쨌는 줄 알어? 전화를 기다리는데 오로지 전화 벨소리를 기다리는데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냉장고 플러그를 빼 놓았지.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다른 일은 조금도 할 수가 없어. 벨이 울렸는데 네가 아니면 너무나 낙담을 해서 전화를 한 사람을 경멸하고 싶은 심정이야. 난 그래. 그렇게 되어버렸어. 난 그렇게 되어버렸지. 너에 의해 죽고 싶고 너에 의해 살고 싶게 되어버렸지.

 

- 신경숙 <깊은 슬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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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낭만이던 시절도 있었어요.

무작정 기다림이어도 설레이던 때가 있었어요.

전보나 편지 밖에는 달리 소식을 전할 수도 없던 때,

그나마 전화가 가장 빠르고 친절한 문명의 이기이던 때,

지금처럼 바로 전해지는 문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었나 바로 확인할 수 있는 sns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화하겠다는 약속만 믿고 무작정 전화만 기다리던 그런 시절도 있었어요.

 

요즘에도 어쩔 수 없는 사정때문에 여전히 전화기만 바라보는 사람이 여전히 있기도 할 것이지만요.

 

지금은 띠띠띠 버튼음도 싫어서 그조차 무음이지만,

다이얼을 돌려서 통화를 해야하던 시절엔 드르륵드르륵 다이얼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번호 하나하나 설레임과 긴장과 순간의 기다림까지 견디는 여유도 있었겠지요.

 

들고다니는 전화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였고,

화상통화는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상일 때,

그래도 사랑의 메신저이며 낭만이 되어주었던 다이얼 전화기들,

 

그래도 여전히 추억은 아름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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