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아무도 몰래 모르는 곳으로 / 김선재

다연바람숲 2012. 7. 19. 20:32

 

 

 

 

 

아무도 몰래 모르는 곳으로 / 김선재

 

 

얼마나 더 멀어져야 전생(全生)이 물빛인 것을 알게 될까

 

 물빛이 범람하는 계절에는 신발을 벗어야지

 수심이 깊어지는 새벽에는 뒤꿈치를 들고

 열린 창문 밑을 지날 때는 숨을 참으며

 

 사는 게 빛나던 시간이 있었다

 사는 게 빚이던 시간도 있었다

 

 생각해본다

 태양이 들판에 베푼 빛을

 빛이 그림자에게 진 빚을

 부끄러움이 손바닥에 전해야 할 인사를

 

 숲은 새들의 울음으로 날아갈 듯 부푸는데

 너는 왜 울지 않는 거니

 농담이 농담처럼 농담을 던질 때

 지킬 것이 없는 진심은

 진심을 다해 진심으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심장은 아무것도 예언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의 심장은 다만, 어제를 향해 울 뿐이다

 그래서 마음에 찍어둔 점 하나 온통 먹빛으로 풀어질 때

 

 생각하지 않는다

 대기권 바깥을 돌다, 사라진 어제의 위성을

 잡담처럼 무수한 전날의 소문을

 예보처럼 모호한 내일의 일기를

 늙어가는 숲의 안부를

 

 날아가는 새는 울지 않아요

 나는 다시 신발을 벗어요

 뒤꿈치를 들어요

 내 긴 잠 속을 지날 때는 가능하면 숨을 찾으며 빚을 피해

 빛으로부터 멀리

 

 아무도 몰래 모르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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