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독서 - 빌리는 말

오베라는 남자 / 프레드릭 베크만

다연바람숲 2016. 12. 26. 16:56

 

 

그녀는 운명을 믿었다. 어떤 인생행로를 걷든 간에 '애초에 예정되었던 대로 가게 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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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녀에게 운명이란 '무언가'였을텐데, 그건 오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베에게 운명이란 '누군가'였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박수를 보내는 상황이었다.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댔다.

 

그녀의 여자 친구 중 하나가 왜 그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남자는 지옥 같은 불길에서 달아난다고, 하지만 오베 같은 남자는 그 안으로 뛰어든다고 대답했다.

 

"지금보다 두 배 더 날 사랑해줘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오베는 두 번 째로- 또한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가 지금껏 그녀를 사랑했던 것보다 더 그녀를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음에도.

 

'사람은 자기가 뭘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오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들이 했던 얘기였다. 그녀는 선을 위해 싸웠다.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싸웠다. 왜냐하면 그녀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아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소냐는 오베가 '세상에서 가장 융통성이 없는 남자'라며 웃곤 했다. 오베는 그걸 모욕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복되는 일상이 있어야 했고 그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그는 그게 어떻게 못된 성질머리가 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베는 사람들은 제 역할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언제나 제 역할을 했고, 누구도 그에게서 그걸 빼앗아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품위있는 삶을 원해요. 품위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무언가를 뜻하는 거고요." 소냐는 그렇게 말했다.

오베와 루네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때로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산다.심지어 어떤 이들은 죽음의 반대 항을 의식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존재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죽음에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죽음이 자기의 도착을 알리기 훨씬 전부터 대기신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시간은 묘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바로 눈앞에 닥친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며칠, 몇 주, 몇 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아마도 바라볼 시간보단 돌아볼 시간이 더 많다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앞에 남아 있는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그건 추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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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

그는 괴팍하거나 까칠한 노인이 아니다.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했고, 그 한 여자만을 위해 살았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매일 그녀의 묘비석 옆에 분홍빛의 꽃을 심으며 그녀의 곁으로 가기위해 자살을 시도하는 순정파 남자이다.

 

모름지기 남자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않고 자기 스스로를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 그렇게 살아온 남자이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남자란 말로 떠드는 존재가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세대를 살아온 사람일 뿐이다.

 

상대를 향해 웃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마음까지 까탈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원리원칙을 남들보다 더 특별하게 내세우고 지킨다고 해서 그의 마음까지 원리원칙의 틀 안에 갇혀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원칙에 어긋나거나 불의를 보면 발끈하고 화를 참지 못하지만, 버려진 고양이조차 외면하지 못하고 살펴주는 사람, 툴툴거리긴 해도 이웃과 타인의 어려운 일을 모른 척 못하고 달려가는 사람,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질 줄 알고 스스로의 수고를 아끼지않는 사람이다.

 

그의 시대가, 그의 환경이, 그의 성장이 그 남자가 세상을 까칠하게 살 수 밖에 없게 했다면, 그의 사랑은 그 남자를 세상에서 어떻게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으므로 그는 결코 괴팍하거나 까칠한 이웃이 아니다.

 

오베와 새로운 이웃들과 좌충우돌 유쾌한 이야기라는데...

많이 눈물이 났다.

 

그의 삶을 이해해서

그의 사랑을 이해해서

그의 추억을 이해해서

그의 죽음을 이해해서

그의 이웃을 이해해서

 

울컥 눈물이 나는 순간이 많았다.

 

어느 정도의 삶을 살아 온 사람들에게 이 오베라는 남자는 어쩌면 지나 온 시간과 현재의 순간과 앞으로 살아갈 날을 생각해볼 수 있게하는 소설이 되지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까칠한 남자 오베가 나이거나 당신일 수 있고

따스하고 사랑스러웠던 오베의 그녀, 소냐가 또한 나이거나 당신일 수 있고

 

오베에겐 골칫거리였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를 살게하고 그를 웃게하고 그의 존재를 존재이게한 그의 이웃들이 나이거나 또한 당신일 수 있고.

 

그리하여 웃게 하다가 또 울게 하다가

꽤 괜칞은 남자, 저 오베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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